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터뷰 특강] 폼나게 욕망을 대면하고 사랑하라


네 번째 강연자 김어준
“나를 만든 첫 경험들”
등록 2011-04-20 17:29 수정 2020-05-03 04:26

4월12일, 인터뷰 특강의 네 번째 손님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강연에 나섰다. 넓은 강연장은 뒤쪽에 보조의자를 갖다놔야 할 정도로 청중으로 가득 들어찼다. 사회자, 강연자와 청중이 뿜어내는 열기는 완연한 봄기운을 넘어섰다. 강연장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였다. 강연 내내 청중은 웃느라 바빴다. 그러나 강연의 알맹이가 웃음에 묻히지는 않았으리라. 김어준이 말하는 청춘은 무엇일까.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사회가 원하는 ‘나’를 버려라”

<font color="#C21A8D">김어준:</font> 사람들은 청춘을 찬양한다. 꿈을 품고 목표를 세워 도전하라고 20~30대에게 주입한다. 이에 내 생각은 ‘웃기지 말라’다. 지금까지 회자된 청춘은 허구다. 청춘 찬양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자기가 지금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청춘은 주로 자랑하는 용도로 쓰인다. 예를 들면 우리 ‘각하’다. 각하는 BBK 빼고 안 해본 게 없으시다. (청중 웃음) ‘너희도 한계를 극복하라’ 한다. 이건 일종의 가학이고 폭력이다. 두 번째 부류는 정신적으로 늙은 사람들이다. ‘나는 늙었으니 힘들다. 그러니까 젊은 너네들이 (무엇이든) 하라’는 식이다. 청춘에 대한 왜곡된 인식, 일종의 ‘청춘 오리엔탈리즘’이다. 지금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알리바이이자 핑계일 뿐이다.

실제로 생물학적 청춘에 해당하는 20~30대는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설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지극히 정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40대에게서 딱 하나 공통점을 끄집어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들은 대개 젊었을 때 이것저것 해보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헤맸다는 거다. 청춘이 뭘까. 어떻게 하면 청춘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김어준 식으로 얘기해보겠다.

청춘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가운데 열에 여덟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자신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단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욕망과 엄마의 욕망, 사회의 욕망, 학교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남들이 정해준 나’를 자신으로 이해하고 산다.

제8회 [인터뷰 특강] 사회를 맡은 김용민 시사평론가.

제8회 [인터뷰 특강] 사회를 맡은 김용민 시사평론가.

자기가 누구인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10대 후반에서 늦어도 20~30대에는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이게 안 된다.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데 내가 언제 행복해질지, 어떡해야 잘 사는 건지를 어떻게 아나.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려면)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이 처음으로 정의한 경험이 중요하다. 최초의 자기 대면을 한 뒤 욕망을 찾아보는 거다.

사랑도 중요하다. 연애하시라. 연애하기 전에는 다들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안다.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상대가 나타나면 그제야 ‘내가 얼마나 비겁하고 찌질한지’ 알게 된다. 연애를 하면 자기의 최고점을 보고 최저점도 깨닫는다. 연애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윤곽을 깨닫고 이해한다. 그러니 연애를 많이 하면 현명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스스로 이해하게 되니까.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이해했다 치자. 연애도 풍부하게 했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건 ‘그냥’이다. 그냥 하는 거다, 막.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복잡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무슨 600년 정도 살 건가봐. (청중 웃음) 대단한 의미가 뭐 필요한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계획은 목표한 일을 안 하려고 최대한 시간을 끄는 핑계에 불과하다.

나중에 행복해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행복은 적금을 들 수 없다. 예치했다가 나중에 찾는 게 아니다. 지금 24살이라고 치자. 24살에 지금의 행복을 찾지 않으면 34살의 행복은 가늠할 수 없다. 내일 할 일은 내일 하시라.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과거는 수정하지 못하고 미래는 통제할 수 없다. 오로지 현재 내 태도만을 자신의 의지로 정한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언제 행복할지 알겠다면 그냥 하시라. 이유를 달지 말고,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하나 더, 이 모든 걸 ‘스타일’ 있게 해야 한다. 폼이 안 나면 무슨 소용이야. (웃음) 개인적으로 한국 교육의 틀 안에서 미술 감각을 틔울 기회가 없었다. 20대 중반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피렌체 광장에 갔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를 봤다. 순간, 뭔가 찌릿했다. 그때까지 느끼지 못한 어떤 희열이 왔다. 이런 걸 왜 몰랐나 싶었다. 굉장히 즐거운 한편, 억울했다. 예술을 접하고 느끼는 기쁨을 모르고 놓치고 살아왔던 게. 그날 이후로 스타일 있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단순히 패션의 문제가 아니어도 자신의 삶을 사는 데 폼을 좀 내보자는 거다.

가족이, 주변에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거다. 모두가 거기에 부응하느라 부산하게 산다. 일단 그걸 접어두자. 자기 대면을 해보자. 자신이 어떻게 생긴 인간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욕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걸 깨달았다면 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먹고 싶은 음식을 지금, 당장, 그냥, 스타일 있게 하며 사는 게 청춘이다.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욕망을 선택하는 방법

<font color="#638F03">청중1:</font> 젊은이에게 정치에 좀 관심을 가지라고들 한다. 젊은이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font color="#C21A8D">김어준: </font>세상만사가 정치다. 자신의 이익, 생활, 미래가 모두 정치에 달려 있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멍청한 일이다. 절대 ‘쿨’한 게 아니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평생 자신의 스트레스 근원을 모른다. 항상 숙제하는 인생이 되는 셈이다.

<font color="#638F03">청중2:</font> 순간순간 자신의 욕망을 대면하며 융통성 있게 산다는 게, 추상적이고 맘에 와닿지 않는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좀 알려달라.

<font color="#C21A8D">김어준: </font>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가장 하고 싶은 걸 먼저 해라. 대신 꼭 하고 싶진 않은데 도움이 되는 일은 있다. 이때는 선택의 순간이다. 다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선택을 못하는 이유는 둘 다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직장을 다니다가 홀연히 여행을 떠났다면, 후에 복직을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게 더 큰 행복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

<font color="#638F03">청중3: </font>김어준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

<font color="#C21A8D">김어준: </font>당연히 (김어준 지음, 푸른숲 펴냄). (청중 폭소)

<font color="#638F03">청중4:</font> 결혼을 앞둔 나이다. 결혼 전에 동거를 해보고 싶은데, 사회·직업적으로 동거가 어렵다. 동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font color="#C21A8D">김어준:</font> 결혼 상대자와 함께 보름 이상 배낭여행을 가보기 권한다. 2주 이상. 일주일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러면 상대의 바닥이 보인다. 새로운 곳에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가령 길을 잃는다거나 기차 시간을 잘못 알았다거나. 이때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이 드러난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 해결 능력을 제 방식으로 발휘한다고 해도 그 방향이 서로 잘 맞아야 한다. 남자는 기차를 놓쳐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밤을 보내자 하는데 여자는 싫다고 한다면, 이건 안 맞는 거다. 흔히들 결혼 뒤 배우자가 변했다는 말을 하는데, 변한 게 아니다. 스스로 속은 거다. 미처 몰랐으니까.

‘욕망, 연애, 그냥, 스타일’. 김어준이 청춘의 열쇳말로 내건 네 가지. 우리는 각자의 욕망을 알고, 뜨거운 사랑을 하며, 현재에 충실하고, 폼나게 살고 있는가. 곱씹어볼 만한 청춘의 화두다.

글 김원진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