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합동분향소 앞 세월호 3주기 추모식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행사장 맨 앞줄에 추미애 당대표와 함께 앉아 있었다. 곧바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도착했다. 앞줄 사람들과 하나하나 악수하던 안 후보가 문 후보 앞에서 갑자기 몸을 획 돌려 그대로 자리에 앉아버렸다. 두 사람의 악수 장면을 찍으려던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허, 참!” “야, 심하다” “저런 밴댕이!” 등의 탄식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 기자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때 문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철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당황한 안철수는 어정쩡하게 악수를 하더니 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아마 이때 안철수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나보다.”
“고마움 모르는 건 짐승만도 못한 것”정치인은 흔히 ‘철면피’라 불린다.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던 정적이라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실제 속마음은 어떻든) 반갑게 악수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는 뜻에서다. 필부들에겐 쉽지 않은 ‘경지’겠지만,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정치의 속성상 자연스럽게 몸에 붙은 처세술일 것이다. 만약 안 후보가 문 후보와 눈을 맞대고 악수를 나누는 것조차 꺼릴 정도라면 정치인의 처세술로도 용납하기 어려울 만큼 감정의 골이 깊다는 얘기가 된다. 2012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라는 한뜻을 품은 동지였던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관계의 강’을 건넌 이유는 뭘까?
다음 장면은 그 감정의 기원을 어림잡게 한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월 (21세기북스 펴냄)라는 대담집을 내놓았다. 대담집에서 “그때(2012년 대선) 만약 안철수 의원이 미국으로 가지 않고 함께 선거운동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그런 식의 아쉬움을,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알 수는 없다”고 답했다. 왜 붙잡지 못했냐는 후속 질문에 “제가 안철수 의원이 아니니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죠. 그건 그분의 몫 아니겠습니까”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사실 대담집에서 문 후보가 “안 의원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발언들 속에서 안 후보에 대한 문 후보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안 후보는 2012년 대선 당일인 12월19일 오후 딸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해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물론, 안철수 후보가 기억하는 2012년 상황은 다르다. 그는 2월13일 오전 광주염주체육관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포럼 초청토론회에서 문 후보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안 후보는 “후보 양보 이후 40회 넘는 전국 유세와 3회에 걸친 공동 유세를 했다. 선거 하루 전날 밤에도 강남역 사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안 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대권 도전을) 양보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기본적 도리가 아니냐. 양보했을 뿐만 아니라 도와줬는데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당신 때문에) 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메가톤급 폭탄은 이 발언 직후에 터졌다. 안철수 후보는 “약간 더 심하게 말하자면…”이라고 운을 뗀 뒤, “동물도 고마움을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전제하긴 했지만, 패널들도 “아, 세다”라고 평할 정도로 안 후보가 문 후보 진영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안 후보의 공격에 문 후보는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양 후보 사이 감정의 골은 이미 파일 대로 파인 뒤였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발언이 나온 당일 경기도 고양시 한국시설안전공단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안 전 대표의 이런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질문을 받고 “네, 그냥 넘어가죠. 네, (다른 질문) 또요”라고 말했다. 문 후보의 반응은 2012년 12월 대선 상황을 두고 양쪽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괜한 말을 덧붙여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문 후보 캠프 또한 “안 전 대표의 주장 속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문재인과 안철수.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두 사람은 2012년과 이번 2017년 대선을 거치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시작은 2012년이었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안 후보는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11월23일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라며 ‘충격적’인 불출마 선언을 했다. 후보 자리는 양보했지만 마음속 앙금은 그대로 남았다.
“안 후보가 좀더 적극 도왔다면”지난 대선에서 안 후보에게 조언과 자문을 하는 등 가깝게 지낸 한 인사는 인터뷰에서 당시 안 후보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둘 사이의 감정은 몹시 안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과의 단일화 협상 결렬 이후 ‘문재인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깊다’는 식으로 말했다. ‘인간적으로 굉장히 신뢰가 안 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어 “단일화 협상이 깨지고 나서 안철수씨가 캠프에 와 측근들에게 격렬한 어조로 문재인씨를 비난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측근들도 안 후보가 왜 그렇게 비난을 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아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불신은 굉장히 뿌리 깊은 것 같다. 개인 간 감정 때문이라도 두 사람이 어떤 문제에 합의에 이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서 일한 김아무개씨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뚜렷하게 이야기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서도 “문은 안에 대해 따로 이야기한 적이 없고, 안도 문에 대해 뚜렷이 이유를 설명한 적이 없다. 여하튼 두 사람 사이가 뭔가를 놓고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2012년 대선의 단일화 협상과 출마 포기 결단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안 후보가 속내를 털어놓지 않으니, 주변 인사들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안 후보를 보좌한 이들이 ‘안철수 현상’의 성공과 실패를 대담 형식으로 엮은 책, (더굿 펴냄, 2015)는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안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기획위원을 한 강동호씨는 이 책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안철수 본인이 대선에 나온 가장 큰 이유와 가치는 야권을 재편한다는 것이었어요. (…) 본인을 통해 야권이 확 개편되고 중도로 외연을 더 넓혀서 잘못된 보수를 이겨낸다는…. 자기 명분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본인이 단일화 결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선을 완주했을 때, 야권 단일화나 정권 탈환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그런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 결국은 ‘문재인 이 사람은 이번 대선이 완전히 어그러진다고 해도 자신의 대선 출마를 끝까지 밀고 갈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정권 교체가 안 되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이른바 ‘치킨게임’에서 안 후보가 밀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 쪽 관계자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4월25일 과의 통화에서 “후보를 양보한 것 자체야 감사한 일이지만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걸 두고 인간적인 실망 운운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사퇴 이후에도 일주일 이상 시간을 끈 뒤 지원에 나서는 등 선거전 내내 소극적으로 도왔다는 점에서 선거 결과를 두고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 후보가 좀더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겠냐는 의견이다.
