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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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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대마 흡연 혐의 가수 재판, 흉악범죄보다
더 무겁게 구형하는 검사에 화가 나 흥분하고 말았으니…
등록 2013-07-03 14:25 수정 2020-05-03 04:27

요즘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여러 연예인들 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큰 사회적 범 죄를 저지른 양 고개를 푹 숙인 그들의 모습 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변호를 맡았던 사건 이 떠올랐다.

흉악 범죄도 아닌 마약법 위반은 형사처벌과 더불어 그보다 더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다. 한 청소년 페스티벌에서 가수가 공연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흉악 범죄도 아닌 마약법 위반은 형사처벌과 더불어 그보다 더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다. 한 청소년 페스티벌에서 가수가 공연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남미 스타일에서 두루마기 한복으로 변신

당시 나는 대마 흡연 혐의로 기소된 가수 를 변호했다. 그는 유명한 가수는 아니었지 만 이른바 언더에서는 나름대로 명성이 있 는 그룹의 보컬이었고, 국내보다는 국외에 더 잘 알려진 가수였다. 어느 날 우리 사무실 에 불쑥 나타난 그는 컬러풀한 남미 스타일 의 의상과 길게 땋아내린 레게 머리, 그 위에 멋스럽게 올린 니트 모자 차림을 하고 있었 다. 레게의 전설 밥 말리를 연상시키는 그의 의상과 외모는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늘씬하게 마른 몸매에 작은 얼굴, 반짝이는 눈과 멋진 보이스. 나는 내심으로 외모뿐 아니라 그의 정신과 노래도 밥 말리 를 닮았다면 죄목이 무엇이든 그는 무죄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렸다.

그는 대마 흡연과 엑스터시 복용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는데, 대마 흡연은 인정했으나 엑스터시의 경우 복용한 적이 없다, 모르고 먹은 약이 있다면 일본 연주 여행 중 두통약 으로 받아먹은 것이 있을 뿐이라며 억울함 을 호소했다. 그는 유명한 가수가 아니었는 데도 어느새 대마 흡연으로 재판을 받는다 는 소문이 퍼져 예약된 공연·녹음 등이 취 소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돈 을 벌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노래를 부 를 터전이 사라지는 데 대한 두려움과 고통 이 컸다.

수사기록을 보니 머리카락 검사 등에서 대 마와 엑스터시 성분이 모두 검출돼 엑스터시 복용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변론은 엑스터시 성분이 검출되긴 했으나 알 고 복용한 적이 없으며 모르고 먹었을 수는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 범죄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범죄 사실이 육하원칙에 맞게 특정돼야만 피고인은 그에 맞춰 검사가 주장하는 범행 일시에 자신의 알 리바이 등을 입증해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 해당 사건에서는 범행 일시가 너무 광범위하 고(무려 6개월 전 어느 날이었다), 범행 장소 와 방법도 특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첫 재판 기일, 나는 그에게 복장을 단정히 하고 올 것(레게 복장을 하지 말고 특히 모 자를 벗어야 한다는 점을 주의 줌)을 당부했 다. 재판 당일 법정 앞에서 만난 그는 너무 도 단정한 복장을 하고 와서 나를 놀라게 했 다. 하늘색의 구식 공단으로 만든, 발등까지 내려오는 긴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난 그, 순 간 나는 그냥 웃으며 “복장 단정하시네요”(속 으로는 ‘그렇다고 한복을, 그것도 촌스런 한 복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라고 할 뿐이었다. 그가 법정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여 그의 복장이 법정 에 대한 반항으로 보일까 노심초사하며 변론 을 시작했다. 마약(복용자) 비범죄화와 관련 한 각국의 예와 각종 논문을 찾아 제출하며 열심히 싸웠다.

심신 수련하는 합법 수단이기도 한

검사는 최후 논고에서 피고인이 사회질서 를 해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징역 2년 을 구형했다. 검사의 최후 논고는 너무도 결 의에 찬 것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검사는 바로 앞 선 사건에서 타인에게 중상해를 입힌 다른 피고인에게 고작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런 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고, 다만 대마를 복용해 자신의 몸에 해를 가했을 뿐 인 내 피고인에게는 사회질서를 해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징역 2년을 구형하다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부르르 떨며 도대체 내 피고인이 중상해를 입힌 사람보다 더 큰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너무나 감정적으로 변호사답지 않은 변론을 하고 말았다. 변론이 끝난 뒤 공단 두루마기를 입은 그가 수줍은 듯 “변호사님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레게식 허그를 할 때 변론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결국 엑스터시 복용 혐의는 범죄 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 하여 공소기각으로 끝났다.

그를 변론하기 전에도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그를 변론하며 더욱 확실해진 생각은 이른바 마약 공급자가 아닌 마약 복용·흡연자에게는 처벌보다 비범죄화 등 치유와 사회 복귀의 관점에서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대마 등을 흡연했을 때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흉악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형사처벌과 더불어 그보다 더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것이 이상했다. 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도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특히 대마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한 물질로 분류돼 있고,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단순 복용·소지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으며, 심지어 합법화한 나라도 있고, 인도에서는 심신 수련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마약에 대해서도 단순 사용자에 대한 비범죄화 논의가 활발하며, 더 나아가 국가의 엄격한 관리하에 마약 사용을 허하는 것이 현재의 불법적 마약 유통을 막고 순도 낮은 마약의 복용과 중독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도 우리나라에서 대마 흡연자 등 마약 복용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형사적·정책적 접근은 너무 가혹하다. 문제가 된 연예인의 경우 여전히 수년간 생활의 터전인 연예계에서 퇴출되는 등 혹독한 형벌을 받고 있다. 최근 불법 마약 제조와 유통의 확산으로 마약이 사회취약계층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불법 마약의 제조와 유통은 발본색원해야겠지만 현실의 고단함의 도피처로 마약을 선택한 이들에 대해 특히 치유와 사회 복귀의 관점이 절실하다.

금기 도전에 관한 괘씸죄?

마약 복용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합법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마약 복용에 대한 지나친 단죄는 그들이 한 행위의 대가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해, 금기에 도전한 데 대한 괘씸죄로 취급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대마가 저항의 상징이 됐으며, 비틀스 같은 전설적 가수마저 노래 가사에 숨겨 이를 비웃었겠는가.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 에.

정기적으로 소변검사를 받으며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날 찾지 않는다. 재범하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이리라. 그에게 대마 흡연의 대가는 컸다. 노래 부를 터전을 회복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정신적 충격을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대마에 기대지 아니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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