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OTL’을 읽은 뒤 대안을 요구하는 독자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거셌다. 끔찍한 노동 현실이 운명이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비명처럼 들렸다. 절망하고 싶지 않다는 발버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해도 일해도 물러서지 않는 가난을 그대로만 살피기에도 기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다. 그마저도 모두 보여주기에 지면이 적었다. 다행히 각계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물론,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복음’이자 뜨거운 ‘응원’이었다.
“진짜로 해보면 눈물이 난다” 댓글‘나도 OTL’ 사연이 전자우편, 기사 댓글 따위로 폭주했다. 공장·식당·할인마트, 심지어 이주노동자의 일터에서 경험하거나 보고 들은 바를 털어놓았다. 대부분 지금껏 한 번도 발설해보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들이었다. “밥 먹는 시간 20분 외에 쉬는 시간이 아예 없는 곳도 군포에는 있다. 5624번 종점에 가면 있는데 한번 해보면 진짜 눈물 난다. 첫날 많은 땀을 흘리니 고참께서 찬물 먹고 오란다. …밥 먹고 3~4분 지나니 ‘시작합시다’ 했다. 먹는 시간 포함해 정확히 20분이었다.”(‘hoho’의 댓글) “사장이 자기 아들 가방을 차 있는 데까지 전달하라고 시킨 적이 있는데, 그 집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seeun21’의 댓글) “과장이라는 분이 저희 생산직을 모아놓고 ‘당신들은 생산수단일 뿐이다. 이상이 생기면 교체하면 그만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서○○씨의 전자우편)
저마다의 고발은 그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던 노동자들에게 겨우 색감을 부여했다. “뒤통수를 빵 때리는 분노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사였다.”(‘jon trank’의 전자우편) “6년 전 제가 겪었던 지옥 같은 일을 너무나 사실대로 써내려가는 글을 읽다가 그만 눈물이…. ‘4천원 노동자’들이 미래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sustar’의 댓글)
독자 가운데는 ‘노동 OTL’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이도 있었다. 독립 다큐작가 임인애씨는 30분짜리 영상을 에 보내왔다. 그는 1986년 이후 비정규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노동 OTL’ 기획을 읽은 뒤, 그 영상자료를 편집해 한 편의 짧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관련영상] 1986. 1998. 2009수십 년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은 빈곤 노동의 실상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다큐작가 김이찬씨도 이주노동자의 애환을 소재로 을 제작 중이라며 ‘노동 OTL’ 기획에 동료적 공감을 보냈다. 김씨는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제 삶을 표현하도록 돕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위한 ‘영상교실’도 운영 중이다.
고발은 분노를, 분노는 연대를 부른다. 공장주나 식당 주인 등이 “그들에게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해왔다. 한 대학교수는 ‘노동 OTL’ 기사를 강의 교재로 쓰겠다고 문의해왔다. 산업의학을 전공한 공중보건의 장아무개씨는 “제대하면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평범한 의사로서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두 9곳에서 출판 제의를 받았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은 ‘국회 버전의 노동OTL’을 직접 기획했다. 20대 노동자 3명을 모집해 2009년 10월 서울 가산단지 등의 공장에서 한 달 내외로 일하면서 현장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홍 의원은 “정부가 2009년 초부터 대형 파견업체 육성과 합법적 파견 분야 확대를 위해 움직여왔다”며 “파견 노동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가 되면서 사실상 노예시장과 같은 상황임을 확인하고, 현 정부의 파견 확대 방침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사례와 근거를 축적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런 반응 없는 정부 속내는 뭘까입이 없는 이들의 확성기가 되려던 ‘노동 OTL’에 유일하게 메아리를 주지 않은 곳이 정부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기사가 연재되는 넉 달 동안 단 한 차례의 문의도 연락도 없었다. 노동 담당 위정자 가운데 ‘노동 OTL’을 본 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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