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한 달간 ‘식당 아줌마’로 살았다. 서울의 A갈빗집과 인천의 B감자탕집에서 일했다. 식당일은 여성 비정규직 일자리 중 비교적 ‘고소득’이다.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나 근로시간이 길어서다. 하루 12시간 노동이 기본이다. A갈빗집 시급은 4487원, B감자탕집은 3571원이다. 동료들은 대부분 40~50대 중년 여성이다. 직원끼리의 호칭은 나이에 따라 ‘언니’로 정리된다. A갈빗집에는 ‘팀장 언니’를 포함해 홀서빙 직원이 5명이다. 주방엔 업무에 따라 실장님, 찬모님, 이모님, 과장님이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B감자탕집은 주방 1명, 홀서빙 1명이다. 아침 9시~밤 9시, 2교대다. 150평 홀에서 서빙은 나 혼자다. 장사가 안 되자 사장이 직원 수를 줄였다. 주말 휴일은 없다. A갈빗집은 한 달에 4번, B감자탕집은 2번 쉴 수 있다. 하지만 감자탕집 ‘언니’들은 3개월째 쉬지 못했다. 그들이 힘들거나 말거나 식당은 돌아간다. 식당에선 누구나 ‘아줌마’를 부린다. 사장도 손님도 동료도 일을 시킨다. 청소·서빙·정리의 ‘달인’이 돼야 한다. 출입문 종소리, 테이블 호출 벨소리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해야 한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다”는 비명도 식당 앞치마를 벗는 순간뿐이다. 집에 가면 또 앞치마를 입는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겨우 생계비를 번다. 식당 아줌마의 가을은 가난하다.
제1부 안산 난로공장
① 작업 라인의 노예
② 4천원의 삶과 행복
③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① 언제나 젖은 앞치마
② 몰락 가장의 부인과 올드미스
③ 사장님, 손님, 남편님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
숟가락을 드는데 이 말이 떠올랐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말이다. 식탁 위엔 카레가 놓여 있다. 전날 ‘점심 특선’ 메뉴였다. A갈빗집은 매일 5천원짜리 ‘점심 특선’을 준비한다. 카레는 잘 안 팔렸다. 많이 남는 바람에 식당 직원들은 세 끼째 카레를 먹었다. ‘팔고 남은 음식’이 내 몸을 채운다. 그 덕에 배곯지 않고 일한다.
갈빗집에서 갈비를 못 먹듯, 감자탕집에선 감자탕을 못 먹는다. 식사 시간, 감자탕 국물만 줬다. “이거 먹고 힘 안 나요. 뼈다귀 하나만 줘요.” 주방 언니에게 사정했다. “사장이 우리가 뼈다귀 먹는 것 싫어해.” 그가 난처해했다. 이튿날 사장은 식당에 애완견을 데려왔다. 뼈다귀에서 고기만 발라 애완견에게 줬다. ‘먹는 것’은 철저히 계급에 따른다.
일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한다. 12시간 식당 노동자는 끼니를 모두 식당에서 해결한다. A갈빗집의 아침식사는 11시, 점심은 2시30분, 저녁은 8시30분이다. “저녁만이라도 가족과”가 목표인 팀장 언니와 “다이어트”를 외치는 경희 언니만 저녁을 건너뛴다. B감자탕집은 아침식사 9시30분, 점심 2시30분, 저녁은 없다. 퇴근하면 뭐든 허겁지겁 먹게 된다. 그러니 식당에서 주는 대로 잘 먹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출근 전, 퇴근 뒤에 사먹어야 한다. 다 돈이다.
끼니는 영업시간 뒤에 팔고 남은 음식으로‘콩국수 사건’은 반란이었다. A갈빗집 직원들이 ‘팔고 남은 음식’ 먹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전면적인 거부는 아니었다. 소심한 저항에 가까웠다. 8월 말, 콩국수가 ‘점심 특선’인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팔고 남은 면을 두고 직원들은 고민에 잠겼다. 아침부터 삶아놓은 면은 불을 대로 불어 있었다. “이걸 먹어야 하나.” 때마침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직원들은 면을 새로 삶아 콩국물에 말았다.
