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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뜻하게 안아줄 순 없을까?

손기정급 역사를 만들고 청문회 서게 된 박태환
등록 2015-02-17 15:52 수정 2020-05-03 04:27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양정모가 획득했다. ‘한국인’ 최초의 금메달은 그보다 40년 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손기정이 획득한 것이다(손기정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준 이는 아돌프 히틀러다). 당시 는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국사책에 수록됐고, 손기정의 금메달은 한국인들의 피에 암기된 역사가 되었다.

박태환 선수

박태환 선수

후대의 국사책이 당대의 한국을 기록할 때, 김연아와 박태환은 스포츠 종목에서 생략될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종목에서 세계를 제패한 이들의 성취는 시간이 갈수록 훨씬 더 위대한 평가를 받을 역사적 사건이다. 제2의 김연아와 제2의 박태환의 출현은 산술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스스로와의 외로운 싸움을 통해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제패했고, 유려한 외모까지 보너스로 갖춘 이 스무 살 전후의 소년·소녀에게 우리는 열광했고, 기업체들은 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했다.

그런데 2015년 지금, 상황이 묘해졌다. 공주에서 여왕으로 등극한 김연아는 화려한 대관식으로 영원히 역사의 보석이 되어 내려왔으나, 왕자 박태환은 난데없는 약물 파문에 휩싸여 국제수영연맹의 청문회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 검찰은 박태환에게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했으나 국제수영연맹의 청문회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나는 그저, 박태환의 처신이 아쉬운 동시에 그의 처지가 안타깝다. 2012년 런던에서 올림픽 2연패에 실패한 뒤 박태환에겐 기업의 후원이 중단됐다. 하물며 대한수영연맹은 올림픽 현지의 (경기와 무관한) 행사에 참여하라는 지시와, 올림픽 직후 연맹에서 주관하는 국내 대회에 (흥행의 이유로) 참가하라는 지시에 반발한 박태환에게 괘씸죄를 물어 올림픽 포상금 5천만원의 지급을 미루었다. 기업의 후원과 연맹의 지원도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훈련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박태환은 급기야 2013년 TV 홈쇼핑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도핑테스트를 가장 많이 받는 선수였던 그가 고의로 금지약물을 투약하는 ‘바보 같은’ 짓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한 현역 선수이지만, 올림픽이 끝나는 즉시 식어버리는 여론의 무관심은 늘 그가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박태환이 내몰린 이 안타까운 상황은, 아쉬운 자기관리와, 한국 수영의 가장 큰 역사이자 자산이었던 박태환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수영연맹의 처신과, 올림픽 2연패에 실패한 그에게 너무 빨리 등 돌려버린 여론이 함께 만든 비극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성취만으로도 박태환은 이미 한국 수영의 ‘손기정급’ 역사를 만들었다. 부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선수생활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바란다. 언젠가 그가 선수생활을 끝낼 때, 우리가 김연아에게 줬던 만큼의 체온으로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란다. 후대가 국사책에서 만날 이 청년과 우리가 동시대에 공유했던 뜨거운 추억이 훼손되는 일이 없길 기원한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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