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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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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 몰랐던 현실에 놀랐다”

에필로그
독자 대표와 ‘노동 OTL’ 취재기자들의 방담…
“고된 노동·단단한 계층 장벽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건 아닐까”
등록 2010-01-07 16:14 수정 2020-05-03 04:25
노동OTL

노동OTL

‘노동 OTL’ 시리즈가 4개월에 걸친 연재를 끝냈다. 2009년 12월21일 저녁, 17기 독자편집위원 최고라·유재영씨가 담당 기자 4명을 불러냈다. 독자로서 취재 뒷이야기 등 궁금한 점이 많아서였다. 임인택(1부 안산 난로공장), 임지선(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전종휘(3부 마석 가구공장), 안수찬(4부 서울 A대형마트) 기자는 “재미난 이야기만 하자”고 다짐했지만, 두 달 뒤 부부가 되는 ‘청년 빈곤노동 세대’ 최고라·유재영씨와의 대화는 자꾸 진지한 쪽으로 흘러만갔다. 편집자


[노동 OTL 관련영상] 1986. 1998. 2009

최고라 애초 열쇳말을 ‘하드워크’나 ‘비정규직’으로 잡았는데, 기사 안에는 그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성, 계급 분화 등 한국 노동 현장의 거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다. 기사에 언급된 문제들을 사전에 예상했나.

임인택 첫 기사에서 ‘힘들다. 나 죽겠다’ 구구절절 썼는데, (웃음) 나머지 3명의 기자는 연재가 거듭될수록 중복되는 이야기를 피해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가 추가된 측면도 있지만, 실제 그런 다양한 요소가 빈곤 노동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못 박힌 엄지손가락 아직도 찜찜

임지선 30~40대 기혼여성이 급하게 일을 구할 때 주변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식당일을 택했다. 자연스레 ‘여성’에 주목하게 됐다. 여성이 여성 노동 현장에 들어가 손님·사장·남편에 대해 얘기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는 독자 의견을 많이 받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최규석·유승하·최호철·마영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최규석·유승하·최호철·마영신

임인택 첫 취재를 맡았는데,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누구와도 고통을 나누거나 방향을 논의할 수 없었다. 정말 외로웠다. 안산 공단으로 동료 기자 3명이 위로 방문했을 때,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야근까지 해서 받은 그날치 임금을 모두 술값으로 냈다. (웃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어느 기자가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가.

최고라 감정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임지선 기자를 지목하고 싶다. 감정 노동, 돌봄 노동이 얼마나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인지 공감했다.

임인택 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1부 연재가 끝난 뒤, 현장에 들어간 기자들이 나에게 전화를 많이 했다. 전종휘 기자는 “죽겠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임지선 기자는 “죽겠다. 골반이 빠지려 한다”고 했다. 안수찬 기자는 “죽겠다. 당장 술 마시러 와라”고 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전종휘 기자가 제일 절실했던 것 같다.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셨다니. 안수찬 기자가 그래도 제일 밝았다. 실제 젊어져서 왔다. (웃음)

안수찬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안경도 바꾸고 머리도 스포츠형으로 밀었다. 신문사에 돌아왔더니 “젊어졌다”며 반응이 좋아서 한동안 그 차림새로 다녔다. 다만 후배들은 힘든 일 시키고 자기만 럭셔리한 일터로 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웃음) 전종휘 기자는 산재까지 입었다.

최고라 전종휘 기자는 못이 박혔던 손이 다 나았는지?

전종휘 못 박는 기계를 쓰다가 못이 엄지손가락에 박혔다. 정신이 번쩍 들어 손가락을 보니, 못이 7~8mm 정도 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못의 전체 길이가 25mm니까 18mm 정도가 손가락 안을 파고든 거다. 못을 뽑고 소독한 뒤 병원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고 그날 저녁에 술 마셨다. 지금은 다 나았는데 기분이 켕긴다. 눌러보면 옛날에 아팠던 것보다 조금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유재영 공장 안에 더 큰 외과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분들도 있었나.

