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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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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관중, 레드 카드 받다

등록 2012-01-20 10:56 수정 2020-05-03 04:26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전한다. “너희 아빠가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광팬이라면, 지금 바로 가장 갖고 싶은 걸 가지고 협상에 돌입해라! 네가 갑이다!”
1월19일, 네덜란드 프로축구팀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AZ 알크마르의 네덜란드컵 16강전 재경기가 있다. 성인 팬이 이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같이 보러 갈 13살 이하 어린이 6명을 모아 그들의 통솔자 자격으로 입장하는 것. 이 경기에는 13살 이하 어린이만 무료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2월22일 두 팀의 16강전에서 19살의 아약스 훌리건이 경기장 안으로 난입해 AZ의 골키퍼 알바라도를 폭행하려다가 도리어 그에게 얻어맞은, 좀 우스꽝스러운 사건의 결과다. 완력으로 훌리건을 제압한 뒤 발길질을 두어 차례 한 알바라도는 관중 폭행으로 퇴장당했고, AZ 선수들은 부당하다며 경기 재개를 거부했다. 이후 알바라도는 정당방위로 징계 철회 처분을 받았고, 훌리건은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누가 뭐래도 가장 억울하게 된 건 아약스. 분노 조절을 제대로 못하는 19살 청년을 팬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아니, 그를 분노하게 만든 책임이 있는 건가?)로 1만유로의 벌금을 내야 하는데다 재경기는 무관중 경기가 되게 생겼다. 아약스는 네덜란드 축구협회(KNVB)에 여성과 아이들만이라도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재요청했다. 협회는 1월11일, 어린이 관중만을 허락했다. 성인 여성의 입장을 거부한 이유는 남녀차별 방지에 대한 국제법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21일, 터키 이스탄불의 수쿠르 사라코글루 스타디움의 관중석은 여성과 12살 이하 어린이 4만1663명으로 꽉 찼다. 페네르바체와 마니사스포르의 리그 3라운드를 보러 온 관중이었다. 터키 축구협회는 팬들의 난동으로 제재를 받은 팀이 경기할 때는 여성과 12살 이하 어린이만 무료 입장하게 하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 이날 처음 적용했다.
터키 축구협회 관계자는 “축구계에서 이런 조치는 처음이다. 더 이상 (무관중 경기로 인한) 고요하고 재미없는 경기는 없다. 이런 변화는 축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결말이 좀 안드로메다로 가는 듯하지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그렇다면 여성이나 어린이만으로 구성된 축구장에서는 과연 훌리건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것. 여성 훌리건이 난동을 부린 사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 예로 2010년 7월30일, 중국에서는 다롄 이텅과 다롄 아얼빈의 프로축구 3부리그 지역 라이벌전 후반전에 한 여성이 그라운드에 뛰어들어 자신이 응원하는 아얼빈의 득점을 무효 처리한 심판을 폭행하다 공안에 체포됐다는 기록이 있다. 앞서 전반전에는 상대팀 남성 관중이 이텅의 선제골에 기뻐하며 성화를 점화하자 그에게 달려들어 그라운드에서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어린이의 경우? 지난해 봄, ‘요구르트 한 잔’ 하고 뽀로로 무대에 난입한 뽀로로 팬의 동영상을 한번 찾아보시라.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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