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나에게 사직야구장은 1980년대 아버지와 함께한 유일한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퇴근버스가 서는 곳에서 기다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 손을 잡고 매일 사직야구장으로 향했다. 경기에 질 때마다 “꼴데 해체하라”를 외치면서도 다음날 또 깃발을 흔들고 응원가를 부르던 사직아재들이 내 유년 시절의 멘토였다.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사직야구장은 아버지와 함께 가는 극장이었고, 유년의 바다였으며, 우리만의 ‘롯데월드’였다.
산업재해로 조기에 은퇴하신 아버지는 부산 집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1년 전 경기를 챙겨보신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로 떠났으니 이제는 매일 밤에 만나는 롯데 선수들이 더 아들 같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롯데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유독 마음 아파하신다. 부산에서 살 비비고 살던 나를 떠나보내며 느끼신 허전함이 재생되는 모양이다. 롯데 선수들은 부산의 아버지들에게는 밤마다 만나는 아들이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나 대신 아들 노릇을 해주는 든든한 형제이기도 하다.
넥센과 삼성의 한국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 11월. 가장 뜨거운 팀은 롯데 자이언츠다. 원정 숙소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한 선수 사찰에서 시작해 감독 선임 문제까지 선수단과 프런트는 각자의 운명을 걸고 시즌 내내 보지 못한 투혼으로 가열찬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롯데 팬들의 삭발농성과 촛불시위 이후 프런트의 사퇴도 줄을 이었다. ‘그깟 공놀이’에 구단, 선수, 팬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곳. 그곳이 부산이다.
지난 32년간 롯데는 부산의 야구 열기에 무임승차해왔다. 22년째 우승을 못하고 있고, 대대로 스타플레이어들을 홀대해왔으며, 매년 싸게 후려치기에 급급한 연봉 협상으로 선수와 팬 모두를 긁어놓기 일쑤인 이 팀은 부산이 아니었다면 사랑받을 이유가 없는 구단이다. 이제는 급기야 CCTV로 선수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라는 멍청한 해명이나 하고 있다. 2008년 12월 롯데 자이언츠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 운영을 배운다며 벤치마킹을 떠난 적이 있다. 도대체 뭘 배워온 것일까.
“신은 부산에 최고의 야구팬과 최악의 야구팀을 내려주셨다.” 롯데 팬들의 오래된 푸념이다. 누군가의 편에 서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건의 진위가 궁금하지도 않으며 계속되는 폭로전에는 실소만 나온다. 그저, 한때 우리를 매혹시켰던 최동원의 직구와 염종석의 슬라이더와 박정태의 심장이 숨 쉬던 그 유니폼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광대복이 돼버렸다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저 유니폼에 저당 잡혀버린 우리의 추억이 가여울 뿐이다.
세상이 변했다. 1980년대와 달리 야구 외에도 즐길 게 많은 세상이다. 롯데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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