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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OTL

내 이름은 아줌마, 혹은 ‘파블로프의 개’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아줌마’로 보낸 한 달…
손님·팀장 언니·동료·사장의 명령 속에 하루 12시간 뺑뺑이

제781호
등록 : 2009-10-13 12:10 수정 : 2009-10-1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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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OTL
‘노동 OTL’ 기획의 두 번째 일터는 식당이다. 식당에 가면 ‘식당 아줌마’가 있다. 중년 여성에게 식당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정규 일터다. 2009년 3월 현재 439만 명의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정규 일자리 중에서도 식당일은 비교적 ‘고소득’ 직종이다. 시급이 높아서가 아니다. 일을 하는 절대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이 보통이다.

한 달여 동안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8월 말에 구직을 시작해 9월 한 달간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에서 일했다. 젖은 손과 부은 다리를 부여잡고 잠이 들었던 한 달의 기록을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제1부 안산 난로공장

① 작업 라인의 노예

② 4천원의 삶과 행복

③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① 언제나 젖은 앞치마

② 몰락 가장의 부인과 올드미스

③ 사장님, 손님, 남편님

앞치마 허리끈을 묶는다. 주황색 셔츠에 검정바지, 검정 양말에 검정 앞치마. 머리는 단정히 반머리로 묶었다. 주황색 셔츠 두 벌과 검정 앞치마는 유니폼으로 지급받았다. 홀에서는 같은 옷을 입은 동료들이 이미 청소를 시작했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 9시50분, 하루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이곳은 서울 강서구의 ‘A갈빗집’, 나의 일터다.

가을 한 달을 ‘식당 아줌마’로 살았다. 식당에서는 누구든 ‘식당 아줌마’인 내게 일을 시킨다. 사장일 수도, 손님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해서 일하는 내내 일에 쫓긴다. 동료들은 대부분 인생의 가을을 맞은 중년 여성이다.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고 엄마다. 시급은 4천원 안팎이다. 그래도 12시간씩 쌓이니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다. 고스란히 생계비다. 식당 아줌마들의 가을은 가난하다.

1. 만능 슈퍼우먼

식당에서 중년 아줌마들은 ‘슈퍼우먼’ 혹은 ‘엄마’처럼 일해야 한다. ‘엄마’는 시키지 않아도 이것저것 집안일을 다 하곤 한다. 식당일도 집안일처럼 해도 해도 티가 안 난다. 찾을수록 할 일은 많고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무한 노동이다.

4종 걸레질로 하루를 시작하다

내 이름은 아줌마, 혹은 ‘파블로프의 개’. 일러스트레이션 유승하

갈빗집의 아침은 청소와 함께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오전 9시40분에 출근하든, 10시 정각에 도착하든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업무 시작이다. 이때부터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온갖 일을 찾아내 해치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쁜 시간에 허둥대 더 피곤해진다. 청소는 크게 빗자루질과 대걸레질, 손걸레질, 화장실 청소, 이렇게 4가지로 나뉜다. 첫날, 옷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청소에 투입됐다.

직원들과는 청소를 하면서 첫인사를 나눴다. A갈빗집은 나를 포함해 홀서빙 직원 5명, 주방 직원 4명이 일한다. 사장은 40대 중반의 여성이다. 홀서빙 직원끼리는 나이가 많은 이는 ‘언니’로, 어리면 이름을 부른다. 홀서빙 직원 중에 직책이 ‘팀장’인 이가 있지만 이마저도 편하게 ‘언니’라 부른다. 주방에는 담당 업무에 따라 요리 담당 ‘실장님’, 밑반찬 담당 ‘찬모님’, 설거지 담당 ‘이모님’, 기타 잡무 담당 ‘과장님’이 있다.

가게는 넓다. 홀부터 주방까지 170평이다. 홀에는 29개 테이블이 있다. 안쪽에는 16개 테이블이 있는 방이 있다. 방 안쪽에는 또 하나의 나무 문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또 작은 방이다. 이곳에서 직원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그 안쪽으로 식자재 창고가 있어 작은 방엔 늘 매캐한 냄새가 난다.

싸리빗자루를 잡고 홀부터 쓸기 시작한다. 내 팔뚝 굵기의 빗자루를 잡고 홀 절반을 쓸고 나면 빗자루가 천근만근이다. 빗질이 끝나면 대걸레를 들고 온다. 갈빗집 바닥에는 기름때가 많다. 대걸레질은 두 손에 힘을 줘서 박박 문질러 닦아줘야 한다. 금세 주황색 셔츠가 땀에 젖는다. 한 번 쓴 대걸레는 락스와 주방세제를 풀어 손으로 벅벅 비벼 빨아줘야 한다. 이후 손걸레로 45개 테이블 위를 닦는다. 어린이용 놀이방, 어항, 선반 등도 닦아줘야 한다.

