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후 최대 진압 작전으로 기록된 ‘한총련 사태’로 대학생 5848명이 연행되고 462명이 구속됐다. 왼쪽은 5·6공에 부역했던 검찰을 고발한 1996년 1월25일치 제93호.
우울한 1996년의 서막이었을까. 새해 첫날, 데뷔곡 로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 서지원(당시 20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엔 “2집 활동을 앞두고 나는 더 이상 자신이 없다”는 마지막 고백이 적혀 있었다. 닷새 뒤 최고의 라이브 가수였던 김광석(당시 32살)씨도 스스로 생을 끝냈다. 유서는 없었다. 1천 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의욕에 차 있던 그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선 숱한 추측만 나돌 뿐이었다. 두 스타의 잇따른 죽음에 대해 당시 은 이렇게 분석했다. “어쩌면 끊임없이 남에게 감동을 안겨줘야 하는 스타들이 스스로는 심한 우울에 시달리는 아이로니컬한 스타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
늘 그렇게 현장에 있었다김영삼 정부의 임기도 막바지에 접어들던 1996년, 망가져 있던 건 스타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첫 문민정부로 민주주의적 정통성을 자부했던 김영삼 정권은 4·11 총선과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군사정권 못지않은 비민주주의적 본색을 드러냈다. 범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여권 집권 시나리오’가 작동된 것이다. 공안몰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여했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연세대에서 농성에 들어가자, 정부는 8월20일 전경 2만여 명을 투입해 강경 진압했다. 이 일로 5848명이 연행됐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그렇게 꺾여버렸다.
노동계 탄압도 절정에 달했다. 모두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있던 12월26일 새벽, 정부와 여당은 정리해고제, 대체근로 허용, 쟁의 기간 중 임금 미지급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노동법안을 다시 고치라’는 국민 77%의 요구(1996년 12월19일 여론조사)는 쉽게 묵살됐다.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몰두할수록 서민들의 생활은 황폐해졌다.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발전 전략의 한계로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뛰었으며 중소기업은 쓰러져갔다. 이듬해 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전조 현상이었다. 당시 은 월급쟁이 증세에 대한 서민의 불만과 복지에 대한 갈구, 취업난에 대한 공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치솟는 전셋값에 대한 불안을 부지런히 기록했다.
은 늘 그렇게 현장에 있었다. 지구 반대편도 가리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10년을 돌아보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날아갔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저항하던 인도네시아 민중을 만났다. 질긴 내전의 종말을 앞두고 있던 캄보디아에선 양쪽 진영의 전·현직 1·2인자를 나란히 인터뷰했다.
5·6공 부역자 기록으로 남겨창간 3년차에 접어든 의 고발은 전방위적이었다. 5·6공 부역자 시리즈에서 군사정권에 아첨한 법조계·종교계·학계·문화계 인사를 기록에 남겼고,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며 반노동적 행태를 자행한 삼성을 정면 비판했다. 대학(제99호 ‘돈 없인 교수 꿈꾸지도 말라?’), 환경(제116호 ‘누가 시화호를 죽였나’), 동물권(제119호 ‘야생곰 때려잡기 한국 1등’), 재일동포(제96호 ‘재일동포에게 조국 참정권을’) 등에 대한 앞선 문제제기도 쉼없이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중 조금은 바뀌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았다. 유독 우울했던 1996년보다 지금의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긴 한 걸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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