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휠체어에 실려 들어왔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털을 곤두세운 채 잔뜩 움츠리고서. 허연 얼굴, 검은 두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사납게 응시하고 있었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으르렁거릴 듯하다. 그리고 냄새! 살이 곪아서 썩어 들어갈 때의 그 전형적인 비리고 역한 냄새가 순식간에 진료실 안을 빈틈없이 채운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말문을 열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남자는 말없이 발을 가리킨다.
다 해져서 너덜너덜한 운동화에는 상처에서 흘러나온 듯한 피고름과 때 구정물이 더덕더덕 엉겨 있었다. 신발을 벗기자 양말도 없는 발이 나왔다. 두 발은 모두 팅팅 부어 있고 질질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부는 벌겋고 일부는 거무스름히 죽어가고 있었다. 오른발의 네 번째 발가락은 이미 까맣게 변해 대롱대롱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함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 사람은 청년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자원봉사자’라고 쓰인 밝은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한 사람이 기록지를 좍 펼치며 환자를 대신해서 설명한다. “이분은 서울역 노숙자 진료소에서 발견됐는데, 발이 썩어서 걷지 못한 지 한참 되셨대요. 지난해에도 어느 병원에 갔었는데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안 자르겠다고 화를 내고서 나와버렸대요. 그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지금은 아예 일어서지도 못하세요. 그래서 이리로 모시고 왔어요. 이젠 병원에서 자르라고 하면 자르겠대요.”
엑스레이에는 발등의 뼈가 뭉텅이로 녹아 없어져 있는 게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머지도 부스러지고 관절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키, *샤르코다. 게다가 창상에 2차 감염까지 와 있다. 결국 잘라야하지 않을까? 자른다면 어느 레벨에서 잘라야 할까? 쇼파르? 사임? 아니야, BK 해야 할 거야.’ 내 머릿속에서는 진단과 치료 알고리듬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자신을 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남자는 덤덤히 듣고만 있었는데, 내 입에서 ‘절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몸을 부르르 떤다.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환자의 눈을 마주 보고 재차 잔인하게 물었다. “정말 다리를 잘라도 괜찮으시겠어요?” 허연 얼굴, 검은 눈동자가 체념한 듯 천천히 끄덕인다. “그래서 여기 온걸요. 내 다리 잘라주세요.”
절단을 할 때 하더라도 부위를 최소화하고자 일단 상처 치료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며칠이 지나자 발은 급속도로 부기가 빠지고 아물기 시작했다. 2주쯤 지나자 거무스름하던 색깔도 많이 좋아졌다. 사람의 치유력은 때로 정말 신비하다. “절단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제 붕대 그만 감고 양말을 신으셔도 돼요. 근데 양말은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진다.
먼저 서는 연습을 하고 다음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복도에서 난간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그를 만났다. 내 소매를 끌어당긴다. 수줍은 듯 조그맣게 속삭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남자의 표정에는 어느새 발그레하게 홍조가 돌고 있다. 처음 눈동자에 서려 있던 공포와 사나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다. “퇴원해서 갈 데는 있으세요?” “네, 나가서 일하고 돈도 벌 거예요.” “무슨 일을 할 건데요?” “저 일 잘해요. 오쿠마쓰리 하고 지도리도 하고.” “그게 뭐지요?” “옷에다 안감 붙이는 거예요.” 손을 들어 보여주는 남자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봉재일로 박인 굳은살이 두껍게 앉아 있었다.
퇴원하던 날 그는 내 앞에서 똑바로 걷는 모양을 보여주었다. 미스코리아처럼 복도를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그러고는 빠진 앞니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병원 밖으로 걸어나갔다. 다시 세상 속으로.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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