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고양이 이름은 ‘마고’다. 처음 만났을 때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으니 영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는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여왕 마고’가 아니라 에서 귀네스 팰트로가 연기한 ‘마고 테넌바움’에서 따왔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그 계집애가 누군지 살펴봐야겠기에 을 봤다. 천재적 극작가인 마고 테넌바움은 단발머리에 단정하게 핀을 꽂고,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늘 라코스테 원피스만 입는다. 분수를 아는 여자답게, 나는 귀네스 팰트로의 미모를 훔쳐올 수 없으니 라코스테 원피스도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엔 라코스테 원피스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마력의 옷이라고 각인돼 있다.
귀네스 팰트로를 섹시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게 더 정답에 가까울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테니스 유니폼, 특히 흰색의 미니원피스나 플리츠스커트가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실제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심지어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내 친구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남성들이 모두 테니스복을 입고 만날 약속을 잡자며 열광하던 경험도 있다.
지난 7월에는 세계적 섹시 아이콘이던 ‘테니스 걸’의 실물 사이즈 황금 조각상이 제작됐다. ‘테니스 걸’은 1976년 사진작가 마틴 엘리어트가 당시 여자친구인 18살의 피오나 워커를 찍은 사진 작품의 제목이다. 흰색의 짧은 테니스 원피스를 입고 라켓을 든 채 속옷을 입지 않은 엉덩이를 드러낸 뒷모습이 담긴 이 사진은, 1977년 달력 사진으로 공개되자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마틴 엘리어트는 이 사진의 로열티만으로 25만파운드를 벌었고, 피오나는 세계적 핀업걸로 떠올랐다. 당시 유럽과 미국의 대학 기숙사에는 이 사진이 안 걸린 방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는 여자 싱글 부문 대회를 홍보하려고 대회 포스터로 쓰기도 했다.
테니스 유니폼 자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원래 테니스 유니폼은 흰색을 입는 것이 정석이다. 에티켓을 중시하는 테니스 경기의 특성상 흰색 유니폼을 입는 것이 전통이자 예법이라고 여겨졌다. 윔블던 대회에는 아직도 그 규정이 남아 있다. ‘테니스 유니폼=흰색’이라는 공식을 깬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에게서 나왔다. 1997년 푸마는 윌리엄스 자매를 후원하기로 계약을 맺으며 흑인인 윌리엄스 자매가 강렬한 원색의 ‘캣슈트’(몸에 꼭 맞게 만들어진 원피스)를 입고 화이트 스포츠인 테니스를 하도록 했고, 이후 비너스 윌리엄스는 자신이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오기도 했다. 마리야 샤라포바의 인기와 함께 테니스복의 디자인도 더 과감해지고 다양해졌고, 카롤리네 보지니아츠키 역시 분홍색 미니드레스 등 과감한 옷을 입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올해 런던올림픽에서는 윔블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도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규정을 한시적으로 풀고 총천연색 유니폼을 입는 것을 허용했다. 테니스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중의 흥미를 고려한 결과다.
지난 2월24일,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선수인 보지니아츠키는 남자들의 로망을 벗고 자신의 로망을 입었다. 여자프로테니스투어(WTA) 카타르 레이디스 오픈 8강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의 유니폼을 입고 연습해서 화제가 됐다. 리버풀의 열렬한 팬이던 보지니아츠키는 친구한테서 선물받은 제라드의 사인이 새겨진 유니폼을 트위터에서 자랑했고, 팬의 반응이 뜨겁자 서비스 차원에서 워밍업에 이 유니폼을 입고 나갔다고 한다. 그날 본경기에서 보지니아츠키는 이탈리아의 플라비아 페네타를 6-2, 6-0으로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아마도 여자들이 가장 섹시하다고 여기는 유니폼은 야구든 축구든 테니스든 상관없이 섹시한 선수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이 아닐까 싶다.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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