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이야기
한 달 동안 ‘데자뷔’를 느꼈다. 서울 A갈빗집과 인천 B감자탕집. 서로 다른 식당에서 닮은꼴 아줌마들을 만났다. 그곳엔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이 있었다. 1990년대 말, 제조공장이 무너지고 정리해고가 횡행했다. 자영업자가 늘었다. 몰락 가장의 부인들이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A갈빗집 팀장 언니도,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사모님’에서 ‘아줌마’가 됐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재기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입히고 먹여야 했다.
절박해서 시작한 일, 그만두기 어렵다. 돈을 많이 모아 식당일을 ‘탈출’하긴 쉽지 않다. 100만원을 벌어 10만원 저축하기도 힘든 삶이다. ‘낙오’하긴 쉽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하게 되면 낙오한다. 그렇게 식당 앞치마는 벗지만 생계는 막막하다. 식당 아줌마들은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럴수록 몸은 더 약해져간다. 악순환이다. A갈빗집 현숙(가명) 언니는 자궁 적출 수술을 받고서야 10년 만에 식당일을 쉬게 됐다. 감자탕집 주방 언니는 끔찍한 생리통을 견디면서 자궁의 혹을 안고 산다.
아줌마들의 꿈은 성공일까. 갈수록 계층간의 벽이 견고해진다. 식당 아줌마의 자식들이 다시 식당일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다시 비정규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빈곤노동에 찌든 삶에 곧 겨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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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아줌마는 ‘여성’ 노동자다. 권력관계로 보자면 ‘사장’ 아래다. 서비스업이란 업종 특성상 ‘손님’ 밑에 자리한다.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지배를 받는다. 세 가지 영역에서 모두 식당 아줌마는 최하층이다. 식당의 일상에서는 이 ‘3중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식당 아줌마는 늘 사장을, 손님을, 남성을 받들고 챙기고 돌봐야 한다.
1. 손님의 무릎
“힘든데 여기 좀 앉아서 해.”
한 손님이 자기 무릎을 토닥이며 말했다. A갈빗집의 저녁 시간, 소갈비를 주문한 중년 남성들이었다. 비싼 고기를 태울까봐 조심조심 굽고 있는데, 손님의 눈길이 끈적하다. 다 익은 고기를 건네며 “드세요” 하니 “먹으라네” 하며 낄낄댄다. “몇 살이야?” “아이고, 피부가 곱네.” 한참을 희롱한다. 그러고는 힘든데 서서 일하지 말고 자기 무릎에 앉아서 하란다.
그의 앙상한 허벅지를 내려다봤다. 내 허벅지가 더 튼튼해 보인다. 황당함과 불쾌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계속 추파를 던졌다. 순간, 미자(가명) 언니가 내게 다가와 가위를 뺏어들었다. “우리 막내한테 찝쩍거려서 일 그만두게 하려고 그래요?” 미자 언니의 공격에 뜨끔한 것도 잠시, 남자는 “그럼 자기가 한 잔 따라봐” 한다. “저 지금 가위 들고 있거든요. 말조심하세요.” 미자 언니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손님이 진한 농담을 하면 못 들은 척하거나 강하게 나가야 해.” 그날, 일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는데 언니들이 입을 모았다. “특히 아까 그 손님은 ‘진상’으로 유명해. 조심해야 돼.” 우리끼리 ‘블랙리스트’도 만든다. 밖에서 만나자고 명함을 주는 건 점잖은 축이란다. 엉덩이를 슬쩍 만지거나 손목을 잡는 이도 있다.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술을 따르라 하기도 한다.
손님의 ‘수작’을 ‘호의’로 봐선 안 된다. A갈빗집 지숙(가명) 언니의 일화는 유명하다. 40대 싱글인 그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꿈을 꿨다. 식당에 와서 팁까지 후하게 주는 한 손님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숙 언니에게 일 끝나고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넸다. 며칠 뒤 지숙 언니가 와서 직원들에게 “어제 외박했다”며 그와의 관계를 자랑했다. 이후로 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언니들은 “지가 그러면 그 손님이 결혼이라도 해줄 줄 알았느냐”며 수군댔다. A갈빗집을 그만둔 지숙 언니는 인근의 다른 갈빗집에서 일하고 있다.
반말·모욕·희롱 일삼는 ‘진상’ 손님들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은 여성 노동자에게 ‘당연한 듯’ 요구된다. 손님은 음식점에 와서 음식을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식당 아줌마가 돌봐주길 바란다. 자신을 보며 미소짓고 정답게 굴길 원한다. 정당하게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Servus’다. ‘돈’을 매개로 ‘노예’를 부리니 미안함이 덜하다. 식당 아줌마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큰소리라도 내는 날에는 “이 식당은 서비스가 왜 이 모양이냐”는 불만이 날아든다.