전종휘 물론 있지만 외과적인 상처는 눈에 보이고 치료를 받아서 나을 수 있다. 그보다는 도색 작업 때 나오는 유해 물질이나 먼지 등이 걱정된다. 이주노동자는 4대 보험이 안 되고, 아픈 징후가 와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미등록 노동자는 어차피 투표권이 없으니 정치권도 그들의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하다 귀국한 뒤 많이 아파서 치료받는 사람, 또 여기 와서 아팠다가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죽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 노동자라면 산재냐 아니냐를 다퉜을 것이고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들은 그런 시선에서 완벽히 벗어나 있다.

‘인용 전달’ 넘어선 획기적 방식 시도한 것
최고라 17기 독자편집위원

최고라 17기 독자편집위원

유재영 짧은 시간 동안만 노동을 흉내 내는 식의 가식과 과장을 느낀다거나, 노동 문제를 이렇게 선정적으로 다뤄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임인택 그런 논리라면, 1년을 일했다 해도 ‘기자들,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선정의 절정이구나’ 할 것이다. 우리가 만난 이들은 입이 없는 사람들이다. 누구도 꺼내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줘 고맙다는 이가 많았다.

전종휘 그동안 우리 언론은 누군가의 말을 사실인 것으로 믿고 그에 근거해 사실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만 기사를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이 땀 냄새를 맡고, 그들의 말을 듣고, 때론 협업하면서 오감을 이용해 취재했다. 노동 현장에 기자가 뛰어듦으로써, ‘인용 전달’을 넘어 좀더 객관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획기적 방식을 시도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면 좋겠다. 그것이 이번 4부작을 읽는 온당한 방식이 될 듯하다. ‘심층 탐사보도 농사’의 첫해로 봐도 좋고.

안수찬 한 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라면 옳다. 더 오랫동안 취재해야 한다. 다만 현재 한국 언론의 현실에서는 한 달도 어려웠다. 서민들의 언어는 선정적이고 단말마적이다. 그러나 그 언어에 진실이 담긴 경우가 있다. 우리가 쓴 기사에 서민의 날것 그대로의 언어가 담겼거나, 기자의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출입처에 기대는 관급 기사의 선정성이 판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서민 이야기의 선정성이 관청 보도자료의 선정성보다 낫다.

술 마시자고 매달려가며 취재

임인택 한 달이면 입에서 단내가 나는 시점이다. 군대 문제는 병장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막 신병훈련소에 입소한 한 달짜리 신참은 병장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볼 수 있다.

유재영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을 듯하다. 접촉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 취재를 했나.

안수찬 일할 때는 취재가 안 된다. 따로 만나야 한다. 일이 힘드니까 퇴근 뒤 회식을 잘 하지 않는다. 결국 평소에 먹지 않는 맛있는 음식을 사야 한다. 그런데 마트에서 고기 굽는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었다. 그래서 나는 생선회를 샀다. 보통 4만원씩 들었다. 돈이 많이 나갔다. (웃음) 우리 대부분은 기자 신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전종휘 처음 취업할 때, 출판일 하다가 그만두고 가구일 배우러 왔다고 했는데, 중반 이후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기자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는 접근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숙소에서 같이 지내거나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언어 장벽도 문제였다. 대학을 마친 친구들은 영어를 구사했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다. 더 다양한 감정의 결을 공감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임인택 기자

임인택 기자

임인택 나도 술을 많이 마셨다. 첫 주부터, 인사도 미처 못 나눈 사람들한테까지 매달려 술 마시자고 했다. 사람들은 내가 사이코인 줄 알았을 것이다. (웃음) 일할 때는 다들 침묵한다. 그래서 작업 중엔 관계를 넓히기 어려웠다. 계속 거절당하다 2주차 때부터 몇 명과 겨우 술자리를 할 수 있었다. 여성과의 대화는 특히 더 어려웠다. 젊고 귀여운 20살 청년이 있기에 나 대신 그분들 이야기를 듣고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청년한테만 초반 유일하게 기자 신분을 밝혔는데, 며칠 일하다 그만둬서 좌절했다. (웃음)

임지선 술을 사고 싶었는데, 식당 언니들은 어지간해선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식당일이 끝나면 뛰어나간다. 인사도 뛰면서 한다. 집에 가서 저녁하고 청소하느라 아주머니들은 늘 바빴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나 식자재를 다듬고 물수건을 정리하는 시간 등에 대화를 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식당일을 하는 내 사연이 궁금해서인지 아줌마들이 먼저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유재영 저임금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모습을 비난하는 독자 의견도 있었다. 빈곤 노동자의 정치 의식에 대한 대목은 기사에서 일부러 털어낸 건가.

