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당분간 문자나 전화도 안 될 거예요.”
안수찬 기자가 가난한 집안, 낮은 학력의 청년노동 문제를 다루겠다고 한 뒤, 일주일 만의 문자메시지였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실려온 현장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몇 년간 만나왔던 청년 노동자의 얼굴이 겹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침 기자가 찾아왔을 때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이르는 노동자의 노동인권 실태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어디를 밑바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곳에서 ‘하인’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그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참담한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던 차였다.
만날 때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참담함“버스 타고 택배 단지 같은 데를 가요.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6시나 7시쯤 보내주죠. 학생이라고 하면 7시쯤 보내주고, 학교 안 가는 사람들은, 어른이라든가 자퇴생이라든가, 오래 남아 있을수록 돈을 더 많이 버는 거니까 계속 남아 있고. 반절 이상은 학생이라고 보면 돼요.” 충북 지역에서 야간에 택배 일을 했던 A의 말이다.
“그것은…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을 더 올려줄 테니 애인이 돼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죠.” 탈학교 여성 청소년 B의 이야기다. 그는 작은 회사에서 사무보조를 했다.
남성은 여성보다 조금 더 많은 시급을 받았고, 폭언·폭행·성희롱 등에는 여성이 더 취약했다. 수도권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패스트푸드점·편의점·주유소·식당에서 주로 일했지만, 지방의 청년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시장에서 그들은 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별에 따라, 지역마다,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에 따라 상황은 달랐다. 무수한 차이를 보지 않고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어려울 정도였다.
몇 해 전 집을 나온 C는 쉼터에서 생활하며 독립을 꿈꾸고 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원하지 않더라도 독립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지났지만 방송통신고등학교도 다니고 있다. 집을 나온 뒤로 안 해본 일이 없다. 전단 돌리기, 주유소, 편의점, PC방, 식당을 거쳐 몇 달 전에 했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한다.
피자집에서 일주일에 6일 내내 10시간씩 일하는 D는 몇 년만 참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일한다. 남녀 구분 없는 휴게실 좁은 책상에 구부리고 앉아 잠깐 눈을 붙이고 피자를 만들고 파스타를 삶는다. 3~4년 동안 이런 생활을 견디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을 하며 참고 또 참는다. 이 피자집에서 일하는 열에 아홉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다.
정부 통계로도 청년고용률 40% 안 돼‘학력’이라는 스펙조차 애당초 없는 이들은 노동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이제 없다. 학력이라는 커다란 퍼즐 조각 하나를 쥐고 있다 해도 학점과 영어, 자격증, 외모 관리와 성형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펙을 관리하며 퍼즐을 완성하지 않는 한 정규직 취업은 언감생심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1월에 발표한 ‘2009년 10월 고용동향 분석’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살 가운데 지난 일주일 동안 구직활동을 했으나 일자리를 얻지 못한 비율)은 7.5%로 전년 동월에 비해 0.9%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실업률(3.2%)의 2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하지만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준비자·구직단념자 등의 상당수도 청년층임을 감안하면 체감 청년실업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청년고용률(15~29살의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9.5%로 4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 산정에 문제가 많은 정부의 공식 통계만으로도 생산가능인구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취직을 못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년 고용·실업 대책들은 몇 개월이면 들통날 거짓말 일색이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던 인턴제도의 예를 들어보자. 올 초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턴제도가 정규직 채용으로 연결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제도적 보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인턴십 문화가 앞으로 고용 유지·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6개월짜리 기간제 노동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 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실업급여 수급 자격조차 박탈당한 현실이다. 오락가락 행정 덕분에 어떤 이는 기왕 받은 실업급여까지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직 채용으로 연결된 예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마련한 청년고용 대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청년인턴이었다. 그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던 바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내년에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1만3천여 명의 행정인턴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노동부 장관이 “청년실업은 대책이 없다”고 고백까지 한 직후였다.
게다가 내년 국가예산안을 살펴보면 엉성한 대책이나마 대부분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면, 정부가 주력하겠다는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는 45.5% 삭감,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는 20% 삭감, ‘취업장려수당’은 65%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널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지럽다.
요즘 즐겨보는 개그 프로그램에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가 있다.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가 경찰서 한쪽에서 졸다가 경찰관에게 다짜고짜 묻는다. “아저씨! 첫 키스 기억해요?” “그럼요. 기억하죠.” “그럼 7번째 키스는요?” “네~에?” “에잇!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웃음이 빵 터진다. 같이 웃다가 슬며시 입꼬리가 내려간다. 입안이 깔깔해진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만 하지 마!
청년실업자의 50.5%는 고졸 이하다. 학력에 대한 고려와 함께 성·나이·지역 특성을 반영한 새 판을 짜지 않고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청년실업 문제는 학벌주의를 비롯해 급증하는 청년층 자살률, 비정규 노동 등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무거운 과제를 모두 품어 한꺼번에 던지고 있다. 청년층의 노동권 회복과 더불어 교육·의료·복지 등 다양한 사회권 회복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손쉽게 ‘눈높이’를 운운하며 자신들을 모욕하는 사회에 대해 그이들은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을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만 하지 마!
이수정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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