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지난 5월2일 기자는 하루의 동선 가운데 도대체 얼마나 많이 병원 광고에 노출되는지를 살펴봤다. 아침에 펼친 일간지의 건강면 밑에는 ‘소중한 치아 건강의 조력자가 되겠다’는 치과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집을 나섰다. 정류장에서 버스들은 옆구리에 병원 광고를 끼고 달렸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양악수술병원이 따라하는 병원’ 광고를 두 차례, ‘오직 어르신들을 위한 임플랜트’ 광고를 한 차례 봤다. 취재를 위해 자료를 검색하는 동안 인터넷 광고와 수도 없이 마주쳤다. ‘여신급 예쁜 다리’를 만들어준다는 정형외과 병원이나 ‘방송 3사에서 극찬한 감량법’을 소개하는 한의원의 광고가 몇 가지 예였다. 취재를 위해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지하철 객차 안에서는 아토피를 치료해준다는 한의원 광고와 ‘가장 많은 어르신이 다녀가셨다’는 치과 병원의 광고가 한눈에 들어왔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플랫폼 머리 위의 전광판에서도 환하게 웃는 의사의 얼굴을 담은 병원 동영상 광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언론사 인터넷, 병원 광고 압도적
언제부터 병원 광고가 주변을 도배하기 시작했을까. 병원 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5년도 안 됐다. 한국은 1951년 의료법을 제정한 이후 50년 넘게 의료광고에 대해 ‘원칙적 금지, 제한적 허용’이라는 틀을 유지했다. 의료는 인술이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광고라는 상업적 색채를 띠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 결과였다. 2005년 오랜 전통이 깨졌다. 헌법재판소는 의료법의 광고 관련 조항인 46조와 69조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당시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다른 의료인과의 영업상 경쟁을 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직업 수행의 자유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판시했다. 물론 소수의견도 있었다. “의료행위는 사람의 신체를 치료하고 생명을 다루는 것이므로 일반 상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고… 국민들과 의료보험공단 등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의료비를 지출하도록 하는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다.”
헌재의 판결로 상황은 역전됐다. 병원 광고 규제는 원칙적 금지에서 원칙적 허용으로 바뀌었다. 몇 가지 예외만 따라붙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병원 광고는 여전히 금지됐다. 병원 광고는 인터넷 매체를 ‘접수’했다. 지난해 6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17곳 언론사의 인터넷 광고를 조사한 결과, 전체 광고 중 병원 광고가 253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 번째로 광고를 많이 낸 종목은 성인용품(57개)이었다. 병원 광고 시장의 규모를 집계할 길은 없다. 제일기획의 ‘대한민국 총광고비’ 자료를 보면, 2011년 제약·의료 광고시장 규모는 2198억원으로 추정됐다. 그 가운데 병원 광고의 몫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진료 방법 기사에 병원 이름 공개는 위법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놓쳐버린 광고도 있었다. 그날 의 헬스면 기사에서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항암·방사선을 동시에 써서 췌장암의 생존율을 높였다며 해당 병원의 실명을 명시했다. 이는 의료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기사성 의료광고’에 해당한다. 법무법인 로앰의 변창우 변호사는 “진료 방법에 관한 기사를 쓰며 의료인의 소속 병원을 함께 게재하는 것은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상업화의 길목에서 위법과 편법이 버젓이 공존하고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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