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마석 이야기’를 읽는 동안 지난 5년간 경기 남양주시 마석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공기압축기를 이용한 ‘타카’에 의해 전종휘 기자의 엄지손가락에 박힌 핀만큼이나 아픔이 저미어왔다. 마석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가슴에 박힌 처절한 현실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인 레벤(가명)이 2005년 마석에서 표적단속을 당해 강제출국되기 직전 쓴 ‘달 전화기’라는 한 편의 시는 이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새벽까지 일하고 기숙사 갈 때/ 하늘 끝의 달 보며 눈물 흘린다/ 엄마 생각난다/ 엄마 생각난다/ 이슬 맺히는 눈에/ 달 보며 물어본다/ 우리 엄마 건강하니?/ 나를 꿈꾸던 어머니.”
마석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들이들은 왜 이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족의 품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서러움을 감당해야 할까? 전종휘 기자가 취재한 많은 사연들처럼 이주노동자의 어깨에는 이중 삼중의 짐이 놓여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고국에서의 행복한 삶이라는 희망이 이주노동자의 몸뚱아리를 하나로 감싸고 있다. 그 애절함을 짓누르는,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단속’이다.
경춘국도를 지날 때 거쳐야 하는 터널이 하나 있다. ‘마치터널’이다. 이 터널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서울 방향에서 춘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울 방향에서는 분명 비가 오는데, 불과 30m도 안 되는 터널을 빠져나가면 눈이 온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구릉지대에 마석가구단지가 있다. 그곳은 1960년대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 거주하던 곳이다. 사회에서 격리되고 버려진 척박한 땅에서 양돈사업으로 삶의 희망을 일구던 곳이다. 하지만 90년대 초부터는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가구공단이 조성됐다.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곳이다.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피부색도 말도 달랐지만, 분명 그들도 나와 같은 붉은 피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2003년 매서운 추위가 강습하던 겨울.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강행했다. 당시 이주노동자 10명이 단속의 공포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석에서는 지병을 앓던 한 이주노동자가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숙소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2007년에도 마찬가지로 합동단속이 예고됐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불법단속·강제추방에 반대하는 집회’를 계획했다. 마침 그 무렵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국내 정서상 이주노동자의 집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계획을 철회하려 했다. 그러자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피랍된 한국인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를 같이 하겠다고 제안했다. 집회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 귀환 기도회’로 바뀌어 열렸다. 이주노동자 300여 명은 자신의 종교의식으로 기도회에 참가했다. 이슬람교·힌두교·불교·기독교식으로 기도했다. 촛불을 하나씩 들고 경춘국도로 나가 한국인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분명 한국이 ‘제2의 고향’이었다. 그들은 때로 나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진행됐다. 최근에는 100만 이주민 사회를 맞아 다문화 시대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에 와서 세계경제의 침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국내 일자리를 잠식하고 외국인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외국인 범죄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편파적이고 왜곡된 측면이 많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랍 한국인 무사 귀환’ 빌던 이주노동자들내국인과 외국인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예컨대 특정 성씨나 지역의 성범죄율이 높다는 식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범죄 문제에서 굳이 외국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지목하는 것은 외국인을 사회적 해악이자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해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존의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면 불쌍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동정주의’를 지니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고서도 이들을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려는 차별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다문화 사회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를 거부하는 행위다.
정부는 최근 해외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중 국적을 허용하고 그들에게 체재비(1인당 연간 1천만원 한도)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상위 2%에게만 특혜를 주는 이 정부의 다른 정책과 닮았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115만 명가량의 이주민이 있다. 그러나 이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70만의 이주노동자는 ‘국가경쟁력’이라는 허울 좋은 정책에 의해 소외되고 배제돼 있다. 더욱이 한국 산업발전에 오랫동안 기여한 숙련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철저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강압적인 추방정책으로 일관한 결과 각종 인권침해 사건이 불거졌고 국제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이제는 전향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이 마련될 시점이 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다문화 사회로 편입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안정된 산업구조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 악몽은 언제쯤 사라질까2007년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능직 인력은 다른 직종과 비교했을 때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기술직 및 준전문가는 수요 대비 부족분이 3.79%, 서비스업은 1.57%, 판매관리직은 3.53%였으나 기능직은 7.40%나 됐다. 대략 3만9500명 정도다. 이런 부족분을 메우는 데 숙련 인력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면 사회적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맞닥뜨릴,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위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어느 날 네가 말했지. “형, 어제 단속되는 꿈 꿨어” 하며 침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어. 남자들이 간혹 제대 뒤 다시 군대 간 꿈을 꿀 때의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내가 널 꼭 지켜줄게”라고 약속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형! 살려줘”라며 외마디 신음소리가 전화기로 전달되었고, 너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쫓겨 공장 3층에서 떨어져 두 다리가 골절되었지. 두 다리를 절뚝거리며 한국을 떠나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해야 했던 나는 오늘도 악몽을 꾸고 있어. 이 악몽이 언제쯤 사라질까. “동생, 미안해.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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