화장실 청소는 혼자 한다. 식당의 관습법상 막내인 내 담당이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락스와 주방세제를 잔뜩 풀어서 거품을 낸다. 그걸 변기와 세면대에 뿌린다. 가장 고역은 남자 소변기를 닦는 일이다. 남자 소변기 아랫부분의 둥근 뚜껑을 걷어내면 하루 동안 그곳을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곳을 수세미로 비벼 닦는다. 구역질이 난다. 락스를 너무 많이 쓰면 어느 순간 눈이 시려 뜰 수가 없다. 눈물·콧물 범벅이 돼서 물을 뿌린 뒤 후퇴한다.

허리를 펴고 시계를 본다. 1시간은 지났겠지 싶은데 이제 겨우 40분이 지났다. 12시간은 언제 지난단 말인가! 디저트용 커피와 요구르트를 준비하고 공기에 밥을 퍼넣는다. 1시간 사이에 변기부터 요구르트까지 내 손을 거친다.

오전 11시는 직원들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주방 앞 테이블에 상을 차린다. 막내가 눈치껏 밥상을 차려야 한다. “얘, 얼른 수저랑 물이랑 밥 놔!” 조금만 늦어도 언니들이 성화다. 수저, 물컵, 공깃밥, 앞접시를 가지런히 놓고 음식을 차린다. 내 입에 밥 넣는 것도 ‘일’이다. 낮 12시가 되면 손님이 물밀듯 들어오기 때문에 얼른 먹고 치워야 한다.

어림도 없는 ‘한 번에 한 가지씩’

A갈빗집의 메뉴는 다양하다. 크게 식사류, 전골류, 고기류로 분류된다. 식사류는 갈비탕, 육회비빔밥, 낙지비빔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냉면 등이다. 김치두루치기, 돼지주물럭, 버섯불고기 등 전골류도 인기 메뉴다. 고기류는 돼지왕갈비, 생삼겹, 소갈비, 한우꽃등심, 육회 등이 있다. 여기에 ‘점심 특선’ 메뉴가 있다. 하루에 한 가지 메뉴를 지정해 5천원에 제공한다.

낮 12시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앞뒷문이 열린다. 문에 매달린 종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걷지 말고 뛰어다녀!” ‘팀장님’이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이 식당에서 1년7개월간 일했다는 그는 식당일에서 베테랑이다. 한데 곧 그만둔다고 한다. 직원들 처우 문제로 사장과 다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장과 팀장은 서로 냉랭하다. “손님이 들어온다 싶으면 인사를 크게 해야지!” 어느 틈에 사장이 옆에 와서 잔소리다. 그러고는 시범을 보이듯 큰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를 외친다. 나도 따라 인사를 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선 ‘고객 만족’이 안 된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밀고 나가는데 또 손님이 들어오고 저쪽 테이블에서는 김치를 더 갖다달라고 한다. 커피를 타달라는 이도 있다. 점심시간에만 홀에 있는 29개 테이블의 손님이 두세 번 바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내게는 첫날이지만 손님들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굼뜨게 행동할수록 “아줌마!” “여기요!” 외치는 소리, 테이블벨 울리는 소리는 잦아진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최대한 빨리 상을 치워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쟁반운반차가 없으면 뚝배기와 도자기 그릇이 가득 든 쟁반을 손으로 날라야 한다. 무게에 팔목이 꺾인다. 그래도 그릇이 깨질까 조심조심 옮긴다.

상을 치우고 식당이 좀 조용해졌다 싶어 허리를 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30분이다. 개수대 옆엔 우리가 닦아야 할 물컵, 맥주컵, 가위, 국자, 집게 등이 쌓였고 그 옆 얼음제조기 위에는 식수가 담겼던 물통이 쌓여 있다. 물통에 얼음과 물을 채워놓고 설거지를 한다. 아침에 해놓은 밥도 다 팔렸다. 새로 밥을 해 공기에 퍼담는다. 다시 허리를 펴면 오후 2시30분. ‘언니’들이 내게 직원들 점심상을 차리라고 한다.