식당 아줌마들은 손님, 사장, 동료 순으로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을 꼽았다. 2006년 한국여성연구소가 서울시내 식당 아줌마 4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손님과의 관계에서 식당 아줌마의 25.7%가 ‘반말·욕설 등 비인격적인 대우가 힘들다’고 답했다. 홀 근무자의 경우 30.9%다. ‘불쾌한 성적 농담’은 전체의 14.9%, 홀 근무자의 19.1%가 경험했다. 12.6%가 ‘술 좀 따라보라’는 말을 들었다. 홀 근무자의 11.7%가 ‘불쾌한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무시당하고 희롱당한 장면 장면이 수치 위로 아른거린다.
A갈빗집 언니들은 그래도 화장을 한다. 거울을 보고 멋을 낸다. ‘서비스업’의 특성상 홀 근무자가 지저분하게 하고 있을 순 없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홀서빙 지원자를 돌려보내는 사장을 본 터다. 더욱이 갈빗집의 경우 잘만 하면 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웃으며 고기를 잘라주는 일은 우리의 ‘본분’이다. 남성 손님의 시중을 들 때면 립스틱 바른 입술이 불안하다.
2. 사장의 혀‘전무님’은 독설가다. A갈빗집 여사장의 남편이다. 왜 ‘전무님’이라 불러야 하는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회사원인 그의 직책이 전무란다. 갈빗집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식당 종업원들은 그를 ‘전무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심지어 사장조차 자기 남편을 ‘전무님’이라 불렀다. 우리에게 ‘전무’는 ‘대통령’쯤 됐다.
앙칼지긴 하지만 소심한 편인 여사장과 달리 ‘전무님’은 대범하다.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 고려하지 않는다. 어느 직원이든 마주치기만 하면 잔소리를 한다. 그 때문에 식당 언니들은 그를 피했다. 식사 시간에 그가 오면 함께 식사하지 않으려고 밥을 굶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팀장 언니가 그만두기로 한 날, 그가 식당에 나타났다. 직원들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상을 차려놓은 상태였다. ‘전무님’이 먼저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직원들은 아무도 앉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봤다. 팀장 언니가 “다 같이 얼른 먹고 일어나자”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직원들이 상에 앉자마자 ‘전무님’의 악담이 시작됐다.
“요즘 다들 돌아가면서 그만둔다 어쩐다 하나 보지? 우린 이 가게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사람들이야. 일하기 싫으면 당장 때려쳐. 나이도 많으면서, 어디 가서 일할 데 구해봐! 구해지나. 고마운 줄 모르고….”
밥 한술을 떠넘기려던 직원들이 움찔했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전무님’은 한 명씩 지명해가며 잔소리를 했다. “미자 넌 싫다고 나가더니 다시 들어온 소감이 어때? 아주 웃겨요. 소감문이라도 하나 쓰지 그래?” 그만뒀다가 다시 일하기 시작한 미자 언니에게 비아냥거렸다. “경희 너는 우리 볼 때만 살살 일하고 안 보면 논다며?” 40대 여성 노동자에게 50대 ‘전무님’은 ‘너’란 호칭을 거리낌 없이 쓴다.
화살은 다시 팀장 언니를 향했다. “오너 입장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뭔 줄 알아? 직원들이 아프다고 하는 거야. 지난번에 최 팀장, 팔목 아프다고 파스 바르고 일했지? 얼마나 보기 싫은 줄 알아?” 팀장 언니가 발끈했다. “식당에서 소주 박스 내리다가 다친 건데 깁스 안 하고 파스 붙인 채로 일해주면 오너 입장에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시끄러워! 내 말에 토 달지 마. 내 말은 듣기만 해!” ‘전무님’이 소리쳤다. 다들 고개를 숙였다.
하인·노예 대하듯 온갖 잡일 시켜B감자탕집 사장은 50대 남자다. 그는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터프가이’다. 키도 크고 몸집도 크다. 흰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의 부인도 머리 모양이 비슷하다. 안경 너머 눈매가 매섭다. 직원들은 그를 ‘사모님’이라 불렀다. 사장은 매일 오전 9시 가게에 들른다. 1시간쯤 머문다. 저녁에는 7시께 부인과 함께 들렀다 간다. 가끔은 애완견과 함께 온다. 애완견이 용변을 본 신문지를 치우는 일도 우리 몫이다.