이런 의견은 2012년 대선을 취재한 현장 기자들에게서도 확인된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담당한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한번은 지방 유세 현장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공동유세를 했는데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이 ‘포옹 한번 해달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그러자 문 후보가 안 후보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런데 안 후보가 끝까지 포옹을 하지 않더라. 다들 그걸 보고 ‘안철수의 속마음은 돕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약속 저버려” vs “새정치 비현실”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책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2017)에서 강력하게 부인한다.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 40회 넘는 전국 지원유세와 4차례의 합동유세를 진행했고, 대선 직전 ‘광화문 대첩’ 집회에서 노란 목도리를 직접 걸어주고 포옹했습니다. 선거운동 종료 전날에도 자정까지 명동에서 유세하는 등 선거를 도와주었습니다. 이는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 15회, 합동유세 4회를 진행한 것이나 2007년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만 22회를 지원한 것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저는 단일화를 하겠다는 국민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진심캠프에서 정치혁신위원을 한 정연정씨는 책 에서 대선 전날인 12월18일 ‘광화문 대첩’이 안철수가 친노 세력과 결별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때 유세 당시, 안철수가 연단에 오르려는 순간 펼쳐진 친노 중심의 폐쇄적인 선거운동 풍경이 안철수에겐 상당히 충격이었던 거죠. 소위 친노 연예인, 친노들이 대거 무대 위에 올라와서 마지막 유세를 장식했어요. 중도층, 무당층, 새정치 지지층은 온데간데없고 친노들만의 제를 국민 앞에 보여준 거죠. (…) 안철수를 불러다놓고는….”
사퇴 이후 시간을 끌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진심캠프에서 간부를 한 ㄱ씨의 얘기는 다르다. ㄱ씨는 4월24일 과의 통화에서 “사퇴 이후 문재인 캠프 쪽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을 우리에게 하지 않았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까 돌연 우리 쪽에서 ‘안 돕는다’는 말이 나오더라. 안 후보와 캠프 사람들이 화가 날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11월23일 안 후보의 사퇴로 형식적 단일후보가 결정된 뒤 12월6일 문-안 두 사람의 회동으로 내용상의 단일화가 완성될 때까지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돕기 위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시 언론은 전날 집으로 찾아온 문 후보를 피하기까지 했던 안 후보가 하루 만에 마음을 돌린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을 쏟아냈다. 안 후보는 그날 입장문을 내 “오늘 문 후보께서 새정치 실천과 정당 혁신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했다. 정권 교체는 새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도 함께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결별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이뤄진 ‘그날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느낀 안 후보의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후보직을 내놓으면서까지 강조한 ‘새정치’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고 민주당과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새정치 구상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 또 의원 정수 축소 등 안 후보의 제안이 반정치적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이 합의가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안 후보는 2014년 자신이 주도한 새정치연합을 이끌고 민주당과 통합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출범으로 안 후보와 문 후보는 다시 한식구가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당 혁신을 놓고 건건이 부딪혔다. 2012년 단일화 협상 때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야 한다”며 상대방을 압박했다. 결국 이번에도 안 후보가 ‘결단’을 내렸다. 안 후보는 2015년 12월 자신의 혁신전당대회 요구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을 감행했다. 그는 새벽에 탈당을 만류하러 집으로 찾아온 문 후보를 만나주지 않았다. 대선이 끝나고 1년9개월 만에 이뤄진 ‘결별’이었다. 안 후보는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두 사람은 호남에서 정면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안 후보의 압승이었다. 안 후보와 국민의당의 녹색 물결에 밀린 민주당은 호남에서 2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이제 둘은 5월9일 ‘대선’이라는 외길에서 모든 것을 건 또 한 차례의 대결을 벌인다.
5월9일 치르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지난해 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을 수놓은 촛불로 인해 새누리당이 해체되면서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화됐다는 점이다. 광장의 함성이 잦아든 뒤 남겨진 것은 문 후보와 안 후보 사이 격렬한 공방과 감정적 대립이다.
적폐 청산과 새정치의 길안철수 후보는 4월27일 제주도 유세에서 “만약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역사상 최악의 불통 대통령이 될 것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아랫사람이랑 상대하라고 호통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 이날 대구를 찾아서는 “저를 지지하는 국민을 적폐라고 공격하던 문재인 후보가 이제 와서 통합을 말한다. 거짓말에 한 번 속으면 실수지만 두 번 속으면 바보”라며 공격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문 후보도 4월22일 울산시 유세에서 “선거 때가 되니 또다시 색깔론과 종북몰이가 시작됐다. 한손으로는 김대중 정신을 말하면서 호남표를 받고자 하는데 다른 한손으로는 색깔론으로 보수표를 받고자 하는 (안철수) 후보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 사람은 ‘적폐 세력’과 ‘MB 아바타’ 등의 단어를 거론하며 네거티브 공방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한때 서로에 대해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이자 국정 경험이 있고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거나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릴 가능성을 보여준 분으로 새로운 정치를 여는 대열에 합류하기를 기대한다”고 치켜세우던 따뜻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박근혜 정권 타도’와 ‘적폐 청산’으로 하나가 됐던 촛불 역시 문과 안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갈가리 찢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받은 또 한 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과 안철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두 정치인이 김대중-김영삼처럼 라이벌만이 아닌 때론 협력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힘들더라도 그게 새정치고 적폐 청산의 길이 아니겠는가.” 촛불 시민 최영민(40)씨의 말이다. 이 당부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촛불이 묻는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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