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은 공화당 소속으로 1858년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상대는 ‘작은 거인’이라 불린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였다. 더글러스는 일부 주에서 금주운동이 벌어지고 관련 법(메인법)이 최초로 발효되던 민감한 시기에 ‘링컨이 예전에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서 술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링컨은 이렇게 응수했다.
“더글러스가 말한 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우리 가게를 가장 많이 이용한 고객 중 한 분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 후 저는 가게를 그만두었지만 더글러스는 여전히 가게를 드나들었습니다.”
한 방 먹은 더글러스는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해 다른 정견 발표장에서 더글러스는 링컨을 일컬어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몰아붙였다. 전형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다. 링컨이 답했다. “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만일 내게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선거는 링컨의 패배로 끝났지만 유권자들은 흑색선전마저 유머로 되받아치는 ‘정치 신인’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다.
‘말폭탄’ 날아드는 치열한 전쟁터다시, 네거티브의 계절이다. 4월17일 제19대 대통령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상대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비난해 지지율을 떨어뜨리려는 ‘말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당선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후보들의 ‘화투’(話鬪)가 미디어와 인터넷 게시판,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후보 자신의 삶 곳곳과 가족에게까지 ‘말폭탄’이 전방위적으로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150여 년 전 미국의 걸출한 정치인이 보여준 우아한 네거티브 대응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네거티브 싸움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번 선거가 사실상 문-안 양강 구도로 치러지면서 네거티브 공방도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안 후보를 둘러싸고 최근 논란이 재점화되는 것은 (주)안랩(안철수연구소) 관련 의혹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2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99년 안랩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안 후보가 인수한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BW를 이용해 편법 상속을 받은 것과 똑같은 수법이라 비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은 “2012년 대선 때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한 사안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는데도 흑색선전을 한다”고 반박했다.
BW는 일정 기간 뒤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와 고정된 이자를 받는 회사채가 결합한 금융상품이다. 재벌 3세들은 1990년대 말 비상장 계열사의 BW를 헐값에 인수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었다. 이후 BW는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은 1999년 삼성SDS의 BW를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헐값으로 발행한 혐의가 인정돼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안랩 BW 사태는 안 후보가 1999년 10월 자신이 대주주인 안랩이 발행한 만기 20년짜리 BW 25억원어치를 전량 인수한 것에서 시작됐다. 안 후보가 실제 회사에 지급한 돈은 3억4천만원으로 연 10.5%의 할인율이 적용됐다. 이때 안랩 주식 25억원어치를 주당 5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얻은 안 후보는 실제 1년 뒤 권리를 행사했다. 다른 주주들인 삼성SDS(지분 23%)와 산업은행(15.4%) 등은 모두 BW 인수를 포기했다.
문-안, ‘문자폭탄’ ‘적폐’ 놓고 설전안랩 BW 사태도 삼성과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전문가는 “삼성과 산업은행은 안랩이나 안 후보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BW 인수 포기는 독자 판단으로 봐야 한다”면서 “다른 주주들도 안 후보의 BW 인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본 것 아니겠냐”고 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비상장 벤처기업의 경우 기업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별도의 장외시장 거래가 없는 상황에서 직전 유상증자 발행가격과 같기 때문에 ‘이재용의 헐값 인수’와 같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와 통화에서 “안 후보의 BW 인수가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대주주의 지분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안 후보가 솔직히 해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에선 당 대 당의 대리전이 아닌 후보들 간 ‘육탄전’도 벌어진다. 4월19일 대선 후보 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첫 토론에서 설전을 벌인 ‘문자폭탄’ ‘적폐’ 논란 2라운드를 이어갔다. 안 후보는 문 후보를 향해 “(문 후보를) 지지하는 분이 KBS에 출연 거부당하자 (문 후보가) 분노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수 전인권씨가 저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문 후보 지지자들에게 ‘적폐 가수’라는 말까지 들었다. 옳은 일이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제가 한 말은 아니지 않냐”며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다고 해서 폭력적, 모욕적 문자폭탄을 보내면 옳지 않다고 말했다”며 확전을 차단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문 후보께서 문자폭탄이나 막말 같은 걸 왜 ‘양념’이라고 했냐”며 재차 물었다.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지난 4월3일,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문자폭탄 논란에 대해 “그런 일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다보면 있을 수 있다. 저는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일을 꼬집은 것이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질문에 “후보들 간의 치열한 논쟁이 경선을 위한 양념이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문 후보는 ‘패권주의’와 비선 논란 등으로 누구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주 타깃이 되어왔다. 민주당 경선 초기부터 바른정당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 문 후보 아들의 채용 특혜 의혹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를 보면,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월 한국고용정보원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장이던 권재철씨는 대통령비서실 노동비서관 시절 1년4개월 동안 문재인 민정수석을 직속 상관으로 모신 인연이 있다.