사장은 터프가이답게 불같은 성격이다. 주·야간 언니들은 사장과 대화하길 꺼렸다. 지난 3개월 동안 왜 휴일을 주지 않느냐고, 아픈데 좀 쉬면 안 되느냐고 묻지 못한다. 150평 식당에 주방 1명, 홀서빙 1명을 둔 채로 언제까지 운영할 거냐고 묻지 못한다. 심지어 손님이 많아 가게가 전쟁터인 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사장에게 전화해 일할 사람을 요청하라는 내 요구에 주방 언니가 마지못해 전화를 했다. “사장님… 오늘 좀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홀로 온 사장은 주방과 홀 사이에 서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어이, 저기 18번 가봐.” 38번에서 밥을 볶아주는데 사장이 말한다. “이거 밥을 이렇게 볶아주면 어떡해?” 18번에서 주문을 받는데 사장이 38번 테이블을 내려보며 호통을 친다. “손님 들어오잖아, 얼른 물 나가야 할 거 아니냐.” 전광판에 ‘77’이란 테이블 번호가 깜박인다. ‘77’은 카운터 자리 번호다. 사장이 카운터에 앉아 손님이 왔다며 벨을 울려댄다. 9번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나는 ‘77’이란 빨간 숫자를 노려봤다. 그리고 말했다. “네 손님, 어서 오세요!”
감자탕집 사장이 싫어하는 것은 세 가지다. 직원들이 감자탕 뼈다귀를 먹는 것, 직원들이 식당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 직원들이 앉아서 ‘노는’ 것. 언니들은 재료를 사와서 집 반찬을 만들고도 사장 눈치를 본다. “현관 앞 계단 좀 닦아라.” 앉아 있는 나를 본 사장은 득달같이 일을 시켰다. 이후로 사장이 가게에 있을 때는 마늘 손질도 서서 했다.
사실 사장도 사정이 좋지 않다. 갈수록 장사가 안 된다. 아끼던 수천만원대 오토바이도 2개월 전에 팔았단다. “이 동네는 다들 못살아서 장사할 데가 못 돼.” 근무 첫날, 사장이 내게 말했다. “앞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나은데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가난뱅이야. 감자탕 시킬 일 없는 사람들이지.” 5천원짜리 뼈해장국 말고 2만7천원짜리 ‘감자탕 대(大)자’를 팔기 바라는 사장은 ‘뒷문 손님’을 무시했다. 뒷문은 동네 골목과 맞닿아 있다.
석 달째 휴일 안 주는 사장님의 큰소리자영업자는 장사가 안 되면 직원을 자른다. B감자탕집도 최소 인원인 주방 1명, 홀서빙 1명만을 뒀다. 그 때문에 누구도 쉴 수 없다. 3개월째 주·야간 직원들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24시간 영업하는 감자탕집은 3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사장은 잠깐씩 가게에 들르니 12시간씩 120일 연속 근무를 하고 있는 이들의 고충을 알 리가 없다.
B감자탕집을 그만두겠다고 한 날, 식당에는 천둥소리가 났다. 그만두는 이유를 묻는 말에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일도 힘들고 남편도 그만두라고 해서요.” 일전에 A갈빗집 팀장 언니가 귀띔해준 ‘멘트’였다. “남편이 그렇게 잘났느냐? 지금 당장 네 남편 데려와!” 안하무인이었다. 결국 “직원들 3개월째 쉬지도 못하게 하는 곳이 어딨느냐”고 따져물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일 힘들다는 사람 필요 없으니까 당장 가방 갖고 나가!” 사장은 흥분했다. 그에게 식당 아줌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리를 키워라, 배추를 길러라, 식당일이 아닌 일까지 시켜도 불평 못하는 언니들은 사장의 ‘완벽한 노예’였다.
3. 그들도 사장처럼
“뭐 맛있는 거 드시나?”
B감자탕집 건물 관리인이다. 키는 훌쩍 크고 얼굴은 희고 번들번들하다. 색이 들어간 안경을 낀다. 직원들이 사장 다음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능글능글 웃으며 식당으로 들어선다. 하필이면 직원 점심 시간에 딱 맞춰 왔다. 밥 한 숟가락을 뜨려는 우리 옆에 서서 상 위를 훑어본다. 우린 콩나물국을 먹고 있었다. “나도 콩나물국 먹고 싶은데… 그럼 같이 먹을까?” 그러고는 주방 언니와 내가 앉은 테이블에 덥석 앉는다. 주방 언니는 말없이 밥 한 공기를 내왔다. 고작 10분, 밥 먹을 동안의 휴식도 사라졌다.
그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거의 매일 감자탕집에서 식사를 한다. 하루는 그가 사장 앞에서 주방 언니에게 말했다. “아까 보니까 아줌마들이 메뉴에 없는 거 먹더만… 나도 그거 주면 안 되나?” 직원들이 가끔 콩나물국이나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 사장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주방 언니에게 명했다. “앞으로 소장님 오시면 원하는 메뉴로 만들어드려.”
