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건, 가혹하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린 남자아이다. 그 아이가 남긴 편지와, 그 아이의 어머니가 떠올리는 그 아이가 ‘입을 쭉 내밀고 다가와 눈을 싹 감고 뽀뽀하던’ 기억과, 그 아이의 아픔을 짐작조차 하려 하지 않던 또 다른 어린 남자아이들이다.
스웨덴과 할리우드에서 각각 영화로 리메이크된 소설 의 작가 린드크비스트도 자신이 그린 주인공 오스카처럼 어린 시절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매일 얻어맞고, 돼지 소리를 내라고 강요당하고, 옷은 화장실 변기에 처박혀 있어 반바지를 입고 눈밭을 걸어가야 하는 소년. 오스카는 아이들에게 맞서려고 방과 후 수영 교실을 선택한다. 그러나 몸이 튼튼해지기도 전에 훨씬 덩치 큰 상급생이 오스카에게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고 잠수하라며, 나오면 눈알을 파낼 것이라고 칼을 들고 협박한다. 차라리 물속에서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처럼 보이는 그 순간은 절망적이다. 그 아이의 유일한 친구인 뱀파이어 소녀가 나쁜 아이들을 모두 죽여서 물이 피로 물들지라도, 저 밖에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내 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물속은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레즈비언 소설가 캐럴 앤셔의 에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여자 수영 100m 자유형 금메달 유망주였던 제시는 라이벌인 마티의 유혹에 빠져 금메달을 놓치지만 이후 마티에게도 외면당한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제시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인생을 펼쳐 보여준다. 제시는 삶에 위기가 찾아오거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있을 때 아쿠아마린 빛의 수영장을 떠올린다.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시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삶이 물의 벽 너머에서 요동치고 있다고 느낀다.
뉴욕 문단에서 분더킨트(신동)라 불리는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에도 인상적인 수영 장면이 나온다. 나이든 여작가는 남편과 매일 아침 런던의 햄스테드히스 공원으로 걸어가 그곳에 있는 ‘수영 구멍’에서 수영을 한다. 옷을 모두 벗고 비가 내릴 때도, 눈이 내릴 때도, 나뭇잎이 날릴 때도. 근처 벤치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겁에 질려 얼마만큼 깊이 들어갔느냐고 물어도 그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할 만큼 깊이, 조용하게.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남편은 아내가 타인에게 자신의 슬픔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면서도 견디지 못한다고 이해한다.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새해가 조금도 희망차다고 느껴지지 않는 누군가가, 혹은 자기가 선택하지 못한 다른 삶만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아무도 모르길 원하는 슬픔을 간직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일단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져 이 글을 썼다. 고독한 당신이 수영장 깊이 가라앉아 환상을 볼 때, 밖에서 기다려주거나 나쁜 것을 없애주려 하는 누군가가 꼭 옆에 있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즐겁거나 기운차지 않아도 좋으니, 올 한 해도 그렇게 잘 버텨보자.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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