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몰라도 홍진호는 안다. 잘 아는 건 아니고 그가 만년 2등이었다는 것, 저그 플레이어라는 것, 별명이 ‘콩’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남자친구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미네랄만 캐본 여자, 남동생이 틀어놓은 게임 중계를 끔찍해하는 여자라도 홍진호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리라. 일반 프로스포츠에 비해 새로운 스타의 등장도 패러다임의 변화도 몇 배 빠르다는 e스포츠계에서, 1등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문외한에게까지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 확실히 홍진호는 대단한 데가 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25일 2시22분 2세트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화려하거나 충격적인 마지막이 아니라 팬들의 애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은퇴였다.
홍진호에 관한 엉뚱한 일화가 하나 있다.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에서 황정민이 맡은 주인공의 이름이 ‘홍진호’였다. 팬들이 짓궂게도 우르르 몰려가 개봉하기도 전인 의 네이버 평점을 ‘2.0’으로 맞췄다는 그런 얘기다. 그저 만년 2등이라고 조롱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홍진호는 10년간 ‘임진록’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임요환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팬들을 끌어들였고, ‘폭풍 저그’라는 별명을 준, 몰아치는 경기 스타일로 자신만의 세계를 다졌다. 오랜 세월이 쌓이자 팬들은 1등을 바라고 2등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홍진호의 ‘2등’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와 함께 즐기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여자핸드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경기 역시 ‘2등의 전설’로 남을 만하다. 임순례 감독의 의 모티브가 된 이 경기에서, 80분 동안 사투를 벌이다 결국 패한 뒤 엉엉 울던 선수들을 보고 따라 울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TV 화면을 거쳤는데도, 단지 슬픔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과 모든 걸 쏟아낸 데서 오는 후련함이 한순간에 몰아쳐온 듯한 감동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므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이주의 탈락자와 오늘의 1등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날 가운데, 기억할 만한 2등이 있다는 건 우리에게 축복이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죽도록 노력해본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한계와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노력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뒤늦게 잘하고 싶은 일이 생겼지만 경험치와 재능이 욕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 일을 포기해야 하는가. 좌절 속에서 피어난 수많은 질문이 마음을 어지럽게 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2등이 말해준다. 이길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라. 1등의 자리는 앞으로도 매번 바뀌고 사람들은 현재의 1등에 주목하겠지만, 너는 등수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너만의 세계로 기억될지니.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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