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촛불시위의 흥분으로 들썩이던 2008년, 저녁이면 그 흥분에 밤거리를 싸돌 아다니고 낮에는 꾸벅꾸벅 졸며 지냈다. 당 연히 일이 밀렸고, 현충일 사무실에 나와 밀 린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조· 중·동 불매운동 카페 운영진이 검찰에서 조 사를 받고 있으니 접견을 가달라는 것이었 다. 재판이나 회의 같은 핑계도 없는 휴일이 니 갈 수밖에. 투덜거리며 검찰청으로 향했 다. 그 카페는 촛불 정국이 낳은 스타 중의 스타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회에서 법리 검토나 당사자들의 자 문도 하고 있어, 그저 동료 시민의 한 사람으 로서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이 사건에 관여 할 생각은 추호도 없던 터였다. 촛불시민과 집단지성, 키보드워리어(인터넷 공간에서 거 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장 섞인 영 웅담이 후끈 달궈놓은 인터넷에 조금씩 지쳐 갈 때이기도 했다. 남의 접견이나 가기에는 날씨가 너무 덥다고 생각하며 검찰청으로 향 하면서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학생운동 경력이 있고, 직장에 다니지만 밤이면 인터 넷에서 보수언론을 성토하고, ‘일반 시민’을 선동하는, 대충 그런 것 말이다.
“아니, 그럼 대체 뭘 하신 거예요?”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에는 엉뚱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자신이 검찰청에 와 있 다는 것도 신기해하고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는 사실에 놀라며 “민변요? 그런 데서는 어 떻게 알고 이렇게 변호사를 보내주나요?” 하 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이야기를 할수록 기가 막혔다. 집에서는 줄곧 를 보고, 정작 본인은 신문을 제대로 보지도 않 으면서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데, 소속 정당은커녕 단체는 당연히 없고, 대학 시절 학생운동은커녕 집회도 한 번 나가본 적이 없고, 정치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단다. 촛불 시위도 몇 번 안 나가봤고 열혈 네티즌도 아 니었다는데, 운영진이라고는 하지만 카페 주 인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며 이번에 검찰 소환을 받고 딱 한 번 얼굴을 봤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대체 뭘 하신 거예요?” 나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 조·중·동 보도의 문제점을 정리 한 글을 보게 됐는데, 믿고 있던 주요 언론 들이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놀라고 배신감을 느껴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누 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 다음날부터 한 신 문의 광고 목록을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다. 다음 아고라에서 카페를 만들어 이사를 하 자 자연스럽게 따라 옮겨가 카페 회원이 됐 고, 하던 대로 아침에 신문을 사서 광고주 목록을 만들어 엑셀로 정리해 올리곤 했더 니 카페 멤버들이 ‘게시판 지킴이’라며 이름 을 만들어줬는데 이제 보니 그도 ‘운영진’이 라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무척 호응이 좋았 고, 순식간에 회원 수가 불어나 5만 명을 넘 었는데(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으로 회원이 늘어난 것은 검찰 소환 소식이 전해진 다음 이었다), 본인은 매일 일과처럼 신문에 난 광 고를 정리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상천외한 글 에 댓글을 달기는 했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 이라 정작 광고주에게 전화를 건 일은 몇 번 없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런 일이 죄가 될 수는 없던 터라, “걱정하지 말고 있었던 일 그대로 이야기하고 빨리 집에 가라”는 심 드렁한 조언을 하고 짧은 접견을 마쳤다. 접 견 당번을 무사히, 그리고 쉽게 끝냈다고 생 각하며 돌아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상식은 검찰이 나 법원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아, 그를 비 롯한 24명의 네티즌이 정식 기소됐고, 그는 아니지만 카페 운영자와 또 한 사람은 심지어 구속이 됐다.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나는 것은 기본이었지만, 심드렁하고 무성의한 변호사 를 만나 제대로 된 조력을 못 받은 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운영진 접견을 갔던 변호사’로 분류돼 변호인단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검찰에 대한 분통 반,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 반으로 사건 변호를 맡게 됐다.
나머지 23명을 만나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가정주부와 평범한 회사원은 기본이고, 대학 초년생으로 변호사만 봐도 얼굴이 빨개지는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었다. 법원 공무원, 교사, 소설가, 한의원 직원….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한 대학원생은 광고를 많이 내는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가 출발 직전에 취소하는 방법을 사용해봤다는 혐의가 추가됐고,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광고주 사이트에 접속 신호를 보낸 중소기업 직원에게는 ‘정보통신을 이용한 장애 초래’라는 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우리나라 소비자운동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불매운동으로 5만 명의 조직을 이끌었다는 혐의로 모두 공범으로 기소된 사람들 사이에 ‘공동성’이라고 할 만한 조직적 관계는 고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재판 기일이 첫 만남이었다. “대마왕님, 당연히 남자분인 줄 알았는데….” “전에 제가 댓글로 싸움을 건 적이 있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이제 보니 웃어른에게 대든 것이었네요. 죄송합니다.” 법정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인터넷 커뮤니티 첫 오프모임의 전형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전과 한두 개쯤은 예사인 내 고객들과 달리, 형사처벌이나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있는 사람도 교통사고나 친구와의 다툼으로 벌금형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검사는 이런 사건은 빛의 속도로 수사하고 영장을청구하고 기소한다. 촛불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지만 ‘네티즌 2명 구속, 24명 정식 기소’라는 보도만으로 불매운동의 열기는 사그라졌다.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끝까지 변호사들 음료수와 지방에서 재판 오는 피고인들을 위한 교통비를 챙겨주는 카페 회원들의 꾸준한 지원 활동이 있었지만, 세간의 주목도 관심도 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시민 24명은 긴 재판을 받았다. 기소 사실이 알려져 백령도로 발령받은 교사는 재판 때마다 배를 타고 나와야 했고, 전남 목포 법원에 근무하는 피고인은 수백만원을 KTX 요금으로 써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재판은 지루했고, 2008년 8월 기소된 이 사건은 항소심이 끝나 법원에 나오지 않아도 될 때까지 1년4개월이 걸렸다.
1인시위 전문가가 된 접견인첫 기일에는 법정에 섰다는 것만으로 떨고 주눅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던 피고인들이 증인에게 보충신문을 할 정도로 재판에 익숙해졌고, 처음에는 보수언론에 대해 가벼운 반감만 가지고 있던 피고인들의 마음은 네티즌들을 폭력적인 패거리로 매도하는 신문사 임원들의 증언을 들으며 점점 더 견고해졌다. 집회도 부담스러워 싫다던, 현충일의 접견 때 만났던 피고인은, 1인시위 전문가가 되어 정부서울청사든 서울 광화문 네거리든 법원 앞에서든 그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진짜 키보드워리어가 돼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통해 진짜 촛불시위의 모습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무엇이 평범한 동네 사람들을 분노할 줄 아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 만드는가를.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공수처 차량 파손하고 ‘난동’…윤석열 지지자들 ‘무법천지’ [영상]
윤석열,구치소 복귀…변호인단 “좋은 결과 기대”
윤석열 엄호 조대현·안창호·조배숙…연결고리는 ‘복음법률가회’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서 40분 발언…3시간 공방, 휴정 뒤 재개
공수처 직원 위협하고, 차량 타이어에 구멍…“강력 처벌 요청”
“사필귀정, 윤석열 구속 의심치 않아”…광화문에 응원봉 15만개 [영상]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