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터뷰 특강] 저당 잡힌 청춘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두 번째 강연자 홍세화
“유배된 청춘”
등록 2011-04-14 14:22 수정 2020-05-03 04:26
제8회 인터뷰 특강 두번째 시간.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이 '유배된 청춘'이라는 주제로 경연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제8회 인터뷰 특강 두번째 시간.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이 '유배된 청춘'이라는 주제로 경연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청춘.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기사를 쓰는 나 역시 청춘의 나이다. 그러나 젊음이 즐겁기보다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더 많은 안타까운 청춘이다.

홍세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는 글을 통해 우리에게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고, 날개를 펼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라 가르쳤다. 그런 그를 직접 만나는 기회라니. 많은 이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날 강의에 참석했는지 모른다. 객석을 빼곡히 채운 청중의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

광고

그런데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마이크 울림이 너무 큰 데다 객석 오른쪽의 스피커가 작동하지 않아 소리가 강연장에 골고루 전달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홍세화 편집인은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했을 법도 한데, 난처해 하지 않고 시종 웃음을 띠었다. 그는 노래를 한 곡 불러도 되겠느냐고 했다. 청중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배려다. 그가 중후한 목소리로 샹송 을 부르자 불만이 새어나오던 강연장은 어느덧 조용해졌다. 노래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됐다. 그는 “되돌아보면 프랑스로 떠나기 전부터 이미 유배된 삶을 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나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벗어나 다른 사회로 떠나야 했던 것만 유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의 방랑자들도 유배된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강의를 과거 국내외에 유배됐던 선배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후배에게 말을 건넨다는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이 ‘유배된 청춘’을 보낸 이유로 농담처럼 “선배 잘못 만난 탓”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다는 그 ‘선배’는 삶과 몸으로, 당시 홍 편집인이 배운 역사가 얼마나 허구였지를 말해줬다고 한다. “그 선배를 만남으로써 내부로부터의 망명, 유배는 이미 시작됐다.”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한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걷게 됐을 경로를 두 가지로 가정했다. 하나는 장기간에 걸친 감옥 생활이 있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생존 조건을 누릴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7년은 감옥 생활을 해야 했을 텐데, “좁은 공간에서 고문 등을 거친 뒤에 영혼이 상처받지 않았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또 “끊임없이 소유물로 인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사회에서 과연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자신의) 의지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에서도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광고

오래 몸담고 있었다면 의지대로 살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 사회에 대해 그는 비판적 시선을 견지했다. 특히 교육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학교를 보내는 대신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를 선택했을 것이라며 공교육에 불신을 내비쳤다. 그는 “공교육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거기에 담겨야 할 기본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많은 교사가 노력하고 있음에도 공교육의 가치가 많이 무너진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청소년이 삶을 누려야 할 시기에 청춘을 억눌리고 있다며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 문제로 억눌리는 삶을 살며 청춘을 저당 잡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춘을 저당 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그 해답으로 ‘자기 형성의 자유’를 제시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집회·시위·사상·양심의 자유 등 수많은 자유가 짓밟히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유는 바로 자기 형성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삶이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 그 삶을 최종적으로 평가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므로 자기 형성,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당당함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인 자아실현과 먹고사는 문제 사이의 갈등에 대해 생존이란 자아실현을 위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름진 생존을 목표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말했다. 혹여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생존을 위해)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청춘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광고

예컨대 “긴장은 ‘긴할 긴’(緊)과 ‘베풀 장’(張)으로 이뤄져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긴장의 의미는 긴의 경우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긴(緊)만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부러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적당한 느슨함, 즉 장(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사회가 인정하는 자리에 가야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긴과 장을 적절히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무상급식은 보편 복지의 물꼬”

질의·응답 시간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가 비판적 시선을 제시한 교육 문제부터 복지 문제, 개인적 질문들까지 이어졌다.

청중1: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으로 구체적인 자아를 형성하긴 어렵다고 생각하나.

홍세화: 그렇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제국주의식 교육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형성해가도록 하는 과정을 만들어준다. 인문사회 과목을 암기 과목으로 인식하는 현실, 글쓰기가 없는 인문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죽은 교육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사형제도를 말한다면 ‘이 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라는 글로 평가를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제도에 연관된 것을 잘 암기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사고력·논리력이 필요한 인문사회 교과목이 암기 과목으로 전락한 가운데, 교육으로 어떻게 올바른 자아가 형성되길 바랄 것인가.

청중2: 저서 에서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을 갖는 과정에서 혹은 권력을 가진 다음에 변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홍세화: 나는 ‘민중권력’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권력 자체가 비민중적인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해 민중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견제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청중3: 무상급식이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떠나 논란이 되고 있는데.

홍세화: 학교에서 출신에 상관없이 동일한 음식을 나누는 경험은 중요하다. 우리는 세금을 내서 그것이 나에게 돌아온다고 느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런 경험이 한국에서 증세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큰 이유다. 유럽의 경우 좌파가 집권하면 거의 증세를 한다. 그러나 서민 노동자들이 반발하지 않는다. 서민 노동자들은 자신이 10유로를 더 내면 부자들은 1천유로를 더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10유로를 더 내면 자식에게 100유로가 돌아온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무상급식은 보편 복지로 가는 물꼬라는 점에서, 세금이 국민에게 긍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중4: 홍 편집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면.

홍세화: , 조세희 선생의 , 카를 마르크스의 등이다.

청중5: 대학교 1학년생이다. 대학에 들어와 운동권의 엘리트 의식과 폭력성에 실망했다.

홍세화: 오늘의 화두인 ‘유배된 젊은이’들이 그런 경향을 갖긴 한다.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깨어났다’는 식의 오만함이 비치는 이도 있다. 질문한 분이 적극적 참여로 그 문화를 바꿔주길 바란다.

홍 편집인은 강연을 마치며 청춘을 향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잡초는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오늘의 불성실의 핑계로 만들지 마라. 남과 나의 소유물로 나를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더 성숙한 나를 비교하고, 오늘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맺는 내일 더 성숙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마시길.”

글 안명휘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