식사 도중 사장이 돌아왔다. “누가 불은 면 안 먹겠다고 했어, 응?” 사장이 콩국수를 젓가락으로 휘적이며 눈에 불을 켰다. 국수를 먹다 말고 직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랬는데요.” 팀장 언니가 맞섰다. 사장이 그를 따로 불렀다. “진짜 네가 그랬어? 다른 애들이 그랬으면 잘라버리려고 했더니.” 팀장 언니는 자신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돈 벌더니 사람이 변했어. 예전엔 고기도 자주 줬는데….” 팀장 언니는 A갈빗집에서 일한 지난 2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콩국수 사건’ 열흘 뒤 팀장 언니가 그만뒀다. 9월5일 밤 9시, 팀장 언니의 환송회가 열렸다. 사장이 돼지갈비를 내왔다. 1인분에 1만1천원짜리다. 직원들은 두 달 만에 가게에서 고기를 먹는다. 젓가락이 바쁘다. 팀장 언니는 소주만 들이켰다.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표정이 밝네?” 요리 담당인 ‘실장님’이 농을 던졌다. 팀장 언니는 발끈했다. “남은 심란해 죽겠고만! 눈알을 뽑아서 당구를 쳐버릴까보다.” 설거지 담당 ‘이모님’과 밑반찬 담당 ‘찬모님’이 배를 잡고 웃었다. 직원들은 자꾸만 팀장 언니에게 술을 따라줬다.
1. 닮은꼴 언니들서울 A갈빗집과 인천 B감자탕집은 퍽 다르다. A갈빗집은 소갈비 전문, B감자탕집은 돼지뼈가 주재료다. 손님의 성격과 식당 소재지도 다르다. 한데 ‘식당 아줌마’들의 사연은 서로 닮았다. 식당일을 시작한 까닭, 현재 가족의 경제 상황 등이 비슷했다.
그곳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이 있었다. 1990년대 말, 제조공장이 무너지고 정리해고가 횡행했다.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린 자영업자가 늘었다. 몰락 가장의 부인들이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A갈빗집 팀장 언니도 ‘사모님’에서 ‘아줌마’가 됐다. 2000년에 식당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30대 중반이었다. 그해 겨울, 남편이 운영하던 지갑공장이 부도났다. 유명 브랜드 지갑을 외주로 생산해온 꽤 탄탄한 공장이었다. 직원도 30명이나 됐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거래처들이 하나둘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일거리가 뚝뚝 끊겼다. 모든 거래처를 중국에 뺏기고야 공장을 정리했다. 남편 나이 40대 중반에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좀처럼 취직을 못했다. 40대 중반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대부분 공장 비정규직이었다. 어렵게 들어갔다가도 며칠을 못 버텼다. 그들에겐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이 있었다. 팀장 언니가 나서야 했다. 생활정보지를 뒤져서 식당일을 알아봤다. 서울 여의도역 근처 갈빗집과 발산역 근처 갈빗집을 거쳐 서울 강서구의 A갈빗집까지 왔다. 이제 아들은 스무 살이 넘었다. 그렇게 10년이다. 여전히 그는 식당에서 일하고, 남편은 공장 일자리를 알아본다. 아들은 지방대에 진학했다가 휴학하고 식당일을 한다.
팀장 언니는 B감자탕집 주방 언니의 ‘미래’다. 주방 언니 남편의 사업이 망한 지 5년이 됐다. 의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외환위기 전후에도 쓰러질 듯 견디며 운영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일이 닥쳤다. 전국에 가맹점을 둔 PC방 업체 주인이라는 사람이 고급 의자를 대량 주문했다. 물건을 넘기자 주문자가 잠적했다. 공장은 무너졌고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해 남편은 한동안 쫓기는 신세가 됐다.
