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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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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홈리스 월드컵!

[판다의 시시콜콜 스포츠사]
등록 2011-09-08 18:26 수정 2020-05-03 04:26

한국 대표팀의 성적은 13전3승10패. 지난 8월25일 한-일전에서 3:0으로 이겨 귀한 1승을 거둔 뒤 핀란드, 홍콩과의 경기에서도 이겼다. 48개국 중 39위다. 무슨 경기냐고? 종목은 축구, 정확히 말하면 4명이 뛰고 전·후반 각 7분씩 치러지는 풋살이다. 선수 800여 명이 참가한 국제대회로, 프랑스 파리에서 8월21∼28일 열린 ‘홈리스(Homeless·집이 없는 사람) 월드컵’ 이야기다. 홈리스 월드컵은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53개국의 64팀(남·여팀 합산)이 참가했다. 나이키·보다폰재단·유럽축구연맹(UEFA) 등이 후원하고, 아스널 FC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가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대회 누리집(www.homelessworldcup.org)을 통해 모든 경기를 동영상으로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전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참가 선수 자격이 독특하다. 18살 이상의 유엔 기준 노숙자(난민, 알코올중독자,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 판매를 생업으로 하는 노숙자 등)만 참가할 수 있다. 2010년까지 8회 대회를 거치며 선수인 홈리스, 관중인 일반 대중, 파트너인 각 나라의 기업, 지자체의 인식 변화 등에서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8월11일 치러진 1차 예선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대등하게 경기를 펼친 결과로 보긴 힘들다. 팔레스타인에 19:0, 캐나다에 6:2, 이탈리아에는 9:1, 나이지리아에 무려 16:1, 멕시코에 11:0으로 대패했다. 2차 예선에서는 슬로베니아에 13:3, 오스트레일리아에 9:3으로 졌으나 일본에는 3:0으로 이겨 가까스로 H조 꼴찌를 면했다.
굳이 한국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을 세세하게 적는 건, 선수들을 비난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 해도 적어도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거나 ‘노숙자가 새로운 삶을 찾는다’는 듣기 좋은 말로 뭉뚱그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이 진지하게 연습하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뛰는 건,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고 이기기 위해서다. 그들 역시 국가대표고 스포츠 선수다.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경기를 즐기고 삶을 변화시키는 건, 그들 자신의 일이다.
처음으로 한국 대표팀이 뛴 지난해 브라질 대회에서 한국의 성적은 11전1승10패, 전체 43개 팀 중 43위였다. 그러나 페어플레이와 열정을 인정받아 최우수 신인팀 상을 받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목표로 한 3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두 번째 대회 참가임을 생각하면 박수쳐줄 만한 결과다. 내년, 내후년에는 8강, 4강도 노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다 정말 축구선수로 진출할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매년 같은 선수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니, 이건 대표팀 지원과 훌륭한 코치진, 훈련 시스템이 갖춰줘야 가능한 얘기다. 그리하여 내년 여름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응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호기심이나 사회적 관심이 아니라 순수한 스포츠 경기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열심히 응원하며 지켜본 사람으로서 내년 경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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