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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를 구한 테니스킹

등록 2011-08-02 11:59 수정 2020-05-03 04:26
문학동네 제공.

문학동네 제공.

100년쯤 전에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엄마는 온갖 일을 해서 소년을 먹여살렸고, 감정적으로는 드라마틱하게 그에게 헌신했다. 소년의 수학 점수가 빵점인 건 선생님들이 아들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 소년의 엄마는, 소년이 훗날 공군 장교가 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며 외교관이 되고 푸시킨 못지않은 대작가가 되리라고 확신했다(후에 소년은 정말 그 예언을 모두 실현시킨다).

모자가 소년의 미래를 위해 러시아 왕족의 은접시 한 벌만 가지고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 니스로 이주해 정착할 무렵, 소년은 생각했다. ‘아직 엄마를 위해 성공하기까지는 9년이 넘게 걸려.’ 마음이 급했던 소년은 먼저 주니어 수영대회의 챔피언이 되어 그 영광을 엄마에게 바치려 했으나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수영과 달리기와 높이뛰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탁구대회에서 은메달을 한 번 딴 것 이외에 스포츠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급기야 소년은 테니스로도 야심을 뻗친다. 친구의 부모가 빌려준 라켓을 들고 파르크 앵페리알 클럽으로 갔으나, 연회비를 내기에는 너무 가난했다. 소년의 엄마는 분노한다. 당장 아들을 데리고 다시 클럽으로 가서 클럽 회장과 사무장을 불러 일장 연설을 한다. 빈털터리인 채로, 내 아들은 프랑스의 테니스 챔피언이 될 것이며, 돈 때문에 이 아이를 거부하는 것은 야비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자리에 마침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5세가 있었다. 왕은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는 자신의 코치에게 소년과 게임을 해보라고 말한다. 소년은 서너 번 라켓을 쥐어봤을 뿐이므로, 수치심과 공포 속에서 가끔 겨우 공을 스치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킨다. 사람들은 비웃지만 소년의 엄마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게임이 끝난 뒤, 냉정한 얼굴의 스웨덴 왕은 정중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지금 매우 감동적인 무엇을 보았소. 내가 이 젊은이의 입회비를 내겠소.”

소년의 이름은 로맹 가리. 우리에겐 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로맹 가리는 한 작가에게 평생 한번만 주는 콩쿠르상을 두차례 받았다. 한번은 본명으로 다른 한번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그는 그 뒤로 ‘늘 스웨덴을 좋아했’으나 파르크 앵페리알 클럽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5세(1858~1950)는 실제로 테니스를 무척 사랑해 ‘테니스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웨덴의 휴양도시 보스타드에는 스웨덴 오픈 테니스대회가 열리는 보스타드 테니스 센터가 있는데, 그 센터로 통하는 골목 벽에 구스타프 5세의 캐리커처가 붙어 있다. 왕이 그 골목으로 드나들며 15년 동안이나 테니스대회에 선수로 참가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길에는 왕이 경기 때 쓰던 가명을 따와 ‘Mr. G Road’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후 30년이 지난 1980년에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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