주방 언니가 B감자탕집에서 일을 시작한 건 그때다. 그렇게 4년째 일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아직 빚은 갚을 엄두도 못 낸다. 지난 9월에도 대출금 1500만원의 만기가 돌아와 ‘대출상환연기신청서’를 써냈다. 남편은 부도 이후 계속 일용직으로 일한다.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아들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 까지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슷한 처지에도 ‘과시욕’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은행원이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40대 후반 아줌마는 직원들 사이에서 ‘밥맛’으로 통했다. “한 달에 쇼핑하는 데만 200만원씩 써왔는데 120만원을 벌어서 어디에 쓰나?” 이 말에 식당 아줌마들은 격분했다. ‘밥맛 아줌마’는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일이 너무 힘들어 온몸이 아프다 했다. 다른 식당을 알아본다 했다.
비혼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팍팍한 삶에 드라마는 없다. 드라마 처럼 죽집에서 일하다 왕자님을 만난다? 어림없다. 드라마 은 어떤가. 설렁탕집에서 서빙하다가 유산을 받아 사장이 된다? 꿈이다. ‘골드미스’도 다른 세상 이야기다.
43살 미자(가명) 언니는 생계가 절박하다. 저축은 없는데 월세부터 술값까지 나갈 돈은 많다.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다. 지금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번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을 나오지 않는다. A갈빗집에서도 그게 문제가 돼 그만뒀었다. 8월 말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팀장 언니 환송회날도 술을 많이 마셔 인사불성이 됐다.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다행이었다.
40살 경희(가명) 언니는 ‘중국동포’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위장결혼을 했지만 마음은 비혼이다. 그는 친구 따라 성인 나이트에 갔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오후 3시가 되면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경희 언니의 얼굴이 활짝 핀다. 언니들은 “유부남 만난다”고 수군댄다. 경희 언니는 며칠 휴가를 내고 그와 놀러가는 것이 소원이다. “지난여름에 같이 동해 바다를 갔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큰 자랑이다. 얼굴이 예쁘고 화장도 잘하는 그가 한국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2. 잘 가라, 자궁아식당 아줌마들은 언제 식당을 그만두게 될까. 절박해서 시작한 일, 그만두기 어렵다. 돈을 많이 모아 식당일에서 ‘탈출’하긴 쉽지 않다. 100만원대의 월급을 받아 10만원을 저축하기도 빠듯하다.
‘낙오’만이 식당일을 벗어나는 길이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하게 되면 ‘낙오’한다. 그렇게 식당 앞치마는 벗지만 생계는 막막하다. 식당 아줌마들은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럴수록 몸은 더 약해져간다. 악순환이다.
“여기 좀 만져봐. 딱딱한 게 있어.” A갈빗집의 현숙(가명) 언니는 8월 말 어느날 동료들의 손을 자기 아랫배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음날, 병원에서 자궁의 종양을 발견했다. 자궁근종이다. 9월 초, 그는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식당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자궁을 잃고서야 식당 아줌마 생활 10년 만에 식당일을 쉬게 됐다.
식당 아줌마들에겐 남 일 같지 않았다. 다들 폐경을 앞둔 나이다. 하루 날 잡아 휴게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다 같이 병문안을 갔다. 수술은 잘됐다고 했다. 당분간 힘든 일은 하면 안 된다. 식당 아줌마들은 현숙 언니의 아들을 가게로 불렀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말 없는 아이에게 밥을 차려줬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조용히 갈비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갔다.
자궁에 탈… 병원행 대신 폐경기 기다려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자궁에 혹이 있다. 남편 공장이 망하고 식당일을 시작한 뒤 발견했다.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당분간 일도 못한다. 돈도 든다. 주방 언니는 수술을 포기했다. 매달 생리 기간이면 골반이 뒤틀리고 출혈이 심하다. 고통을 진통제로 누른다. 차가운 바닥에 조용히 누워 눈을 감고 고통이 사그라지길 기다린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휴일은 생리 기간에 맞춘다. 한데 3개월 전부터는 하루도 못 쉬고 있다. 차라리 어서 폐경이 오길 기도한다. 폐경 뒤엔 여성호르몬이 줄어 종양이 작아지기도 한단다.
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걸까? 맞다. 통계가 증명한다. 통계청의 2008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인 인구 중 “지난 2주간 아픈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가 34.7%다. 이들은 14일간 평균 10.2일을 아팠다. 가구소득 100만~200만원인 경우 17.8%가 평균 8.4일간 아팠다. 가구소득이 500만~600만원으로 올라가면 13.6%, 6.4일로 떨어진다.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은 13.8%, 6.6일이다. 가난한 계층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아팠다.
