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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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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과도 우린 이별했었노라

용규·종욱을 잃은 KIA·두산 팬들에게
등록 2013-11-27 13:37 수정 2020-05-03 04:27
강남구청의 강제철거로 생활 터전(개포동 영동5교 아래)을 잃은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지난해 12월12일 서울시청 열린민원실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강남구청의 강제철거로 생활 터전(개포동 영동5교 아래)을 잃은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지난해 12월12일 서울시청 열린민원실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마무리됐다. 대상 선수와 구단은 사상 유례없는 ‘쩐의 전쟁’을 펼쳤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예상된 풍경이었다. 한국 야구의 새로운 도약을 견인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의 주역들이 줄줄이 FA로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스스로의 가치가 최대한의 돈으로 환산되길 원했고, 일반인들이 평생 통장에서 구경해보기도 어려운 숫자들이 매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를 장식했다. 일주일간 총액 523억원이 융단폭격된 끝에 팀에 남은 선수와 떠나는 선수들이 결정됐다. 계약을 마친 선수들은 선택한 팀에 대해 한결같이 “나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포화가 걷힌 전장엔 그저 무기력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야구팬들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매년 FA 시즌이 되면 야구팬들은 열병을 앓는다. 언젠가부터 야구팬들에게 겨울은 무뎌진 사랑을 확인하거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가슴을 쥐어짜는 시간이 되고 있다. 부산팬을 등지지 않은 강민호가 롯데팬은 고맙다. 시장이 달아오르기도 전에 28억원이라는 헐값(?)에 덜컥 계약해버리며 팀에 남은 박한이는 삼성팬들에게 안쓰러움과 영원한 믿음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응원하는 선수가 떠나버린 팀의 팬들이다. 두산팬은 울었다. “이종욱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걸 볼 자신이 없다.” 기아팬은 하소연했다. “이용규가 기아를 상대로 안타 치고 도루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수년간 응원한 팀에서 기쁨과 슬픔의 역사를 공유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선수가 갑자기 다른 팀으로 옮겨간다고 했을 때, 야구팬은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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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역사였다. 올드팬들에게 삼성은 이만수였고, 해태는 선동열이었으며, 롯데는 최동원이었다. LG라면 김용수, OB에는 박철순, 빙그레는 장종훈이었다. 어쨌거나 지역주의는 한국 프로야구 성장의 기반이었다. 프로야구팀이 지역 연고 고등학교 선수를 우선 지명할 수 있는 독특한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지역 프로팀에 가서 팬들과 함께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며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공유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와 팬들이 나누던 추억과 서로에 대한 존경은 한국 프로야구의 소중한 낭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프로야구 시장은 팬들의 낭만으로 유지되기엔 너무 비대해져버렸다. 향후 매년 쏟아질 대형 FA들 앞에 선수와 팬이 쌓아온 역사는 사라지고, 리그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매년 새롭고 급하게 재편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사랑하는 선수가 떠났다 한들 너무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다. 실연 뒤에 그동안 보지 못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봄이 되면 또 야구장에 갈 것이고, 응원가를 부를 것이며, 새로운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무려 최동원을 잃어본 적이 있는, 롯데팬의 경험으로 드리는 위로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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