그때부터였다. 관리인은 시도 때도 없이 김치찌개나 콩나물국을 요구했다. 손님이 많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상관없다. 그가 원하면 해줘야 한다. 메뉴에 있는 음식의 경우 재료가 미리 준비돼 있기에 같이 섞어 데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김치찌개, 콩나물국은 집에서 만들 듯 한 그릇씩 따로 준비해야 한다. 매번 한숨을 내쉬면서도 주방 언니는 재료가 되는 대로 묵묵히 음식을 만들었다.
메뉴에도 없는 음식 요구하는 건물 관리인한데 곧 ‘관리인의 친구들’도 등장했다. 친구들도 관리인을 따라 아무 음식이나 주문했다. “주방 아줌마 없나?” 관리인의 친구들은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주방 쪽을 보며 건들거린다. “여기, 콩나물 해장국 하나 줘요.“ 한 사내가 말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콩나물 해장국이오? 그런 건 메뉴에 없는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에이, 관리소장 먹는 거 있잖아, 그걸로 줘요. 주방 아줌마가 알 거야” 한다. 주방 언니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언니, 오늘 콩나물 없죠?” 한데 언니는 또 한숨을 쉬고는 콩나물 해장국 끓일 준비를 한다. 속이 터진다. “다들 자기 집에서 밥 한 그릇도 못 얻어먹는 남자들일 거야.” 주방 언니는 그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A갈빗집에서도 동네 건달부터 ‘전무님’ 친구들까지 식당을 들락날락했다. 그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재떨이 달라” “커피 내와라” “누룽지 좀 먹자”며 식당 아줌마를 부린다. 사장이 그들 편이라면, 식당 아줌마는 그들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 갈수록 내가 어떤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업무의 경계가 흐릿하다.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식당 아줌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사실이다.
4. 서방님의 전화“씨×, 진짜 그런 식으로 할 거야?”
주방에서 뼈해장국을 끓이던 언니가 갑자기 욕을 해댄다. 늘 순종적인 언니의 새로운 모습이다. 가만 보니 전화 통화 중이다. 언니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고는 팔팔 끓는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주방 언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딩동, 19번 테이블 호출이다. 뛰어갔더니 냉면 맛이 이상하다며 바꿔달란다. 냉면 그릇을 들고 주방 언니에게 달려가니 갑자기 그가 국자를 집어던진다. “다들 정말 나한테 왜 이래!”
손님들이 다 나간 뒤 커피를 건네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 언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며칠 전, ‘근로장려금’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됐다. 부부 합산 연간 총소득이 1700만원 미만인 근로자 가구에게 올해부터 연간 최대 120만원까지 지급된다고 했다. 이 제도를 통해 정부는 ‘근로빈곤층의 빈곤 탈출을 지원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충’할 계획이란다. 그것이 빈곤 탈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언니에게 120만원은 오아시스 같은 돈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받고 싶었다. 하지만 주방 언니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감자탕집에 묶여 있는 몸이다. 그는 남편에게 전화해 근로장려금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니가 알아서 해.” 전화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편의 말에 언니는 폭발했다.
하필 이날은 주방 언니가 ‘대출금상환연기신청서’도 제출해야 했다. 한 보험사에서 1500만원을 대출받았는데 상환일이 되도록 값을 길이 없다. 원래는 인천 부평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직접 접수를 해야 한다. 한데 갈 시간이 없다. 팩스로 신청서를 넣으라기에 언니는 팩스 기계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건물 관리인에게 부탁했다가 안 되자 길 건너 문방구로 달려갔다. 팩스를 보내려고 가게를 비운 사이 사장이 왔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렸다.
‘나몰라라’ 남편에게 화내보기도 하지만
집에 김치도 떨어지고 이튿날 싸줄 애들 도시락 반찬도 없다. 식당에서 일하는 언니는 걱정이 산더미다. 의자 제작 공장을 하다가 5년 전 부도를 맞은 남편은 지금껏 일용직을 전전한다.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만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남편을 욕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날 주방 언니는 화를 삭이며 감자를 볶았다. 채를 썰어 파와 마늘을 넣고 달달 볶았다. 점심 식사 때 조금 내놓고는 나머지를 검정 비닐봉지에 넣었다. 오후 4시, 하굣길에 중학생 아들이 가게에 들렀다. 아들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건넸다. “집에 가서 아빠랑 동생이랑 이걸로 저녁 먹어.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놔. 내일 도시락 반찬으로 싸게. 알았지?”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나섰다. 자동문이 음을 길게 토해내고, 노랫소리가 다 끝나도록 주방 언니는 아들의 뒷모습을 좇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성 빈곤 노동자의 삶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다. 손님과 사장과 남편과 남자들에 치이고 무시당해도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다. 여성이고, 노동자이고, 빈곤해서다. A갈빗집 미자 언니 같은 여성 비정규직이 439만 명이다. B갈빗집 주방 언니 같은 기혼여성 장기 임시근로자가 200만 명이다. 식당에서, 마트에서,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이들이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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