한데 누워 있거나 입원해 있는 기간인 ‘와병 일수’는 별 차이가 없다. 2주 동안의 와병 일수는 가구소득 100만원 이하가 0.8일, 100만~200만원이 0.7일이다.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도 0.7일이다. 100만원을 못 벌 경우, 열흘 아파도 하루를 못 쉰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3. 아줌마가 웃을 때“에이, 왜 이런 거를 봐.“
9월22일, TV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다가 걸렸다. “저런 놈들, 만날 저러는 거.” 주방 언니는 채널을 돌렸다. A갈빗집과 B감자탕집 직원들은 다들 등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저렇게 놀러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감자탕집 주방 언니가 말했다. TV를 보는 식당 아줌마에겐 매주 놀러가는 도, 출연자들이 받는 거액의 출연료도 비현실적이다.
연예 프로·음담패설로 허탈한 웃음또 하나의 즐거움은 ‘음담패설’이다. 여자 넷이 모이면 음담을 나눴다. B감자탕집 교대 시간인 아침 9시, 주·야간 아줌마 넷이 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이다. “아이고, 이번달엔 수도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나 몰라.” “밤마다 욕조에 물 받아놓고 누구 기다린 거 아니여?” “어느 임을 맞으려고 그렇게 씻어댔다니.” “아무나 오라고 문 열어놨지.” 그러다가 야간 주방 언니가 “아이고, 저 가슴 큰 거 봐”라며 주간 주방 언니 가슴을 덥석 만진다. 웃음소리가 식당에 퍼진다.
하루 12시간씩 식당일을 하며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할까? 내 경우는 식당일을 시작한 뒤로 남편의 팔베개조차 귀찮아졌다. 내 몸뚱아리가 무거우니 성욕이 사라졌다. “그래도 그거 할 힘은 따로 있는 거지!” 언니들이 타박이다. “지금은 밥 먹다가도 밀어놓고 할 나이 아니여!” 다 같이 까르르 웃는다. 주말부부인 50대 야간 주방 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은 지금도 주말마다 보약 챙겨먹듯 챙겨.”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를 하고도 부부관계를 갖는단다. 한바탕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언니들이 말한다. “우리 나이 돼봐, 이런 얘기 아니면 하루 종일 웃을 일이 없어.”
음담패설 없이도 크게 웃은 날이 하루 있다. 오리를 잡은 날이다. 두 달 전, 감자탕집 사장은 새끼오리 네 마리를 들고 왔다. 심심하니 식당에서 키우라고 했다. 뒷문 앞 오리장 관리는 고스란히 식당 아줌마들 몫이었다. 매일 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켜야 했다. 그래도 악취가 심했다. “청소를 제대로 안 하니까 냄새가 나지!” 사장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식당 아줌마들은 진심으로 오리가 죽길 바랐다. 어느 날, 꿈이 이루어졌다.
손님 중에 “오리를 잡아주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주·야간 언니들 모두가 함께 사장을 설득했다. 사흘 만에 사장이 승낙했다. 9월22일, 오리를 잡았다. 언니들은 환호했다. 잡은 오리를 삶았다. 꼭꼭 씹어먹었다. 며칠 뒤 사장이 말했다. “오리 없으니까 할 일이 없지? 인제 뭘 갖다 키워볼까.” 웃을 일이 없다.
4. 햄버거와 덧버선B감자탕집은 150평 홀이 전부 ‘방’이다. 신발을 벗고 일해야 한다. 발뒤꿈치가 하얗게 일어나더니 딱딱해졌다. 식당 아줌마들이 덧버선을 신으라고 했다. 식당 길 건너에 있는 양말 노점에 갔다. 발바닥을 두껍게 처리한 덧버선이 반갑다. 얼마냐 물으니 5천원이란다. 시급이 3571원인데 5천원짜리 덧버선을 살 순 없다. 계속 머뭇거리자 노점삼 주인이 헛기침을 한다. 결국 얇은 헝겁으로 만든 덧버선을 집었다. 500원이다. 발 뒤꿈치는 더 딱딱해졌다.
