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살라무알라이꿈!
무슬림들이 만날 때 하는 인사말. 어둠이 내려앉은 마석가구공단의 거리를 걷던 그대들은 뚜비를 머리에 쓴 채 만나는 방글라데시 동료들과 이렇게 인사했지요. 한국말로 “잘 가요”는 ‘발로꼬레젠’이라는 것도 배웠어요. 제가 공단을 떠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가네요.
불안에 떨던 수줍은 미소가 잊히지 않아요
어때요? 아직도 공장 문을 굳게 잠근 채 일하나요? 출구를 찾지 못한 그 많은 톱밥 먼지와 소음은 그대로 코와 입과 귀로 들어가겠지요. 여전히 하루에 한두 번은 합판이 들어올 테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납품할 물건을 포장해야지요. 월요일을 뺀 매일 밤 야근을 하고 그 뒤에는 집에 가서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을 테고요.
기사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면서도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실수로라도 진짜 이름을 썼다가 그대들의 존재가 한국 땅에서 순식간에 ‘삭제’될까봐 저는 계속 조심했어요. 혹여 공장과 일, 인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좋은 단속 정보가 될까봐, 독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더 생생하게 현실을 전하지 못했어요. 만약 누구 하나 추방당한다면 저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대들과 함께 조립식 주택의 방에서, 마석의 술집에서 나눈 대화가 아직 귓가를 맴돕니다. “생각해봐, 형” 하면서 단속이 얼마나 그대들의 영혼을 파먹고 있는지 설명하던 그 눈망울. 불안과 불만이 9 대 1만큼 섞인 그 눈동자, 그 동공에 초점을 맞추는 내 마음도 어지간히 불편했더랬지요.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니요. 이런 모순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우리 공장 방글라데시 총각 삼총사 가운데 가장 귀엽게 생긴 피우롱. 도장반에서 머리에 허옇게 먼지와 도료를 덮어쓴 채 샌딩기를 돌리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피우롱은 내게 “도장반에서 일 오래 하면 성기능에 문제 생긴다”고 했죠. 그렇지 않기를 바랄게요. 나중에 방글라데시 가서 예쁜 여자 만나 결혼하고 귀여운 아기도 낳아야지요.
출롱은 아직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나요? 똘망똘망한 눈매의 출롱이 어느 날 저녁 야근을 앞두고 난로에 나무를 너무 많이 집어넣는 바람에 땀을 줄줄 흘리며 일했던 생각이 나요. 내가 기자인 걸 알고 나서는 “형, 진짜 우리 얼굴 나오면 안 돼요”라고 신신당부했죠. 그럼요. 나중에 ‘나라’에 간 뒤 작은 배 한 척 사서 친형하고 운수업 해야지요. 그때까지 돈 많이 벌어야지요.
페드로 형. 나보다 한 살 많다고 내가 형에게 “형” 하고 부르면, 형도 자꾸 나를 “형” 하고 불렀죠. 난 좀 이상했어요. 그런데 어제 방글라데시에 전화해서 파티마 엄마 타냐와 통화하는데 그 스물두 살짜리 여성도 나한테 “형”이라고 부르는 거 있죠. 어쨌건 형의 수줍은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마리아 누나는 어때요? 아직도 밤이면 소주를 마시고, “힘들어”를 입에 달고 사나요? 언제 기회가 되면, 단속 걱정에 14년 동안 남양주시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누나를 제 차에 태우고 강릉 경포대 바닷가에 가서 오징어회에 소주 한잔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될까 모르겠어요. 함부로 약속은 하지 않을게요. 아참, 그리고 누나 방에서 술 마실 때 내가 얘기했지만 딸 아밀렌과 내년에 미국에 가더라도 너무 기댈 생각은 하지 말아요. 마석에서도 힘겨운 삶을 이어온 누나가 미국에 가서 딸 눈치 보고 살게 되면 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그러니….
경포대에서 함께 소주 한잔 하고 싶지만서울도 찬바람 쌩쌩 부는데 마석은 또 얼마나 추울까 걱정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그대들에게는 삶인 고단한 노동을 잠시만 경험하고 떠나서 미안합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필요할 땐 놔두고 그렇지 않으면 기를 쓰고 붙잡아 나라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그런 편협한 민족국가의 국민이어서 미안합니다. 그대들의 아픔은 여전한데, 타카핀 박힌 내 엄지손가락의 상처는 다 나아서 미안합니다. 발로꼬레젠.
2009년 11월26일 전종휘 드림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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