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누멘탈 투우 경기장에서 ‘마지막 투우 경기’가 열렸다. 카탈루냐 의회에서 지난해 동물학대 등을 이유로 금지법을 통과시켜, 내년부터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투우 경기가 전면 금지된다. 에콰도르 등 스페인 식민통치를 경험해 투우를 즐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도 투우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투우가 소에게만 위험하고 잔인한 경기는 아니다. 지난 10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는 유명 투우사 후안 호세 파디야(39)가 소뿔에 얼굴을 관통당해 실명했다고 한다. 미안하게도, 애초에 나는 투우를 생각할 때 황소의 고통이나 생명을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황소는 위협적인 존재이고 투우는 그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투우사의 고독하고 개인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게 투우는 언제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녀가 투우장에 나서기 전 옷을 입는 그 복잡한 과정을 카메라의 밀착된 시선으로 보며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사고를 예견하는 듯한, 거의 죽으러 나가는 듯한 경건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의 삶조차 바꿔버릴 것 같은 그 투우장에서의 사고. 그 뒤로 나는 항상 생각하게 됐다. 황소와 마주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당신이라면 매번 황소와 마주치는 그 순간, 고민하지 않겠는가. 도망쳐 살아남을 것이냐, 죽이고 살아남을 것이냐.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6월13일, 멕시코시티의 투우 경기장 멕시코플라자에서 열린 투우 경기에서, 투우사 크리스티안 헤르난데스(23)는 다른 날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두 번 망토를 휘두르다가 갑자기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400kg이 넘는 황소가 그의 뒤를 쫓았다. 그는 도망치며 뒤를 돌아보았고, 황소를 자극할까봐 망토를 집어던졌고, 곧바로 몸을 날려 담장을 뛰어넘었다.
10살 때부터 투우사가 되려고 훈련을 받아온, 데뷔한 지 5년이 지난 그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는 냉정하게 황소와 대면’할 수 있었던 젊은 투우사는 풀 죽은 채 관중의 야유를 받으며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포기하고 나와버렸다. 계약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뒤 벌금을 내고 풀려난 그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단다. 5주 전 황소 뿔에 다리를 받혔을 때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나는 매 경기에 나가기 전 뛰었을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상상한다. 황소와 마주했을 때 그가 느낄 흥분과 두려움을 상상한다. 그리고 황소를 쓰러뜨릴 때의 이상한 희열과 손안에 남았을 날카롭고 힘센 감촉 같은 것도 상상한다. 그리고 젊고, 인생을 즐기고 싶고, 이를테면 애인의 피부같이 부드럽고 안전한 것 안에서 안도할 그의 일상, 어쩌면 악몽을 꾸거나 황소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을 밤 시간도 상상해본다. 그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단다. 하긴 스페인은 투우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가우디의 나라이기도 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니까, 어쩐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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