삶은 금세 비루해진다. A갈빗집에선 늘 배고팠다. 밤 10시에 퇴근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10시40분이다. 단것을 먹지 않으면 걷지 못할 듯하다. 늦게까지 문을 연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플레인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4800원. 후회막심이다. 다음날부터는 편의점에 갔다. 잘 찾아보면 350원짜리 과일맛 음료도 있다.
휴일에는 친구와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7천원이다. 나와서 햄버거를 먹었다. ‘버거킹 와퍼’를 먹었다. 새로 나온 ‘매운맛’을 먹으니 햄버거 하나에 5300원, 세트에 6900원이다. 친구 것까지 사니 1만원을 훌쩍 넘었다. 괜히 기분냈다. 친구한테 돈을 달라고 할까 싶다.
두툼한 덧버선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시급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쉽다. 대한민국은 최저시급으로 햄버거 하나 사기 힘든 나라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햄버거가 비싼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가 발표한 ‘빅맥지수’를 보면 맥도널드 빅맥의 한국 가격은 2.59달러다. 미국이 3.57달러, 일본 3.46달러, 영국 3.69달러, 터키 3.65달러다. 스위스와 덴마크는 5달러를 웃돈다. 그런데도 햄버거 앞에 최저임금 노동자는 작아진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초라하다.
욕망은 돈이요, 괴로움이다. 멋내기 좋아하는 경희 언니는 사고 싶은 게 많다. “청바지 어디 것 입어?” 슬며시 내게 묻는다. 몇 개 브랜드를 말하니 “그거 비싼 거 아니야? 나도 청바지 하나 사고 싶은데…” 한다. 하루는 식당 아줌마들끼리 모여 화장품에 대해 애길 나눴다. 쇼핑할 시간이 없는 언니들은 주로 방문판매원을 통해 화장품을 구입했다. 국산 중저가 브랜드인 경우가 많다. 아이크림은 뭐가 좋다, 영양크림은 어느 브랜드가 최고다 한참 수다를 떨었다. “화장품도 떨어졌는데…. 아이고 돈 들 데는 왜 이리 많냐.” 팀장 언니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5. 공부 못하는 아이들식당 아줌마는 무슨 꿈을 꿀까? 전일제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생계비를 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고 싶을까? 그런 기대를 하기엔 현실은 냉혹하다.
오후 4시께면 회색 교복에 어깨를 움츠린 중학생이 식당에 온다. 평일엔 어김없다. 들어와서는 물끄러미 주방 쪽을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듯 고개를 돌린다. B감자탕집 주방 언니의 아들이다.
매일같이 만나지만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웃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고 가게에 들러 엄마 얼굴을 본 뒤 집에 간다. 저녁 반찬을 담은 봉지를 받아가기도 한다. 2천원 용돈을 받아 PC방에 가기도 한다.
아이의 꿈은 만화가다. 엄마는 진작부터 그 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다. 만화가는 돈을 못 벌 것 같아서다. 공부를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돈을 못 버는 건 싫다. 많이 벌길 바라는 건 아니다. 뭘 하든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딱히 다른 진로를 제시해주기 어렵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원에 보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원비가 18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랐다. 둘째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학원을 끊었다. 두 아이 다 성적이 부진하다. 그것도 진작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한다.
내가 만난 식당 아줌마 중 자녀가 있는 이는 7명이었다. 이들의 자녀 중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이는 없었다. 현재 초·중·고에 재학 중인 자녀 중 성적이 학급에서 상위권인 경우도 없었다.
A갈빗집 팀장 언니의 아들은 장애가 있다. 출산 과정의 잘못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중학생 때 집안의 몰락을 겪었다. 이후 부모는 일로 바빴다. 학원에 다닌 경험이 거의 없다. 그는 지방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에 보탰다. 1년을 다니다가 휴학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편입을 할까 했지만 포기했다.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식당에서 일할 생각이다.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 선배들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팀장 언니도 “차라리 일찍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딸도 열심히는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가난 대물림, 체념하며 수긍하는 수밖에팀장 언니 후임으로 온 정화(가명) 언니 아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애초에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찌감치 횟집 주방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이제 27살, 지금도 횟집에서 일한다. 월급은 100만원대 초반에서 정체돼 있다. 줄곧 여자친구가 없어 고민이다.
