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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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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담아 벌처럼 쏘다

등록 2011-11-02 15:56 수정 2020-05-03 04:26

변덕이 심한 내가 좀처럼 싫증 내지 않는 취미는 심야영화다. 밤 혹은 새벽에 함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딘가 느슨하게 풀려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올 때가 많은 것이 재미있다. 얼마 전 을 볼 때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로봇 격투기 대회에서 무모한 도전을 했던 로봇 ‘아톰’이 회심의 일격을 날릴 때였다. 나 역시 돌아오는 1시간 내내 깡충깡충 뛰고 격투기 흉내를 내며 친구를 못살게 굴었다. 어린 시절 청룽(성룡)의 영화를 봤을 때처럼 몸이 근질근질했다고나 할까.
처음 격투기 경기를 본 것은 2007년 12월31일, 레미 본야스키와 최홍만의 경기였다. 26살의 파릇파릇한 청춘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연인과 입 맞추고 있어야 할 시각에, 빈 사무실에서 치킨을 먹으며 시커먼 선배들과 격투기 경기를 보고 있던 걸 생각하면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역시 재미있었다. 안경을 쓰면 덴절 워싱턴만큼이나 지적이던 레미 본야스키는 링 위에서도 지적으로 보였다. 거구의 최홍만을 조용히 빠르게 공격했다. 최홍만의 파괴력은 그날 발휘되지 않았지만, 허공에 대충 휘두르는 것 같은 주먹만 봐도 저걸 맞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면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좋아한 건 레미 본야스키 쪽이었지만, 로봇 격투기에서 느끼는 흥분은 아마도 최홍만에게서 느꼈던 파괴력에서 비롯할 것 같다. 1994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경기를 연 ‘배틀봇’ 경기는 상대 로봇을 망가뜨리는 게 핵심이다. 회전 톱날로 상대의 몸통을 자르기도 하고, 지렛대 모양의 무기로 뒤집거나 아예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에서 휴 잭맨이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들의 경기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잔인함과 파괴력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로봇 격투기의 매력인 셈이다.

리얼 스틸

리얼 스틸

그도 아니면 격투기의 짜릿함보다는 로봇의 정교함에 방점이 찍히는 대회도 있다. 10월 말 우리나라에서 열린 ‘지능형 SoC 로봇워’다. 올해로 10돌을 맞은 이 대회에서는 원격 조종 없이 인공지능 로봇이 상대의 움직임을 감지해 넘어뜨리기, 발동작, 손동작 등을 구사해 제대로 된 태권도 경기를 한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든다. 우리는 격투기를 볼 때 무엇에 환호하는가. 그날 을 보며 실제 격투기를 보듯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던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박수를 쳤을까. 승부 그 자체인가, 아톰의 기술인가, 아니면 쓰레기장에 파묻혀 있던 쓸모없는 로봇 아톰의 재기인가. 아톰을 구하고 몰래 말을 걸고 격투기를 가르치고 끊임없이 도전하던 꼬마 맥스의 의지인가,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던 전직 복서의 성장인가. 그러니까 경기 자체의 흥분만으로 로봇 격투기는 21세기 최고의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던 검투사들의 경기 관람처럼 잔인한 길티플레저가 되지 않는 길은 아마도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일 터이다. 로봇의 역사와 그 로봇을 조종하는 인간의 역사. 그러니 결국 로봇 격투기도 사람 간의 대결이 되는 것 아닐까.

김지현 작가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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