첫날의 ‘점심 특선’은 카레였다. 우리의 점심상도 카레였다. 이때부터 세 끼 연속 카레를 먹었다. 생각보다 ‘점심 특선’을 찾는 손님이 적어 카레가 많이 남은 까닭이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팀장 언니가 “가서 1시간 쉬라”고 한다.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경희(가명) 언니가 옷 갈아입는 방으로 슥 들어간다. 경희 언니는 마흔 살, 재중동포다. 피부가 희고 얼굴이 예쁘다. 화장도 열심히 한다. 그를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얇은 전기요가 깔려 있다. 언니는 그 위에 누웠다. 방석을 베개 삼고 발밑의 얇은 담요를 배까지 끌어올렸다. 나도 따라 누웠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뜨거운 전기요에 노곤한 몸이 달라붙는 듯했다. 언니가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놀라 깼다. 1시간 쉬는 것도 2인1조로 2교대다. 잠을 자라고 시키니 잠을 자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코드를 꽂아 충전한 기계처럼 밖으로 나간다. 이제 저녁 장사를 준비할 때다. 경희 언니는 다시 화장을 고친다.

5분 늦고 하루 종일 ‘주의’

자고 일어나 불판을 닦았다. 주방에 들어가니 까맣게 타버린 불판 수십 개가 큰 고무 대야에 담겨 있다. 앉은뱅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철수세미로 불판을 문지른다. ‘찬모님’과 ‘이모님’이 자기들 음식하는 데 거치적거린다며 소리를 지른다. 몸집이 큰 50대 찬모님과 깡마른 60대 이모님은 둘 다 욕을 잘 한다. 어쩔 수 없이 구석으로 옮겨 마저 닦는다. 한참을 문지르다 보면 불판을 이렇게 태워먹은 손님이 원망스럽다. 도대체 누가 왜 고기를 불판에 구워먹을 생각을 해냈을까. 수십 개를 닦고 나면 무릎도 어깨도 뒤틀린다.

오후 6시께부터 저녁 손님이 든다. 골프연습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혼자 온 손님부터 회식 단체 손님까지 밀려와 꾸준히 바쁘다. 고기 손님이 많아지면서 손님 시중을 드는 일도 더 많아진다. 시곗바늘은 꾸물거렸다. 배가 고팠다. 회식 손님의 삼겹살을 구워주다가 한 개 집어먹을 뻔했다. 너무도 맛있어 보였다.

식당일을 시작하면 서러운 순간이 많다. 미자(가명) 언니는 “나 때는 울면서 일 배웠다”고 했다. 43살 미혼인 미자 언니는 늘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이다. 예전에 우울증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감정의 기복이 크다. 그 언니 앞에서 실수를 하면 등짝을 짝짝 맞는다. 원래 식당일이란 것이 기존 직원들의 텃세에 사장의 구박, 손님들의 타박에 혼자 울 때가 많다고 한다. 맞은 자리가 아파도 앞에서는 웃는다.

사장도 기선을 제압하려고 꾸준히 구박을 한다. 내게도 그랬다. 5분 지각했다가 하루 종일 ‘주의’를 들었다. 10초나 됐을까, 음식준비대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결정타는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걸린 사건이다. 일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청소를 하다가 잠시 휴대전화를 받았는데 그 모습을 사장이 목격했다. “너 지금 다른 사람 일하는데 혼자 노는 거야? 일할 생각이 있는 거야 뭐야? 일 안 할 거면 그만둬!”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나의 말을 사장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었다. 나는 “일을 계속 할지 어쩔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날 저녁,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인생에 고비를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가 중요하다”며 설교를 늘어놨다. 그러더니 사람을 구할 때까지는 있으라고 했다. 돌아서며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과연 생계가 절박한 상황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의연히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잔혹한 ‘달인’ 시스템. 일러스트레이션 유승하

“진짜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드네”

드디어 애타게 그리던 밤 10시가 됐다.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사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들과 우르르 몰려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축축해진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언니들은 유니폼을 집에 가져가 빨아오기도 하고 퇴근 직전 개수대에서 빨아 가게에 널어놓기도 한다. “아이고, 하루가 또 이렇게 갔구만.” 바지를 벗던 이모님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너무 힘들다.” 팀장 언니가 거든다. 무뚝뚝한 찬모님까지 말을 보탠다. “진짜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드네.”

식당 아줌마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12시간 만에 마시는 바깥 공기다. 허벅지, 종아리, 발목, 발바닥이 모두 아파 걷기가 괴로웠다. 그래도 “스트레스나 풀 겸 소주나 한잔하자”는 아줌마는 아무도 없다.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집에 가서도 할 일이 많다. 팀장 언니는 가족과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 이모님도 찬모님도 집에 가면 집안일이 기다린다. 나 역시 집에 오니 빨래와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다. 외면하고 잠이 들었다.

