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다. 여울목도 많았다. 그러나 늘 함께했다. 이제 육신은 이별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와 그는,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혹은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가교출판 펴냄, 2011)
운명. 정치인 문재인의 삶을 붙잡는 키워드다. 그의 정치 행로의 출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대학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전력 때문이었다. 그때 연수원 동기 박종규의 제안을 받았다. 판사를 마치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과 동업해보라는 것이었다. 박종규와는 훗날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앞뒤로 맡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노 변호사 사무실은,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부산지방)법원의 정문 쪽이 아니고 후문 쪽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 본 노 변호사는 젊었다. 1978년 개업을 했는데, 부산에서 제일 젊고 고시 기수가 낮은 변호사였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느낌이 달랐다.”()인권변호사 노무현과 문재인은 ‘궁합’이 잘 맞았다. 기질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사건을 다루는 자세와 태도가 비슷했다. 부산 지역에 시국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가 달리 없다보니, 두 사람한테 봇물처럼 사건이 쏟아졌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노 변호사는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재인은 노 변호사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때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고 말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아 새벽까지 일보따리에 묻혀 지내는 나날이었지만,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 시쳇말로, 돈도 벌면서 인권변호사라는 좋은 소리도 들었다.
그는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을 겪을 때마다 변호사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흘러갔다. 문재인이 노무현을 끄는 힘보다 노무현이 문재인을 끌어당기는 자력이 훨씬 더 강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에서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그리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문재인은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운명적 변신을 거듭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선한 문재인’과 ‘위선자 문재인’문재인과 대담을 나눈 뒤 (다산북스 펴냄, 2017)를 펴낸 심리학자 이나미는 그의 인격적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 선한 사람, 신중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단호한 사람, 희생적인 사람, 의로운 사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극상찬을 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문재인한테는 ‘2% 부족하다’는 양면적 평가를 내린다. 잘 정돈된 이성에 비해 욕망이 극도로 억제된, 방황하지 않는 파우스트랄까.
“문재인은 선한 정치인이지만, 너무 엄격한 잣대로 추상같은 법 집행만 고집한다든가 혹은 세상을 선함과 악함의 이분법으로 나눈다면 많은 사람과 자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선한 문재인’이 누군가로부터 ‘위선자 문재인’으로 공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단호함은 때로 ‘차가움’이나 ‘가차 없음’ 혹은 ‘융통성 없음’으로 비칠 수 있다. …자신의 소신이 100% 옳은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따져보고 되돌아봐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에게는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의리 있는 사람들이 더욱 소중할 수 있다. …그의 측근들이 최순실이나 김기춘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것이다. …크고 선한 눈의 문재인에게 그런 냉철함과 단호함이 과연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설레발도 치지 못하고, 분위기 띄우기도 잘 못하는” 문재인의 롤모델은 다산 정약용과 정조 때 이덕무 같은 실용주의자다. 그는 유전자변형식품(GMO) 논란에 대해 “인공적인 생태근본주의는 반대한다. 무 자르듯이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재인의 그런 ‘실용주의’는 상당한 정책적 합리성과 현실성을 갖췄으면서도, “그래서,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라는 거친 공격에 자칫 중심이 흔들리기 쉽다. 그는 81만 개 공공 일자리를 늘린다면서도 큰 정부로 가는 것은 아니라 하고, 막대한 재원을 ‘증세’보다는 ‘조세개혁’으로 우선 조달하겠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큰 정부로 가겠다” “전면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왜 분명하게 자기 신념을 말하지 못하는가? (장인이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에) “그러면 마누라를 버리라는 말이냐”고 정면 돌파했던 노 전 대통령의 직관적 행동이 문재인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런 애매모호함을 두고 한편에선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모르겠다고 지적하지만, 지지자들은 ‘합리적 개혁성’ 또는 ‘분별 있는 열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편 가르는 근본주의 극복해야 “문재인은 개혁 의지가 분명하다. 참여정부 시절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원인과 처방도 안다. 무엇보다 개인적 약점이 없다. …누구보다 제도의 합리적 개혁을 통해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갖춘 적임자이다.” “최선에 해당하는 무결점의 영웅을 찾기보다는… 국가 정상화의 어려운 여정을 끝까지 함께할 최적의 일꾼에게 무겁고 중요한 임무와 책임을 맡기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은행나무 펴냄, 2017)문 후보에게는 그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두 개의 시선이 뚜렷이 교차한다. 대세에 가장 근접한 후보이기에 교차각이 더 예리하다. 무엇보다 ‘우리 안의 근본주의’를 성찰해야 한다는 요구나,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층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임기 내내 노동계나 진보적인 사람들한테도 많은 실망을 안겼다. 워낙 기대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다 대통령에 투사하는 국민 정서 탓일 수도 있다. …통합을 말하면서도 선을 긋고 편을 가르는 근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경계는 문재인이란 개인이 정치인생 내내 안고 가야 할 과제이다.”()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경직된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크게 세상을 아우르는 길을 열어갈 수 있을까?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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