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엽기적인 그녀〉
술자리 얘기를 칼럼으로 쓰기 시작한 뒤 주변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다. ‘그러고도 어떻게 살아 있냐?’는 걱정형과 ‘그런 신변잡기 써서 뭐하냐’는 우려형, ‘너 정말 웃기더라’는 격려형(?)이 일반적이었다면, 특이한 것으로는 협박형을 들 수 있다. “너, 내 얘기 쓰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테니….”
하지만 쓰지 말란다고 안 쓰면 어찌 기자라 할 수 있으리오. “선배가 설마 내 얘기를 쓰진 않겠지”라며 날 구슬리던 후배 여기자의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지난해 초 어느 날 ‘그’가 술을 사달라고 했다. 내 입사 동기인 S와 ‘그’의 동기인 L까지 넷이서 모여 서울 종로구청 인근 일본식 선술집을 찾아 사케를 진탕 때려 마셨다. 친한 동기·후배들과의 술자리는 유쾌했다. 2차는 교보빌딩 뒷길 허름한 빌딩 지하에 있는 조그만 카페. 폭탄주가 돌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런데 ‘그’가 사라졌다. 아마도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러 가게 밖으로 나갔던 것 같다. 기다리다 못한 S가 나가서 ‘그’를 찾아 데려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취한 ‘그’가 도로가 파여 새카만 구정물이 가득한 지점에서 넘어진 것이다. 시궁창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에서 ‘검은물’을 뚝뚝 흘리며 등장한 ‘그’를 보고 좌중이 대경실색하는데, ‘그’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너무 아파~ 마이 아파~”를 되뇌었다. 넘어지면서 팔뚝에 큰 상처가 났던 것이다. 카페 여사장이 나서서 “아이고, 젊은 처자가 어쩌다…”라며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사실 이 정도 사건사고야 늘상 있는 법. 그러려니 하고 지났는데, 7~8개월쯤 흐른 뒤 ‘그’의 또 다른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땅바닥이 문제였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가 이번엔 동기 K와 Y에게(또는 K가 ‘그’와 Y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단다. 신촌에서 모인 이들은 역시나 진탕 술을 마셨더랬고, ‘그’가 술자리에서 뻗고 말았다. 졸지에 시체처리반이 된 K와 Y는 대책을 숙의했고, 일단 K가 ‘그’를 업고 술집을 나서고 Y가 그 뒤를 따랐단다(K도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참으로 대단한 동기애였다). 그런데 K의 발끝이 돌부리에 걸렸다. ‘그’를 업은 채 꼼짝없이 머리부터 앞으로 꼬꾸라지던 K는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단다. 업혀 있던 ‘그’는? 상상하는 그대로다. K와 Y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그 뒤 몇 달 동안 ‘그’는 술을 멀리했다. 아스팔트와 딥 키스를 나눈 얼굴 치료도 치료지만 자책감도 컸으리라. 평소 흰소리 잘하는 K는 “‘그’가 조금만 더 가벼웠다면 그런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며 핑계를 대더라나.
그러다 약 두 달 전 금요일 밤 12시께 술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 상처도 희미해진 ‘그’는 사고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즐겁게 술잔을 들이켰다. 갑자기 그때 사고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을 짓는데,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내 평생 테이프가 끊기고 사고가 난 건 딱 두 번이라니까. 진짜야~.”
다음주 ‘그’와 또 술약속이 있는데, 기대가 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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