안수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관점·경험·감성에 충실하려 했는데, 막상 그 세계에는 정치가 없었다. 정치가 없는 빈곤 노동의 현장이 사실의 총체에 가장 근접하는 이야기라고 봤다. 다만 노동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 예컨대 민주당·진보정당 심지어 우리 자신을 향해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묻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노동 OTL’의 정치성이었다.

임지선 바쁘게 만들면 정치에 무관심해진다고 하지 않나. 이른바 ‘스펙’의 기준을 강화해 대학생들이 바빠지면서 정치에 무관심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식당 아줌마는 투표날에 일한다. 오히려 공휴일이라 식당일이 더 바쁘다.

구조 진단보다 현실 보여주기로 결심

최고라 국회의원이나 공직에 있는 이들이 한 달 정도 노동 현장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인택 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위정자들이 현장에서 딱 한 달만 일하면서 어느 노동자건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면, 구체적이고 훌륭한 정책 대안이 수없이 나올 거라고 절감했다.

최고라 마트에서 용역업체에 가하는 압박에 대한 언급은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유통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안수찬 기자

안수찬 기자

안수찬 일단은 지면과 시간의 압박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사를 구조·체계의 문제로 치환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정보나 기사는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런 강박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대신 구체적 현실을 더 세부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최고라 임지선 기자의 글에서는 사장이 너무 악당으로 보인다. (웃음)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세 자영업자 중에도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는, 구조조정으로 몰락한 이들이 있다. 영세 자영업자를 ‘악덕 사장’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비롯해 자영업에 대한 시선은 일부러 제외한 건가.

임지선 사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종업원 위치에 서니까 사장이 싫어지더라. (웃음) 에서는 그동안 ‘자영업자의 눈물’에 대한 기사를 여러 번 다뤘다. 이번에는 그 밑에서 더 숨죽여 우는 사람들의 얘기를 쓰는 데 집중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식당일을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는 용역 아주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넘겨온 부분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임인택 임지선 기자는 예외지만, 취재를 마친 기자들 사이에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 발견돼 신기했다. 나는 때때로 반장 편이었고, 안수찬 기자도 대목대목 점포 사장을 옹호했다. 노동자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도 더 큰 구조 속에선 약자라는 대목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없는 자들끼리 싸우는 ‘슬픈 현실’

최고라 이주노동자를 다룬 3부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다른 기사와는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거나 그들의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우리의 임금 수준이 낮아진다는 댓글도 있었다.

전종휘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 독자의 반응을 보니, 예상보다는 악의적 댓글이 적더라. 무반응이었나. (웃음) 일하면서 느낀 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노동자의 진입장벽이 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일하는 곳에는 한국인 노동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노동의 환경·조건을 따져보고 한국 사람들이 안 오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것이지, 그들로 인해 한국인 노동자가 진입하지 못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저임금 노동을 충당하는 이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자 계층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그런 수요를 감당하고 있다.

임인택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악플이 달리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슬픈 사실은, 없는 자들끼리 싸운다는 것이다.

유재영 17기 독자편집위원

유재영 17기 독자편집위원

임지선 마트만 빼고, 이주노동 문제는 모든 일터와 맞닿아 있었다. 내 경우에도 식당 취업을 위해 전화를 걸면 제일 먼저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더라. 이주노동은 어느 한곳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를 구분해보기 전에 인간이 이런 식의 노동을 하면서 저임금에 허덕이며 살아도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전종휘 내 기사를 이주노동자가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이 일한 방글라데시 노동자에게 인터넷 홈페이지를 알려주긴 했는데 읽지 못했을 것이다. 60~70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중에 몇 명이나 내 기사를 읽을 수 있을까. 결국 한국 사람이 읽으라고 쓴 기사다.

