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정치인 문재인의 삶을 붙잡는 키워드다. 그의 정치 행로의 출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대학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전력 때문이었다. 그때 연수원 동기 박종규의 제안을 받았다. 판사를 마치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과 동업해보라는 것이었다. 박종규와는 훗날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앞뒤로 맡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문재인은 ‘궁합’이 잘 맞았다. 기질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사건을 다루는 자세와 태도가 비슷했다. 부산 지역에 시국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가 달리 없다보니, 두 사람한테 봇물처럼 사건이 쏟아졌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노 변호사는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재인은 노 변호사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때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고 말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아 새벽까지 일보따리에 묻혀 지내는 나날이었지만,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 시쳇말로, 돈도 벌면서 인권변호사라는 좋은 소리도 들었다.
그는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을 겪을 때마다 변호사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흘러갔다. 문재인이 노무현을 끄는 힘보다 노무현이 문재인을 끌어당기는 자력이 훨씬 더 강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에서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그리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문재인은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운명적 변신을 거듭했다.
문재인과 대담을 나눈 뒤 (다산북스 펴냄, 2017)를 펴낸 심리학자 이나미는 그의 인격적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 선한 사람, 신중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단호한 사람, 희생적인 사람, 의로운 사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극상찬을 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문재인한테는 ‘2% 부족하다’는 양면적 평가를 내린다. 잘 정돈된 이성에 비해 욕망이 극도로 억제된, 방황하지 않는 파우스트랄까.
“설레발도 치지 못하고, 분위기 띄우기도 잘 못하는” 문재인의 롤모델은 다산 정약용과 정조 때 이덕무 같은 실용주의자다. 그는 유전자변형식품(GMO) 논란에 대해 “인공적인 생태근본주의는 반대한다. 무 자르듯이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재인의 그런 ‘실용주의’는 상당한 정책적 합리성과 현실성을 갖췄으면서도, “그래서,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라는 거친 공격에 자칫 중심이 흔들리기 쉽다. 그는 81만 개 공공 일자리를 늘린다면서도 큰 정부로 가는 것은 아니라 하고, 막대한 재원을 ‘증세’보다는 ‘조세개혁’으로 우선 조달하겠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큰 정부로 가겠다” “전면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왜 분명하게 자기 신념을 말하지 못하는가? (장인이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에) “그러면 마누라를 버리라는 말이냐”고 정면 돌파했던 노 전 대통령의 직관적 행동이 문재인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런 애매모호함을 두고 한편에선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모르겠다고 지적하지만, 지지자들은 ‘합리적 개혁성’ 또는 ‘분별 있는 열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 후보에게는 그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두 개의 시선이 뚜렷이 교차한다. 대세에 가장 근접한 후보이기에 교차각이 더 예리하다. 무엇보다 ‘우리 안의 근본주의’를 성찰해야 한다는 요구나,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경직된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크게 세상을 아우르는 길을 열어갈 수 있을까?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박나래 방송 활동 중단…“전 매니저와 오해는 풀었으나 제 불찰”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8/53_17651431283233_20251207502130.jpg)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

‘4수’ 망친 수험생 위로한 평가원 직원 “저도 평가원이 죽도록 미웠지만…”

편파 자초한 특검…“통일교, 민주당에도 현금” 공소시효 만료 임박

이 대통령, ‘정원오 서울시장’ 밀어주기?…“잘하기는 잘 해, 저는 명함도 못 내”

내년부터 수서역에서 KTX 탄다…15년 만에 코레일-SR 통합

‘조진웅 소년범’ 첫 보도 기자들 고발당해…“상업적 관음증이 법치 조롱”

민주 ‘내란전담재판부 의총’ 다시 열기로…연내 처리는 불변

뜨끈한 온천욕 뒤 막국수 한 그릇, 인생은 아름다워
![이 대통령 지지율 54.9%…민주 44% 국힘 37% [리얼미터] 이 대통령 지지율 54.9%…민주 44% 국힘 37% [리얼미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8/53_17651505356622_20251208500225.jpg)
이 대통령 지지율 54.9%…민주 44% 국힘 37% [리얼미터]


![[단독] 통일교 ‘민주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 특검은 수사 안 했다 [단독] 통일교 ‘민주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 특검은 수사 안 했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8/53_17651547510563_20251208500699.jpg)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