2. 잔혹한 ‘달인’ 시스템

식당 아줌마들은 모두 ‘달인’처럼 일한다. 뜨거운 물건을 마구 잡는 신공은 가장 놀라웠다. 뜨거운 공깃밥과 펄펄 끓는 누룽지 그릇을 한 손으로 태연히 잡고 나른다. 뜨거운 불판 위에서 고기를 자를 때도 평온하다. 나는 매번 “앗 뜨거”를 연발한다. 장갑 없이는 공깃밥을 보관하는 온장고에 손을 넣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얼음과 냉면 그릇, 냉장고에 있던 고추장통을 만져야 하니 손이 타올랐다가 얼어버리기를 반복한다. ‘공깃밥 잡기’는 훗날 감자탕집에서도 나의 숙제였다.

비법이 뭘까? 빛의 속도로 물컵 설거지를 하고 있는 팀장에게 물었다. “고무장갑도 안 끼고 하세요?” “만날 하는 건데 뭐. 내 손 만져봐. 손이 그냥 수세미야.”

팀장 언니의 손등엔 주름이 가득하다. 40대 중반인데 노인의 손 같다. 손바닥도 손등만큼 거칠다. 주름이 너무 많아 손금을 구분하기 어렵다. 사람 손이 이렇게 촘촘히 거칠 수 있나 싶다. 그의 손은 이제 뜨거운 것도 더러운 것도 다 만질 수 있다. ‘달인’의 손이다. 락스물에 담근 내 손끝도 조금씩 트고 있었다. 언니들 말로는 그렇게 트기 시작해서 나중에 단단해진단다. 그때쯤엔 공깃밥을 너끈히 잡을 수 있을까.

홀에 켜놓은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한 번에 140장의 접시를 나르는 뷔페 직원을 ‘달인’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케이블 채널을 틀어놓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생활의 달인>이 방영된다. 각종 일터의 베테랑 일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뷔페 직원은 얼마나 많은 접시를 얼마나 빨리 날라야 했기에 손가락 사이마다 접시를 끼우게 됐을까. ‘달인’들과 함께 있는 나는 그들이 달인이어서 슬펐다. ‘노동의 달인’인 이들의 하루하루는 수세미처럼 거칠었다.

‘달인이 아닌 자’ 노여움을 살지니

눈치도 빨라야 한다. 손님이 들어오면 언니들은 3초 안에 손님이 몇 명인지 파악해 물컵과 물수건을 쟁반에 담는다. 한꺼번에 세 팀이 들어오는 걸 보고 물컵을 챙기려고 하면 이미 한 언니가 물통 3개와 물컵 여러 개를 들고 출동한 다음이다. 설거지도 요령껏 해야 한다. 물컵을 손으로 비벼 닦다가 혼났다. 주방세제를 묻힌 뒤 두 번만 ‘튕기란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수도꼭지 아래에서 상하로 두 번만 흔들란 얘기다.

모두가 ‘달인’이니 ‘달인이 아닌 자’는 노여움을 살 뿐이다. 개수대에 물을 받아 깻잎을 한 장씩 씻으니 경희 언니가 소리친다. “어머, 얘! 그렇게 닦으면 언제 다 해!” 왼손으로 깻잎 뭉치를 잡고 수도꼭지 아래에서 오른손으로 돈 세듯 넘겨주면 된다. 물까지 탁 털어주면 깻잎 100장을 씻는데 30초도 안 걸린다. 경희 언니는 가르쳐주다 말고 “아이고, 내가 빨리 하고 말지” 하며 자기가 마저 씻는다.

손님상, 특히 단체 손님상을 치울 때 ‘달인’의 면모는 빛을 발한다. 우선 가운데 불판을 치우고 환풍기 후드 아랫부분을 분리한다(이 부분은 매번 분리해 씻어줘야 한다). 음식물 찌꺼기를 한데 모으고 수저와 컵, 채소 등을 싹 걷는다. 그릇을 크기순으로 포개고 쓰레기를 한 번에 쓱 쓸어내 담는다. 20명이 먹은 상을 치우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음식을 갖다주고, 손님이 음식을 먹고, 손님상을 치우고, 다시 그릇을 닦아 정리해 음식을 담아 갖다주는 행위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그 위에서 아줌마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하다. 그래야 한다.

기술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다. 삼겹살부터 한우꽃등심까지 제대로 구워 제 타이밍에 잘라주지 않으면 큰일이다. 한쪽 면이 익어 핏물이 나올 때쯤 뒤집어 잘라줘야 한 번에 잘린다. 삼겹살을 자를 때는 비계 쪽부터 자른다. 한우꽃등심은 1인분에 3만5천원이다. 내 시급이 4487원꼴이니, 한우꽃등심 1인분을 사먹으려면 8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하다못해 5천원짜리 ‘점심 특선’도 내 시급보다 비싸다. 그러니 ‘비싼 음식님’에게 잘해야 한다.

