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비키니는 바쁘다

등록 2012-02-10 16:11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김진수

<한겨레> 김진수

지난 며칠간 인터넷은 온통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비키니 인증 사진’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그 논쟁을 보면서도 그 사진이 궁금하거나 나꼼수 쪽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다만 궁금했다. 정식 수영 경기에서 비키니 때문에 일어난 사건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본, 비키니를 둘러싼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몇 가지 해볼까 한다. 아무래도 비키니는 수영장보다는 다른 장소에서 더 애용됐던 모양이다.

처음 비키니가 등장한 1946년 이후, 비키니는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며 비난과 열광을 동시에 받는 옷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톱스타나 미인대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파격을 추구하는 용감한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3년 7월11일치 에는 ‘비키니 감상’이라는 칼럼이 실렸는데, 필자가 “비키니의 위력을 실감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8·15 해방 이듬해 통신사 편집국” 안, 마감 시간의 떠들썩하던 실내가 조용하다 못해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는데, 하와이 이민 2세대인 서울 주재 특파원이 활동사진에서나 봤던 비키니를 걸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 여성이 “뭇 사내들의 매서운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는 솜씨가 몹시 놀라웠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1969년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할 때, 지구를 대표하는 물건들 중 비키니를 들고 갔다는 것도 재미있다. 이후 차차 일반인들에게 보급돼 보편화된 것이 1970년대. 1972년 8월에는 제11회 낙하산선수권대회에서 체코 선수 두 명이 낙하산복 대신 비키니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키니가 스포츠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수영선수가 아닌 육상선수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려고 비키니를 입었다. 1993년에는 미국 프로배구 선수 개브리엘 리스의 ‘스포츠 비키니’가 화제가 됐다. 같은 해, 전 국가대표 박성원 선수가 평영 100미터 예선 경기에서 “연초록 상의와 보라색 하의의 배꼽이 훤히 노출된 대담한 수영복”을 입고 출전했다. 당시 신문기사에서는 “주위에서는 일부 수긍하면서도” “선수가 지나치게 멋부리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따르기도” 했다고 기록한다.

남자 수영선수의 비키니 차림을 볼 뻔한 일도 있었다. 2001년 4월, 봄철 전미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평영 최고 선수들의 성대결이 펼쳐졌다. 남자 평영 기록 보유자인 에드 모지스와 여자 평영 기록 보유자인 메건 콴은 신기록 먼저 내기 경쟁을 했다. 진 선수는 이긴 선수가 골라주는 수영복을 입고 다음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는데, 콴은 모지스를 위해 분홍색과 녹색의 야한 비키니를 준비했다. 아쉽게도 결과는 모지스의 승리. 콴은 다음 경기에서 토플리스 차림으로 남자 수영복만 입고 출전해야 했으나, 내기는 무효가 되었다고 한다.

스포츠팬들이 비키니 퍼포먼스를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1975년 1월12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에서는 한 여성이 입고 있던 털코트를 벗고 비키니 차림으로 질주하다 경비원에게 제지당했다. 1999년에는 타이거 우즈에게 비키니 차림으로 키스를 퍼부었던 여성 팬이 이후 토플리스 차림으로 거액의 사진 촬영을 제안받는 등 반짝 스타가 된 일도 있었다.

김지현 작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