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우리가 ‘노동 OTL’ 기획을 막 궁리했을 때, 친구야, 나는 너를 찾아갈 생각이었어. 20년 전, 사람들은 ‘망치와 펜치’라고 우리를 놀림 삼아 불렀지. 지금이야 맹꽁이처럼 배가 나와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깡말랐고 너는 다부졌잖아. 너도 시를 썼고 나도 시를 썼지. 나는 장정일이 대구 최고의 시인이라 생각했고, 너는 천만의 말씀 안도현이 최고라고 말했지. 그래도 늘 붙어다녔지.
“계란 프라이로 만날 밥 비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3 때 네가 했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 왜 계란 프라이를 매일 못 먹는지 알지 못했어. 말이 없으시던 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셨지. 항상 말이 없으셨지. 담배를 많이 피우셨지.
네가 건네준 책이 참 많았어. 너는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어. 이 지금도 기억나. 그 책에서 남방 아시아의 고등학생들은 제 뜻대로 제 의지대로 삶을, 세상을 개척했지. ‘넘어, 넘어’로 불리던 책도 읽었지. 라는 제목이 너무 벅찼어. 우리는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다 믿었지. 몰랐던 것은 오직 두려움이었고, 너와 나는 세상을 다 이해했다 믿었지.
서울에 올라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만났어. 그것은 밤새 포커를 치고 다음날 수업에 빠져도 되는 자유였지. 하숙방에 돌아오면 법대를 다니던 형들이 모여 있었어. 고시 공부의 스트레스를 푼다며 그들은 매일 밤 포커를 쳤지. 나도 옆에서 그 놀음질을 배우며 낄낄댔지.
스무 살의 여름이 생각나. “이게 도어 프레임이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어. “이게 내가 만든 도어 프레임이라고!” 자동차는 울산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여름에 처음 알았어. 그것은 대구와 구미와 경산의 수많은 하청 공장들이 부품을 만들어낸 다음에야 울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지. 어린 시절, 수학여행 때 본 거대한 공장은 거대한 위선이었지. 내가 포커나 치고 앉았던 스무 살의 여름 내내 너는 지방 도시의 작은 공장에서 자동차 문짝을 만들었지.
그렇게 돈을 모아 도서대여점을 열던 날을 기억하지? 사장이 됐다고 내가 축하했던가? “동네 깡패가 먼저 오고, 경찰이 나중에 왔다”고 네가 말했지. 그나마 떡값도 오래 주지 못했지. 대여점이 망한 뒤, 너는 많이 변했어. 술에 취한 너는 유난히 외로워했어. 나는 여전히 이해 못했지. 땀과 세월에 찌들기 시작한 20대 중반의 네 주변에 수다를 섞어볼 젊은 여자가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를 냈지. 네 동생이 기르던 ‘골든 레트리버’도 눈에 선하구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바해서 번 돈을 네 동생은 송아지만 한 개를 사는 데 다 써버렸지.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너는 그저 덤덤했어. “내버려둬. 그게 유일한 즐거움이야.”
빛의 속도로 달려온 너의 서른 이후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지. 너는 동네 슈퍼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업자 밑에서 일했지. 사장은 납입 액수가 틀리다며 너를 많이 닦달했지. 신용불량자가 된 너는 비닐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도 일했지. 햇볕 아래서 등짐 지느라 네 얼굴이 새카맣게 탔지. 아, 그 뒤로도 오랫동안 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직업에 올라탔다가 내려왔지. 그렇게 나이를 먹었지.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가도 어쩐지 잘 못 만나지는 나이가 되어버렸지.
친구가 차린 목공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 얼마 전에 들었어. 네가 읽은 책을 읽고 네가 쓴 시를 베껴 썼는데, 우리의 언어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어리석은 나는 여전히 이해 못하고 있어. 그래서 취재를 핑계 삼아 네 곁에서 함께 일하고 싶었어. 지난 세월을, 우리가 이해했다 믿었던, 넘어서려 했던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고작 한 달의 경험으로 그걸 대체할 수는 없었어. 그렇지만 나는 수많은 ‘망치’를 봤어. 수많은 네 스무 살을 봤어. 세상 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나는 너한테 별로 좋은 친구가 되지 못했어. 별 힘이 되지 못했지. 이제라도 그걸 만회하고 싶었는데, 나의 지혜와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그래서 철수와 영희에게, 영철과 경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편지를 쓰지 못하겠어. 해법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무수히 튀어나오는 현실이 너무 벅차구나. 그 문제들은 기다렸다는 듯 내 경험과 상식을 흔들고 비웃고 무너뜨렸어.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 친구야. 이제야 나는 너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아. 네 말을, 네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정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망치들’의 언어로, 입장으로, 경험으로, 관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들이 쳐올린 장벽을 망치로 두들기면서 우리 사회의 연대를 더 높이 더 굳건히 쌓아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아.
내년에는 좋은 각시 만나 장가가라. 발바닥은 내가 도맡아 때려줄게. 돌아가신 아버지도 손자가 보고 싶으실 거야. 이번 설에는 소주 한잔 하자.
2009년 12월18일
서울에서 펜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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