B감자탕집에선 홀로 서빙을 했다. 손님상을 차릴 땐 긴장해야 한다. 사람 수에 맞게 앞접시, 소스 그릇, 물컵, 물수건을 챙긴다. 뼈 담는 그릇과 국자도 필수다. 자꾸 뭔가를 빠뜨리면 150평 홀 안에서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한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메뉴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잘 기억해야 한다. 손님이 올 때마다 언니들을 따라가 메뉴별 대응법을 배웠다. 비빔밥에는 고추장, 냉면에는 겨자·식초를 함께 갖다준다. 갈비탕, 해장국, 간장게장 등에는 앞접시를 내주고 김치찌개가 2인분 이상이면 삼발이를 갖다놓아야 한다. 전골을 시키면 불판 뚜껑을 열고 삼발이를 놓은 뒤 전골냄비를 올리고 불을 강하게 켜둔다. 김치두루치기는 김칫결대로 찢어줘야 하고 버섯불고기는 절반씩만 익힌다. 고기류를 주문하면 바로 불판 뚜껑을 열고 숯과 불판을 가져다가 넣고 불을 강하게 켜야 한다. 고기가 나왔을 때 숯에 불이 붙어 있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메뉴별 대응법만 배우는 데도 3일 이상 걸렸다.

열흘새 입안 헐고 발바닥엔 굳은살

불호령의 나날이었다. A갈빗집 일을 그만두기 사흘 전인 지난 9월8일부터 갑자기 내가 마감 당번이 됐다. 마감 당번이란 다른 직원들이 밤 10시에 퇴근한 뒤에도 가게를 지키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직원을 뜻한다. 갑자기 마감 당번이 됐기에 9월8일에는 13시간 노동을 했다. 1시간만큼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다음날부터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라고 했다. 술손님 시중을 들다가 밤 11시가 됐다. 사장이 고생한다며 자두 하나를 줬다. 허겁지겁 먹었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빵을 사먹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매일 밤 뜨거운 수건을 다리에 올려두고 자도 다리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9월10일, 마지막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열흘새 입안이 헐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혔다. 근육과 관절이 아팠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이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완전한 착각이었다.

3. 조건반사 노동

인천의 B감자탕집은 A갈빗집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특히 노동 착취가 심했다. 24시간 문을 여는 감자탕집은 150평 규모에 걸맞지 않게 주방에 1명, 홀서빙에 1명의 직원만을 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씩 2교대다. 한 달에 두 번 쉴 수 있고 월급은 120만원이다. 12시간을 균일하게 봐도 시급이 3571원에 불과하다. 덩치가 좋은 50대 남자 사장은 아침·저녁으로 수금을 위해 잠깐 들러 1시간 정도 잔소리만 하다 간다.

“감자탕 대자로 드릴까요?”

식당에서는 ‘소리’에 민감해진다. 갈빗집 출입문엔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감자탕집 자동문에선 <클레멘타인> 노래가 나왔다. 밥 먹을 때도, 서빙을 할 때도, 반찬통을 채울 때도 ‘딸랑딸랑’ 소리나 <클레멘타인> 전자음이 들리면 바로 일어나 “어서 오세요!”를 외쳐야 한다. 어느새 내 몸은 이들 소리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한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이 노래는, ‘넓고 넓은 감자탕집 홀서빙은 나 혼자~’로 들린다.

몸은 어느 순간부터 자동으로 움직인다. 손님이 오면 문쪽을 보고 인사를 한 뒤 물수건과 컵을 사람 수대로 챙겨 테이블로 안내한다. 주문을 받고 카운터에 와서 선택 메뉴와 수량을 입력한 뒤 주문서를 음식준비대에 가져다준다. ‘딩동’ 하고 테이블벨이 울리면 “네, 손님!” 하고 바로 외친 뒤 해당 테이블로 달려간다. 가는 길에 다른 손님이 뭔가를 요구하면 따로 기억해야 한다. 주방에서 “음식 나가요”란 소리가 들리면 상을 치우다가도 달려가 음식을 서빙해야 한다. 음식이 식으면 절대 안 된다. 특히 뚝배기에 담긴 음식은 보글거릴 때 내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평을 한다. 다시 끓여달라는 이도 있다. “계산이오!” 소리가 들리면 카운터로 달려가야 한다. 반찬 냉장고 앞에서 카운터까지는 35걸음이다. 이 모든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뛰어야 산다.