B감자탕집 야간 홀서빙 언니의 딸은 올해 전문대에 입학했다. 그는 딸의 등록금을 벌 요량으로 지난해 말부터 식당일을 시작했다. 감자탕집에서 일하기 전에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았다. 하루 5시간씩 김밥을 말아도 월급은 60만원이 못 됐다. 감자탕집으로 왔다. 밤을 꼬박 새워야 하지만 100만원을 넘게 받아 좋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는 시절이 있었다. 그 모형은 어느덧 과거형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 학생의 75.1%가 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원이다.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7%에 육박한다. 하위 20%는 절반이 사교육을 못 받았다. 갈수록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해진다. 식당 아줌마의 아들딸들이 다시 식당일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자시 비정규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가난한 중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낙오’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 약해지는 육신을 고된 노동은 봐주지 않는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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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단과학원의 과목당 수강료는 13만~19만원이다. 두 과목을 배우려면 한 달에 26만~38만원이 든다. 통계청 2008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전국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5.1%다. 성적이 높은 그룹일수록 사교육 참여율은 높아진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원이다. 10.9%는 한 달에 5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A갈빗집에서 팀장 언니의 월급은 160만원이었다. 홀서빙 직원 중 제일 많다. 식당일을 처음 시작한 10년 전에는 140만원을 받았다. 10년간 월급이 20만원 오른 셈이다. 수입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팀장 언니의 월급으로 네 가족이 살았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좀처럼 취직을 하지 못했다. 4천만원의 빚도 계속 떠안고 간다. 큰아들의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집은 4500만원짜리 전세다. 수중에 가진 돈을 전셋값에 몰아넣었다. 수도세,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이 한 달에 10만원 안팎이다. 겨울에는 가스요금만 10만원이 넘는다. 4명의 휴대전화, 인터넷 등 통신료가 최소 15만원이다. 빚 때문에 한 달 이자만 20만~30만원을 낸다. 원금 상환은 요원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무섭게 먹는다. 한 달에 쌀 20kg(5만원), 김치 4포기(4만원)가 든다. 가끔 고기 반찬을 올린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데도 식비가 30만원 안팎이다. 갈빗집이라도 한 번 가는 날엔 6만~7만원이 우습다.
‘먹는 것’에는 갈수록 돈이 많이 든다. 최근 식료품비가 올랐다. 지난 9월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상반기 엥겔계수(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는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2.5%다. 100을 벌어 12.5를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품을 사는 데 쓴다. 가난할수록 소득 대비 식료품비 비중은 높아진다. 팀장 언니네가 160만원을 벌어 30만원만 식비로 쓰면 엥겔계수가 18.8%다.
의복비도 만만치 않다. 딸아이 교복만도 20만원이 넘었다. 요즘 부쩍 속옷에 신경쓴다. 브래지어 하나에 1만원이 넘는다. 학용품, 참고서, 준비물 등을 사는 데도 5만~6만원은 기본이다. 네 가족의 용돈, 교통비, 경조사비, 기타 잡비로 30만~40만원이 든다. 남편 종신보험료 15만원은 ‘최후의 보루’다. 청약통장에 넣는 10만원은 ‘실낱같은 희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콩국수 사건’으로 팀장 언니가 실직했으니 큰일이다. 다행히 아들이 돈을 벌어오기 시작했다. 딸과 7살 터울인 아들은 최근 한 식당의 ‘캡틴’이 됐다. 지방대에 진학한 뒤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승진’했다. 월급은 130만원이다. 이제 아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 생각이다. 돈을 벌어 우선 학자금 대출부터 갚을 계획이다.
남편도 한 지갑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했다. 다음달부터 그도 120만원을 벌어올 것이다. 팀장 언니도 다시 식당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면 겨울에는 딸을 단과학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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