임인택 그쪽 언어로도 번역해서 보내야겠다. (웃음)

전종휘 론스타 같은 해외 투기자본은 마구잡이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투기로 수조원대의 돈을 벌어간다. 투기는 생산 없이 자본을 증식하는 건데, 그건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보장을 해준다. 반면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뭔가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의 위선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유재영 독자 반응 가운데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생각할 것”이라는 태도도 있다. 노동 현장을 온몸으로 쓴 기사 이후의 작업이 궁금하다. 많은 이들은 그 구조를 넘어서는 길을 찾아주기를 기대하더라.

안수찬 기사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이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생각을 오래 품다 보면, 막상 그렇게 살게 되었을 때 그 부당함을 절감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대안 뭐냐고? 기사 자체가 1차 대안 아니겠나

임인택 쉬운 완결을 제시받고 위로받으려는 일종의 ‘대안 콤플렉스’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일한 공장에는 오후 5시30분 때때로 퇴근버스가 없었다. 대안은 ‘퇴근버스를 만들라’다. 그런 걸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노동 OTL’ 자체가 1차적인 대안이다.

전종휘 기자

전종휘 기자

전종휘 이 시대에 기자의 역할은 사태를 자세하고 쉽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부족했다면, 그런 문제들이 어떠한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지에 대한 탐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예를 들어 마트에 들어오는 돼지고기를 두고, 농민의 이야기, 국제 축산자본의 움직임, 사료 제조 과정, 도·소매 유통 과정 등을 모두 보여줬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저널리즘이 성취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판, 결정판이었을 것이다. 노동 문제는 금융·자본·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와 얽혀 있다. 그런 고민을 품고 새해에는 좀더 큰 구조를 보여주는 기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라 마지막으로 취재를 통해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싶다.

임인택 나조차도 안 보고 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런 이웃이 너무나 많은데, 못 듣고 못 봤다.

안수찬 기사에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 등은 기사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골라낸 사람들이 아니다.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정확히 기사의 대상이었다. 무척 놀랐다.

최고라 늘 주변에 있는데 우리 눈에서 자꾸 사라지는 사람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다시 불러내줘서 고마웠다.

임인택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차피 또 금방 잊혀질 거다. (웃음)

최고라 모두가 대안에 목말라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언론에 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만큼 언론의 힘이 세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참으로 뻔뻔할 정도로, 독자인 우리는 언론, 그중에서도 특히 진보 언론에 많은 기대를 짐처럼 지운다.

임지선 기자

임지선 기자

임지선 ‘노동 OTL’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에게도 대안을 한번 물었으면 한다. 사람이 사람을 부리고 노동시키는 현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계층의 벽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 역시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많이 반성했다. 문제의 해결은 노동의 ‘인간성’을 찾는 데서 시작되리라 믿는다.

좌담을 마친 뒤 네 기자(이들은 사회팀 소속이다)는 팀 회식을 했다. 송년회였다. 전종휘 기자의 네 살배기 아들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간다는데, 자연이 무엇이냐, 아빠도 자연으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술이 한 잔씩 돌았을 때 전 기자는 ‘노동 OTL’ 기획에서 우리 부모 세대의 노동을 먼저 묻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문제 해결은 ‘노동의 인간성’ 회복에서부터

필자들은 얼마 전 함께 살아갈 공간을 계약했다. 2년짜리 전세 계약이었다. 4년을 함께 노동한 값으로 계약했고, 은행 대출은 앞으로 3년을 일해야 감당할 수 있다. 노동은 소비의 수단이 아니다. 소비할 때가 아닌 노동할 때 동등함을 느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노동 OTL’을 통해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의 온기를 곱씹어본다. 두 팔로 땅바닥을 짚고 쓰러진 노동을 당장 일으켜세우진 못하더라도,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을 나눌 수 있는 사회, ‘노동 OTL’과 그리고 우리 새내기 부부가 함께 꾸는 꿈이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정리 유재영·최고라 17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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