내 몸이 힘들어지니 음식도 더 이상 사람이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원수 같은 물건일 뿐이다. 갈수록 반찬 재활용도 위생도 신경쓰지 않는다. 야간 홀서빙 언니에게 전수받은 상 치우는 법은 이랬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는 버리면 안 된다. 고추와 마늘, 쌈장도 딱 봐서 지저분하지 않다 싶으면 그대로 쟁반에 올린다. 밥도 깨끗하게 한쪽으로만 먹고 남겼다면 ‘살린다’. 나중에 볶음밥용으로 쓸 수 있다. 하다못해 감자탕의 시래기가 많이 남아 있으면 그것만 따로 담아 쟁반에 올린다. ‘반찬 재활용’은 갈빗집에 있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A갈빗집은 김치와 마늘, 고추, 상추 등을 재활용했다. 나는 은근슬쩍 남은 반찬을 다 버리곤 했다. 하지만 바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겨를도 없다.

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감자탕 대(大)자로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자동이다. 이는 사장의 특별 지시 사항이다. 감자탕은 대 2만7천원, 중 2만2천원, 소 1만7천원이고 1인분씩 나오는 뼈해장국은 5천원이다. 손님 3명이 들어와 뼈해장국 3개를 시키면 1만5천원, 감자탕 대자에 각자 공깃밥을 시켜 먹으면 3만원이니 꼭 감자탕을 시키도록 유도하란다. 일단 ‘감자탕 대자’를 시키면 그 자리에서 주방을 향해 “감자탕 대자요!” 하고 소리를 지르란다. 이후에 손님이 주문을 바꾸려고 하면 “이미 음식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란다. 불륜 커플로 보이는 이들은 구석 자리를 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몸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인다.

인간은 참 자동이다

점심과 저녁, 바쁜 시간 사이에 틈을 내 화장실 청소를 한다. 화장실 냄새는 ‘24시간 업소’다웠다. 청소 첫날, 남자 화장실에서 난 잠시 숨을 멈췄다. 어떤 이가 변기에 변을 그대로 남겨두셨다. 물을 몇 번 내려봐도 내려가지 않는 굳기를 보니 적어도 1시간 이상은 됐다. 용의 선상에 몇 명을 올려본다. 변기 앞 재떨이에 담배꽁초도 여러 개다. 재떨이에 사장이 피우는 담배도 있다. 소변기도 늘 대충 닦았는지 더럽다. 식당에서 먹고 싼 이들을 생각해본다. 인간은 참 자동이다.

4. 휴식 없는 노동

B감자탕집 언니들은 지난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주방과 홀에 사람이 1명씩 있으니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다. 이렇게 직원 수를 줄인 지 3개월 됐다. 사장은 곧 1명을 더 뽑겠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언니들은 눈치를 보며 누구 하나 쉰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쉬면 가게는 어떻게 해.” 속 터지는 소리만 한다. 사장은 휴일을 모른 척한다. 쉬지 않는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9월 넷쨋주, 나와 주방 언니는 하루 차이로 생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리통에 고통스러워하자 주방 언니는 비밀스럽게 말했다. “반찬 냉장고 앞에 잠깐 엎드려 있어. 내가 손님 오나 보고 있을게.” 주방 입구의 반찬 냉장고 앞은 구석진 곳이어서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 30분 이상,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인천 B감자탕집에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없다. 정식 휴일도 못 쉬는데 생리휴가가 통할 리도 없다. 손님과 사장의 눈을 벗어나 앉을 수 있는 곳은 화장실과 이 냉장고 앞뿐이다.

휴식 없는 노동. 일러스트레이션 유승하

수술하면 당분간 일을 할 수 없으니…

다음날은 주방 언니가 그 자리에 엎드렸다. 언니는 주방 문턱을 베고 방석을 덮고 누워 끙끙 앓았다. 주방 언니 자궁에는 혹이 있다. 수술을 해 자궁을 들어내야 한단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당분간 식당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방 언니의 생리통은 극심했다. 생리 기간에는 하루에 진통제 한 통을 다 먹었다. 따뜻한 바닥에 10분만 배를 깔고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그는 바랐다. 하지만 그는 지난 석 달을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버텼다. 방석 하나를 덮어주었다.

9월18일 금요일, 점심을 먹으려고 수저를 드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무거운 뚝배기를 들고 오전 내내 뛰어다녔더니 팔다리의 힘이 다 빠졌다. 주방 언니를 쳐다보는데 언니도 손을 떨고 있었다. 주방 앞 준비대에 서서 밥을 먹는 참이었다. 어이가 없으니 서로 웃음이 나왔다. 식당일을 한 기간 중 이날이 가장 바빴다.

