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프니?” 아이의 부러진 팔을 매만지며 물었다. 눈높이를 맞추느라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 표정 없는 눈망울이 내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말로 해야지. 우리 다솜이 말 잘하잖아. 어른한테 고갯짓하면 안 된다.” 곁에서 아빠인 듯 보이는 보호자가 거든다. “안 아파요.” 아이의 목소리는 방금 조율을 마친 피아노 소리처럼 또랑또랑하고 투명했다. 붕대를 감았다. “다 됐다” 내가 미소짓자 아이는 함박꽃처럼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다솜이는 5살, 부모 없는 아이다. 보육시설에서 다른 49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병원에 온 보호자는 보육시설 담당 선생님이었다. 다솜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꾸러기에 말괄량이란다. 이번에도 미끄럼틀을 앉아서 타지 않고 서서 타고 내려오다가 굴렀다. 그 바람에 그만 팔을 다쳤다. 허겁지겁 길 건너 병원에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진단을 위한 검사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치료를 위해 반깁스를 했다. 또한 보조기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여 어깨에 걸쳐서 허리에 둘러매는 베개처럼 생긴 커다란 보조기를 구매했다. 아이용이 따로 없어서 할 수 없이 어른용을 버겁게 둘러매야 했다. 고아원을 정기 방문하는 우리 병원 소아과 선생님이 그 아이를 보고는 상태를 점검받게 하기 위해 내게로 데려왔다.
왼팔 한가운데 비스듬히 골절선이 보였다. 다행히 골편은 비교적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성장판과도 꽤 떨어져 있어서 안전했다. 성장기 아이들은 어른보다 상대적으로 뼈를 둘러싼 골막이 강하다. 그래서 골절이 있더라도 골막이 찢어지지 않는 한 골편은 골막 안에 얌전히 남아 있는 장점이 있다. 굳이 다솜이 진단명을 붙이자면 ‘좌측 상완골 근위간부 비전위성 골절’이었다. 다친 팔을 확인하고 붕대로 다시 감싸주었다. 으레 또래의 아이들은 아파서가 아니라 겁에 질려서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다. 울 법도 한데 다솜이는 붕대 감는 것을 신기한 듯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일주일 뒤 다시 보기로 했다.
아이가 돌아간 뒤 소아과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다솜이 어때요? 근데 그 병원에서는 왜 CT를 찍은 거예요? 꼭 찍었어야 하는 거예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CT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구조적으로 여러 뼈가 겹쳐 있는 부위라서 단순 엑스레이 촬영으로는 골절 양상이나 골편 위치가 확실하지 않을 때, 혹은 골절선이 인접한 관절면을 침범했는지 알 수 없을 때 등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 CT를 찍게 된다. 다솜이의 경우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가 내 딸이었더라도 CT를 찍었을까? 불필요한 방사능 노출에 내 아이를 내몰았을까?
다음날 그 보육교사는 이번에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데려왔다. 체육 시간에 발목을 접질렸단다. 또 근처 다른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다리에 종양이 의심되니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이의 얼굴이 어두웠다. “저도 들었어요. 종양이라고요. 저한테 종양이 있는 건가요? 그거 나쁜 거 아닌가요?” 아이의 다리뼈를 찍은 단순방사선 엑스레이에는 뭔가 있었다. 조그만 거품 모양의 뽀글뽀글 외부와 경계가 뚜렷이 지워지는 음영, ‘비경화성 섬유종’이다. 요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심심치 않게 우연히 발견되는 양성종양이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뼈에 점이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게 엑스레이를 찍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이지요. 그냥 잊어버리고 지내도 됩니다. 진섭이도 괜히 걱정했나보네. 괜찮아. 종양이니 뭐니 아무 걱정 마라.”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나저나 발목 삔 것은 다음주에 다시 한번 봐야 하니까 진섭이 다솜이랑 같이 와라.” “어? 다솜이도 여기 왔었어요?” 이제 아이는 거의 신나는 표정이 되었다.
갑오년 청말띠 새해가 밝아온다. 대한민국이 또 한 살을 먹는다. 깊어가는 겨울 우리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안전하기를, 그리고 엉뚱하고 활기찬 새해 꿈을 마음껏 마구마구 꾸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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