대선 후보들의 아킬레스건 가족 논란고용정보원은 2006년 11월30일 인사 채용 공고를 정부 포털 사이트 ‘워크넷’ 한 곳에만 올렸다. 그해 3월 고용정보원 창립 뒤 진행한 세 차례 채용 때 워크넷, 일간지, 홈페이지, 교수신문 등 2~5곳에 공고를 냈지만 당시엔 이 전례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공고는 원서 접수 시작(12월1일) 하루 전이었고 접수 기간도 12월6일까지로, 통상 16~42일이던 이전 접수 기간보다 훨씬 짧았다. 준용씨가 이 분야에 혼자 원서를 내고 합격하면서 “고용정보원 내부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당시 고용정보원 중간 간부)했다.
문 후보 쪽은 “워크넷은 2006년 당시 하루 이용자가 23만 명 수준으로, 공공기관을 포함한 정부기관 채용 공고를 상시적으로 게재하던 사이트”라고 설명했다. 공고 기간이 유난히 짧았던 이유는 “고용정보원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용 채용이었으며, 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공고 기일을 단축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공고 기간 단축이 인사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2007년 4월, 준용씨 특혜 채용 의혹이 국회에서 처음 제기되자 당시 노동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고용정보원을 감사한 뒤 그해 5월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선 “(채용 공고가)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함이었다는 의혹을 갖게 하였”지만 “특정인 특혜 채용 목적으로 채용 공고 제목 및 모집 안내 내용을 미리 의도적으로 조작한 정황증거는 발견되지 않음”이라고 밝혔다. 또 준용씨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었으며 대졸 예정자를 특별히 배제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특혜 채용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채용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지만 의심을 받을 정도로 행정 처리가 미숙했다는 의미다.
국민의당은 4월19일 준용씨의 아파트 매입자금 출처 의혹을 제기한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금수저 문준용은 취업 특혜로도 모자라 아파트 구입마저 문 후보의 불법 증여를 통해 해결한 것은 아닌지 국민이 궁금해한다”고 추가 공세에 나섰다.
손금주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2천만원 월세에 거주하던 문준용씨는 2014년 4월 3억1천만원에 서울 소재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본인 이름으로 1억5천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취득·등록세, 부동산 중개수수료 등의 비용을 감안하면 1억1천만원 정도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혁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은 같은 날 당사 브리핑에서 “준용씨 명의로 1억5천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고 나머지 1억6천만원은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증여세 면제 한도액 내에서 지원을 받고, 준용씨 부부의 소득과 저축, 보유자금을 보태 충당했다. 더 이상 거짓말로 문재인 후보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고 즉각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후보에게 아킬레스건이 아들 준용씨 논란이라면, 안 후보는 아내 김미경씨의 서울대 의대 교수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도종환 의원 등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4월12일 김씨가 2011년 서울대 의대 전임교수 특별채용 때 제출한 채용지원서 등을 공개하며 “서울대가 채용 계획을 수립하기도 전에 김씨는 이미 채용지원서와 관련 서류를 작성해놓았다. 이는 김 교수가 앞서 채용된 안 후보와 함께 ‘끼워팔기’식으로 임용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재두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국정감사에서도 김미경 교수의 채용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지 오래다. 서울대에서도 채용에 문제없음을 밝혔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안 후보 쪽에선 서울대 채용 계획이 정해지기도 전에 채용지원서 등을 작성한 구체적 경위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상대 후보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고질적 흑색선전도 난무한다. 김유정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4월18일 문 후보의 ‘세월호 단식’ 기간 식비가 지출됐다는 근거를 들어 “가짜 단식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놨다. 이에 민주당은 “문 후보가 가짜 단식을 했다는 직접적인 근거가 없다. 지난해 말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합법 지출 항목인 보좌진 밥값을 문 후보가 사용한 것처럼 오도했다”고 맞받아쳤다.
박지원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4월20일 서울 여의도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 후보 선대위에서 생산된 네거티브 지시 문건을 입수했다. 안 후보에 대한 온갖 네거티브 공작의 컨트롤타워를 찾아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이날 낸 논평에서 “‘가짜 뉴스’ 공장장 박지원 대표의 적반하장”이라며 “자신들이 매일 생산하는 막말과 가짜 뉴스는 잊으셨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네거티브 홍수 속에 ‘옥석’ 가리기대선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그러나 네거티브는 선거의 한 요소이며, 동시에 필수 술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머피는 “사람들은 종종 네거티브 광고에 신물이 난다고 한다”고 하지만 “네거티브 정보는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정치 컨설턴트와 여론조사 전문가로 일한 배철호·김봉신씨도 저서 (글항아리 펴냄, 2017)에서 “네거티브를 하지 않고 정책 대결만 하겠다는 도덕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태도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반문했다. 네거티브는 우리나라에서만 성행하는 행태도 아니고, 오히려 공직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검증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때 ‘네거티브’란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 아니라 “7할의 사실과 3할의 진실(해석)에 기반을 둔”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네거티브를 말한다. 누가 긍정적 네거티브 전략을 활용하는지, 그냥 흑색선전을 남발하는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쏟아지는 네거티브 홍수 속에 ‘옥석’을 구분해낼 수 있는 눈 밝은 유권자가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모습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들은 1858년 선거에서 더글러스의 네거티브를 포지티브한 유머로 응수한 링컨이 2년 뒤 1860년 미국 16대 대통령으로 설욕한 사실을 잘 아는 정치인들이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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