애초에 바쁘기로 예약이 된 날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산악회 20명, 친목회 14명이 예약을 했다. 오전에 수영장 회원 20명 예약이 추가됐다. 모두 저녁 7~8시였다. 가뜩이나 손님이 많은 편이라는 금요일 저녁, 혼자 얼마나 뛰어다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침 교대 시간부터 사람이 많았다. 점심시간에는 밀려드는 손님에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뼈해장국을 나르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오고 한 팀은 나가면서 “여기 계산이오!”를 외쳤다. 뜨거운 뚝배기를 아슬아슬하게 내려놓고는 새로 온 손님들에게 금방 간다고 외치고 정문 쪽에 있는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해줘야 했다.

손님 54 대 직원 1의 전쟁터

이렇게 넓은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주말 식사 시간대까지 홀서빙을 단 1명만 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은 이날도 일할 사람을 더 구해주지 않았다. 오후 5시께, 사장이 홀로 나타났다. 그러고는 주방과 홀 사이에 서서 끝도 없이 잔소리를 했다. “밥 볶을 때 성의 있게 해라” “저기 18번 주문 받아라” “음식 먼저 갖다드려라”….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시켰다. ‘니가 해!’라는 말이 목구멍 아래서 부글거렸다. 산악회 20명, 수영장 회원 20명, 친목회 14명은 모두 저녁 7시30분 언저리에 몰려왔다. 가게는 전쟁터였다. 나는 전쟁터 한가운데 서서 이대로 전사할 것만 같았다. 그날 밤엔 골반이 빠지는 듯 아팠다.

주방 언니는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가 벌써 4년째다. 그 사이 그는 완전히 사장의 노예가 됐다. 사장은 그에게 식당 뒤쪽에 배추와 오리를 키우게 했다. 주방 언니는 매일 오리장 청소를 하고 오리 목욕을 시켰다. 오리를 키우기 전에는 도사견 5마리를 키웠단다. 개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추가 업무지만 돈을 주진 않는다.

사장의 횡포에도 주방 언니가 묵묵히 일하는 이유가 있다. 주방 언니의 남편은 직장이 불안정하다. 의자 공장을 하다 망한 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언니가 이 감자탕집에서 벌어오는 돈은 귀하다. 집도 5분 거리여서 하굣길에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가게에 들른다. 언니는 이때 아들에게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어떤 날은 감자를 볶아놨다가 건네며 저녁 반찬으로 먹으라고 한다. 3개월이 아니라 더 오랫동안 휴일 없이 일을 시켜도 계속 다닐 수밖에 없다. 이왕 익숙해진 일이니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도 생각한다.

A갈빗집 팀장님도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식당 아줌마’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는 자영업자가 급증한 시기이기도 하다. 제조공장들이 쓰러지고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셈이다.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은 고스란히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최근 자영업의 몰락은 식당 아줌마의 위기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들은 가장 먼저 직원 수를 줄였고 식당 아줌마들은 점점 더 혹사당한다. 식당에 배달된 인천 지역 신문을 보는데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인천 지역에서 중·장년층 여성의 취업 건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그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3년새 2만4천 명이 늘어 20만6천 명의 중·장년층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 하늘 아래만도 비정규직 아줌마가 이렇게나 많다.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 5일째 되는 날, 난 사장에게 “사흘 뒤인 9월23일에 쉬겠다”고 말했다. 교대 시간이라 주·야간 언니들이 함께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사장은 이유를 물었다. 애초 취업할 때 한 달에 두 번은 쉬기로 했는데 사장은 그걸 아예 잊은 듯했다(근로기준법상에는 일주일에 1회 이상 유급 휴일을 주도록 돼 있다). 개인적으로 일이 있다고 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쉬라고 했다. 그러고는 주방 언니에게 나 대신 일할 1일 파출부를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직 미숙하니까 파출부로 대체할 수 있는 거지, 우린 못 쉰다”고 했다.

“하루 쉬겠다”에 화들짝 놀라는 언니들

얼마 뒤 감자탕집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장은 호통을 쳤다. “놀게 해줬더니 마음이 변해서 온 거 아냐! 그만둘 거면 당장 나가!” 축축한 앞치마를 벗는데 눈물이 났다. 주방 언니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일도 생리통을 참고 진통제를 한 통씩 먹어가며 일을 할 것이다. 가게 문을 나섰다. 자동문이 어김없이 <클레멘타인>을 흐느꼈다.

노동을 메뉴판 음식으로 환산하면

8시간 노동=꽃등심 1인분

A갈빗집의 ‘아줌마’들은 하루 12시간 일한다. 한 달에 나흘만 쉰다. 월 312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월급은 정액으로 140만원을 받는다. 하루에 5만3844원, 1시간에 4487원, 1분에 74원 꼴이다. 그러나 20여 가지 메뉴를 갖춘 이 식당에서 노동의 가치는 밥의 가격보다 초라하다.

