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가 팽팽히 맞서면서 관망하는 시민도 많아 보였다. 광주 지역 전문가들은 대체로 30%의 유권자가 여전히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동층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4월12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의 광주광역시청 앞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다들 이상하다고 얘기해요. 주변에 안철수 지지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지지율이 올라서요. 안철수는 ‘촛불 민심’과 멀잖아요? 광주의 젊은 층에선 여전히 문재인 지지가 압도적이에요.”(박가현씨·26·시민단체 근무)
“문재인과 안철수 중 누가 되든 정권 교체 아닌가? ‘정권 교체 안 될라’ 매번 맘 졸였는데 이번에는 맘 편하게 찍어볼라고. 누가 호남을 위한 대통령인지 고것만 볼 것잉께.”(김영순씨·47·자영업)
“원래 주변을 보면 문재인-안철수 반반으로 지지자가 갈렸는데 요즘엔 안철수가 올라가고 있어요. 40~50대 지인들이 ‘안철수가 달라졌다’며 난리여. 거의 안철수가 되는 분위기라니까.”(강창원씨·54·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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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이 움직이고 있다. 3월27일 19대 대선 후보 호남권역 선출대회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압도적 지지(60.2%)를 보내며 대선 후보 경선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준 광주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4월11~12일 광주 현지에서 접한 표심에선 문재인 후보의 상대적 우위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상승 기류 역시 엄연한 실체로 존재했다.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시민들은 문재인-안철수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자칫 보수 정권이 연장될 수 있다는 부담을 던 채, 관망 모드로 접어드는 분위기였다. 아직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유동층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호남에서 승리를 굳힐 수 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직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두 후보의 최대 기반인 광주와 호남은 누구 손을 잡아줄까.
가장 먼저 감지되는 흐름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지지했던 이들이 안철수 후보 지지로 이동한 정황이다. 4월11일 오후,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박아무개(52·전업주부)씨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을 지지했는디 결선도 없이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걸 보면서 안철수로 마음을 바꿨제. 문재인 후보는 새 인물로 당최 보이지가 않으야”라고 말했다. 양동시장에서 청과물을 파는 이아무개(55)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문재인은 지난 총선 때 호남이 지지해주지 않으면 정계 은퇴를 한다고 했는데 지키지 않았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제. 안희정 대신 안철수를 찍기로 했고마.”
이씨처럼 안철수 후보에게 새 정치 이미지를 투사하는 배경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반문재인 정서’가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광산구 송정동에서 만난 회사원 김종현(42)씨는 “‘문재인은 안 된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하도 듣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프레임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여기에 경선 과정에서 극성 문재인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이나 악성 댓글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면도 있다”고 안철수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를 찍는다는 이른바 ‘역선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철수 후보 자체에 대한 호감도 상승하고 있었다. 동구 금남로에서 만난 장윤수(43)씨는 “안철수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강단 없어 보여서 별로였는데 요새 ‘독철수’가 된 것 같아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저음으로 목소리를 바꿔가며 격정적으로 연설한 안 후보의 모습에서 달라진 면모를 확인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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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상승세에 대한 우려는 민주당 내에서도 나온다. 민주당 소속 광주시 한 구의원은 “민주당 경선인단에 참여해준 지인들을 최근 만났더니 모두 안철수를 찍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안철수 개인은 훌륭하지만 결국 세력이 집권하는 건데 보수적·수구적 세력이 붙고 있으니 걱정된다고 겨우 설득했제. 이대로 가다간 정말 장담할 수 없으야!”
