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줄곧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역사 선생님’을 꿈꾸던 평범한 대학 시절, 그의 삶을 바꾼 것은 1970년 서울 청계천에서 “노동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그은 노동자 전태일이었다. 그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을 읽으며 엄혹한 노동현실에 눈떴다. 심 후보는 책 속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철야와 잔업에 힘겨워하는 ‘여공’들의 비참한 삶을 보았다. “절대다수 국민인 이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고 생각한 심 후보는 대학 3학년 때 서울 구로공단 미싱사로 위장 취업해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노동계 ‘철의 여인’의 눈물그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쫓기는 몸이 됐다. 구로공단 노동조합들이 연대해 벌인 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일주일 만에 정리된 이 파업으로 44명이 구속되고 1300여 명이 해고된다. “파업 닷새쯤 되던 날 텔레비전 9시 뉴스를 보던 중 화면에서 ‘1계급 특진, 현상금 500만원’이 걸린 내 얼굴을 봤다. 그것은 내가 언론과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었다.”(, 레디앙 펴냄, 2008)
체포를 면한 채 수배생활을 하면서도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결성했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에 함께했다. 1995년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1996년부터는 민주노총 산하조직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을 맡았다. 2003년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대한민국 최초로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삭감 없는 주 5일 근무제 합의에 성공하면서 이를 주도한 심 후보는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전적 에세이 엔 ‘철의 여인’이 아닌 ‘엄마 심상정’이 겪어야 했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심 후보는 9년 의 수배생활 동안 결혼과 임신을 했다. 심 후보는 그 사실이 늘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회고한다. 항상 바빴던 엄마의 빈자리가 미안했고, 엄마의 뒷바라지 없이 고3 수험생활을 한 아이의 말 못할 하루하루가 미안했다. 지방에서 일하던 심 후보는 주말이 되면 시간을 쪼개 아이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왔다. “아이랑 함께 자다가 새벽에 살짝 일어나 가는데 아이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철의 여인’은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심 후보가 제1호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부부 출산휴가 1개월 의무제 등 생애단계별 육아 정책(슈퍼우먼방지법)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 일하는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슈퍼우먼이 되기를 강요받는 현실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제가 정치를 하게 된 것은, 노동운동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방망이를 두들기는 그 자리, 정치적 결정의 자리에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힘이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요. 노동조합이 발전하고 노동계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진보정당이 서 있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좋은 정당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념이었습니다.”(,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3)학생운동을 시작으로 25년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심 후보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엔 기득권 타파에 앞장섰다.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폐지, 철도 무임승차제 폐지, 국회의원 특별활동비 영수증 제출 의무화 등이 그것이다. 그는 ‘경제 저격수’로도 유명하다.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약하며 당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특별위원장, 삼성 비자금 특별대책위원장 등을 맡았다.
심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노회찬, 유시민, 이정희 등과 힘을 합쳐 2011년 통합진보당(통진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등으로 폭력 사태가 빚어지자 통진당을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거쳐 정의당을 창당했다. 노동운동의 길도 험난했지만 진보정치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 패배 뒤 쓴 책 에서 이렇게 말한다. “2008년 4월10일. 버릇대로 새벽에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나려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새벽임을 깨닫는다. 그래, 선거는 끝났고 우린 패배의 쓴잔을 들었지. …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의석 하나 못 건진 당은 어떻게 하나’ 온갖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나보다 더 절망할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보정치는 ‘관념’에서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는 몇 가지 정책 제시만으로 획득될 수 없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생활 정치의 모범을 만드는 일, 그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패배가 준 가장 큰 교훈이었다.”
버릴 것과 지킬 것 사이에서심 후보는 노동운동가 출신 3선 의원이다. 그는 14년째 “버릴 것과 지킬 것 사이에서 계속 배우며 대중적 진보정치로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품고 뚜벅뚜벅 진보정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는 “비주류로 살더라도 내 중심을 분명하게 쥐고 가는 것, 그게 제가 가진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5월9일 치르는 19대 대선은 심상정의 세 번째 대선 도전이다. 그는 3월 대선 출마 선언에서 “노동 존중을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돈보다 생명과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 돈이 실력이 아니라 땀과 노력이 실력인 사회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선 완주와 두 자릿수 지지율을 목표로 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느냐, 그것이 진보와 기득권 세력의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그 마음은 동정심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입니다. 나 또한 그런 인간이고, 그것에 공동의 책임을 느끼는 것, 그런 이해가 없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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