오전 10시에 출근한 ‘아줌마’는 오전 11시 무렵, 팔이 후들거릴 정도의 고된 청소를 마친다. 그러나 그가 주문해 먹을 밥이 식당 메뉴판에는 없다. 가장 값싼 선지해장국조차 5천원이다. 청소가 끝나는 오전 11시까지 아줌마가 노동한 대가는 4500원이 못 된다. 맛있는 간장 게장은 1만2천원이다. 이걸 먹으려면 2시간40분 동안 일해야 한다. 점심 식사 손님이 한창 붐벼서 테이블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12시40분 무렵까지다.

그래도 명색이 갈빗집이니 고기를 먹겠다면, 더 일해야 한다. 1만8천원짜리 소갈비 1인분을 먹으려면 오후 2시, 3만5천원짜리 한우꽃등심을 먹으려면 오후 6시까지 일해야 한다. 1천원짜리 공깃밥과 3천원짜리 소주를 추가한다면, 1시간 더 일해야 한다.

그러나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그렇다. 모든 고기는 최소 2인분을 주문해야 한다. 하루 종일 일해 5만3천원을 버는 ‘아줌마’는 밤 10시 퇴근 때까지 한우꽃등심 2인분(7만원)을 호기롭게 주문할 능력이 없다. ‘아줌마’와 그 식구까지 모두 4명이 꽃등심과 공깃밥을 1인분씩 먹으려면, 생리통까지 참아가며 사흘을 꼬박 일해야 한다. 아마도 ‘아줌마’는 그렇게 일한 돈으로 꽃등심을 사먹지 않을 것이다.

노동의 가치, 밥의 가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식당 구직과 시급

두 곳 다 “내일 나올 수 있느냐”

구직 과정은 단순했다. 8월 말,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요즘은 오프라인 생활정보지도 인터넷에 구인 정보를 올린다. 구인 사이트를 방문하면 전국의 식당 구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지역은 집에서 30분 거리인 강서구로 정했다. 생계를 위해서는 풀타임 직원이 돼야 했다. 구인 정보를 보고 전화를 하면 다들 나이를 묻는다. ‘30살’이라고 하면 중국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A음식점’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홀서빙 직원을 구했다. 전화를 해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이냐고 물으니 그냥 한식이란다. 일이 가장 힘들다는 갈빗집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면접을 보러 갔다. 식당 앞에 도착해서 경악했다. ‘A음식점’은 ‘A갈빗집’이었다. 면접에서 사장은 내게 일해본 경험이 있는지, 결혼을 했는지, 내일부터 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임금은 한 달에 나흘 쉬고 140만원이다. 고용보험을 들면 여기서 보험금을 뗀다. 사장도 같은 액수만큼 내야 한다. 결국 둘 다 꺼린다. 140만원을 한 달 근무일인 26일, 하루 12시간으로 나누면 시급이 4487원이다. 12시간 중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을 넘겨 일하는 4시간엔 1.5배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시급이 약 3846원으로 최저임금인 4천원에 못 미친다. 다만 A갈빗집에선 종종 “들어가서 1시간 자라”고 했으니 그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뺀다면 추가 노동은 3시간, 시급은 약 4308원이다. 조제희 노무사는 “노동자가 외출을 할 수도 있는, 재량껏 쓸 수 있는 시간이라야 휴게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취직한 인천의 B감자탕집은 더 열악했다. 한 달에 두 번 쉬고 120만원이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한다. 한 달 28일, 하루 12시간으로 계산하면 시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3571원이다. 시간외수당까지 고려하면 겨우 3천원이 넘는다(3061원). 감자탕집에서는 직원들이 3개월째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었는데, 휴일수당도 따로 지급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은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 임금의 1.5배 이상의 가산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점까지 감안해 계산하면 실제 시급은 더 적어지는 셈이다.

감자탕집은 면접도 사장 대신 ‘주방 언니’가 봤다. 그가 내게 확인한 것은 “내일 나올 수 있느냐”는 한 가지뿐이었다. 사람이 아주 급한 집이었다. 몇 달째, 일하러 온 사람마다 일주일을 못 넘겼다. 면접 당시 홀서빙은 용역회사를 통해 온 1일 파출부 아줌마가 담당했다. 150평 식당에 홀서빙이 1명뿐이다.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쉬는데 120만원밖에 안 주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별수 없다. 당장 일할 곳이 필요하다면 견뎌야 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임지선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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