안철수 후보에 대한 호감도 상승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갤럽이 주요 5개 정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된 뒤 처음으로 4월4~6일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후보 선호도’를 조사했다. 4월7일 발표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안 후보는 호감도 조사(광주/전라 지역)에서 ‘호감이 안 간다’(32%)보다 ‘호감이 간다’(65%)는 응답이 두 배 정도 높았다. 한국갤럽의 지난 조사(3월 셋쨋주)에서 3주 만에 호감(55%)은 10%포인트 상승하고 비호감(39%)은 7%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반면 문 후보는 광주/전라 지역에서 호감 60%, 비호감 33%를 나타내 지난 조사(호감 61%, 비호감 30%)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안철수 지지의 이면에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지역주의의 그림자도 엿보인다. 이른바 ‘호남 욕망’의 발현이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 대표 ㅇ씨는 “지역경제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장년층이 안철수 후보를 호남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으로 여기는 것 같다. 광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역구 의원이 많은 국민의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했다는 시민 강창원(54)씨도 과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호남 사람들이 항시 차별받은 기억이 머릿속에 있는디, 그래서 호남 쪽 투자하고 인재 등용해줄 사람이 누군가 먼저 생각허지 않으요. 그래서 국민의당과 안철수를 지지허는 거요”라고 말했다. 호남의 이익을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에 투영한 것이다.
광주와 호남에선 세대를 기준으로 지지가 갈리는 현상이 뚜렷했다. 4월12일 오후, 광주 광산구의 한 공원에서 공공근로사업에 나선 주민들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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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광주와 호남 민심의 절반 가까이가 차기 대통령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MBN· 의뢰로 4월10~12일 사흘 동안 전국 1525명(무선 90%, 유선 10%)에게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를 조사해 13일 발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를 보면, 문 후보는 지난주 대비 2.6%포인트 상승한 44.8%를 기록했다. 안 후보 역시 지난주 대비 2.4%포인트 상승한 36.5%를 나타냈지만,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격차는 여전히 오차범위(±2.5%포인트)를 벗어난 8.3%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안 후보는 4월10일 일간 조사에선 38.2%까지 상승했지만 ‘유치원 공약’ 논란이 벌어진 11일과 12일에는 각각 37.0%와 35.9%로 지지세가 소폭 꺾였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듯, 광주 시내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들은 문 후보 지지 의사와 더불어 안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11일 오후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만난 이진호(34·직장인)씨는 “촛불과 거리를 뒀던 안철수 후보가 뜨고 있다는데 촛불 민심은 다 어디로 갔느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돼 촛불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 치평동의 한 국밥집에서 일하는 최아무개씨 역시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란 안철수 후보가 과연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없는 사람들 위해 변호사 활동을 한 문재인 후보가 우리 같은 사람들 처지를 알지 않겠냐”고 말했다.
‘조·중·동’ 등 보수세력의 지원을 받는 안철수 후보에 의구심을 갖는 의견도 있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직장인 박미숙(42)씨는 “조갑제 같은 극우 인사가 ‘문재인을 막기 위해 안철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걸 보면, 안 후보는 결국 적폐 세력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되는 거 아니냐. 설령 집권하더라도 그짝 눈치 보느라 개혁 지대로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동구 금남로에서 만난 자영업자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새 정치를 한다는 안철수 후보가 뭔 새 정치를 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겄소. 4차 산업혁명을 한다는디 이것도 이미지만 있고 실체가 없는 거 아니오.”
광주와 호남에선 세대를 기준으로 지지가 갈리는 현상도 뚜렷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안 후보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았다. 한양선(28·직장인)씨는 과 통화에서 “주변 20~30대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있어도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최근 현상을) 다들 이상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한국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문재인 후보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박가현씨도 “적폐 청산이 다 됐다는 분위기라는데 재벌 개혁과 검찰 개혁 등 뭐 하나 된 게 있냐”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촛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두 후보의 지지가 팽팽히 맞서면서 관망하는 시민도 많아 보였다. 광주 지역 전문가들은 대체로 30%의 유권자가 여전히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동층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임아무개(54)씨는 “주변에 물어보면 아직 3주가 남았으니 텔레비전 토론회 등을 지켜보면서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을지 결정하겠다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치평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노아무개씨도 “각 당의 후보가 모두 결정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정권 교체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태 전남대 교수(역사교육학)는 4월11일 과 통화에서 “문재인 후보가 적폐 청산에서 나아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지금처럼 네거티브 공세에만 매달린다면 호남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지난 총선과 달리 정권 교체가 확실시되는 이번 대선에선 호남 유권자가 더 마음 놓고 국민의당과 안철수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문 후보 입장에선 여론조사에선 안 잡히는 ‘샤이 안철수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쏟아져나올 수 있다는 매서운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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