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로케’(Croquet)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고로케’(크로켓)가 아닌, 15세기께 프랑스에서 시작된 공놀이다. 룰은 간단하다. 나무로 만든 공을 나무 망치로 때려 후프 사이를 통과시키는데, 먼저 통과한 팀이 이긴다. 나는 한 번도 정식으로 크로케 경기를 해보거나 본 적이 없음에도 이 경기를 꽤 좋아한다. 그건 순전히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 때문이다.
먼저 영화 의 크로케 장면. “제인도 훌륭한 선수”라는 말을 들은 톰 르프로이가 “여자가 무슨…”이라고 조소하자, 제인은 발목까지 내려온 드레스를 입고 대타로 나가 르프로이가 던지는 공을 멋지게 쳐서 득점한다. 물론 영화 속 그녀는 제인 오스틴이 아니라 앤 해서웨이였지만, 신이 나서 골대를 돌아 달려오는 그녀의 환한 미소가 정말이지 상큼했다. 그 장면을 보던 그때는 나를 인정해주는 가족과 이제 막 사랑하게 된 남자와 함께, 찌질한 선수의 대타로 들어가 시원하게 본때를 보여주고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 많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되고 보니, 그것보다는 속 크로케 장면이 훨씬 더, 정말, 몹시,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이라거나 ‘야구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게 인생을 닮은 스포츠를 하나만 꼽으라면 에 나오는 ‘여왕의 크로케 경기’를 꼽겠다.
앨리스는 여왕의 경기장을 보고 “이렇게 이상한 크로케 경기장은 처음이야”라고 중얼거린다. 경기장 바닥은 온통 울퉁불퉁하다. 공은 살아 있는 고슴도치요, 공을 치는 나무 막대(맬릿)는 살아 있는 홍학이다. 골대(후프)는 병사들이 손으로 땅을 짚어 만든다. 홍학의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고 하면 고개를 꼬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앨리스를 쳐다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홍학의 머리를 내리고 다시 시도하면, 이번에는 고슴도치가 저만치 가버린다. 골대 노릇을 하는 병사들은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앨리스 말대로, “이 크로케 경기는 정말로 힘들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선수들은 차례를 기다리지 않은 채 고슴도치를 차지하려 싸우고, 경기를 주관하는 여왕은 이유도 없이 화가 나서 1분 간격으로 “저 여자의 목을 쳐라!”라고 외쳐댄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회생활을 해보려고 노력했거나 적어도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홍학 맬릿과 고슴도치 공, 병사 골대와 무서운 여왕에 무얼 대입해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무서운 여왕과 목을 내걸고 직접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리라.
내가 너무 멀리 나갔다면 용서해주시길. 지난주는 여왕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한 한 주였으니. 가슴 깊이 공감하는 독자가 있다면, 위로를 전한다.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font color="#C21A1A">참고</font>: (루이스 캐롤 지음·손영미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1),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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