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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화]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거두라

‘제6회 인터뷰 특강-화’의 둘쨋주 강연, 금태섭 변호사가 본 ‘분노의 법, 사형제’
등록 2009-04-02 14:10 수정 2020-05-03 04:25

때로는 100줄의 텍스트보다 한 컷의 이미지가 주는 효과가 더 크다. 금태섭 변호사는 사형 집행 현장이 담긴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좌중은 짧은 탄식과 침묵을 반복해가면서 사형제가 얼마나 극단적이고 강렬한 처벌인지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극단의 형벌, 가장 강한 충격을 주는 형벌”이라고 사형제의 의미를 되짚으면서 자신은 ‘사형 폐지론자’임을 미리 밝혔다.

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김재규 처형 사진’의 충격

금태섭: 1983년인가 84년에 신문을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신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사형 직후 사진이 박혀 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사형이 집행됐는데도 당시 사회에는 “김재규가 살아 있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뜬금없는 시기에 그의 처형 장면이 공개됐다. ‘대통령을 죽이면 이렇게 된다’고 각인시키려는 듯도 했던 그 처참한 사진은 아직도 기억날 만큼 생생하다.

한국의 사형제도는 형법 제66조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1조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매년 20명꼴로 한 번에 5~7명씩 사형 집행이 이뤄졌지만, 지난 10년 동안은 사형제 존폐 논란이 거세지면서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사형이 집행되던 시절, 선배 검사들의 말로는 사형 집행일엔 귀신이 따라올까봐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사형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늘 ‘사형존치론’이 우세하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로 범죄 억제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형제도라는 극단의 형벌이 존재함으로써 범죄행위의 자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비록 학문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둘째로는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힘든 극악한 범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범죄들은 사형제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될 만큼 대중을 불안하게 만든다. 80년대 후반에 많았던 가정파괴범이나 2000년대 와서 발생한 아동살해범, 연쇄살해범 등을 목도한 직후의 여론이 특히 그러했다.

얼마 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유영철을 지칭하면서 “21명을 살해한 살인범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을 했다. 그건 틀렸다. 유영철은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기소됐다. 혐의가 있다고 봤던 한 명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이 났다. ‘20명이나 21명이나’라고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사형존치론을 반박하는 주장은 이러한 범죄자들을 사형에 처하자는 주장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갑제씨가 쓴 를 보면 오휘웅씨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모호한 증거들의 조합으로 사형당했다. 이 책은 오판의 가능성에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한다. 둘째로는 사형선고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범죄를 계량화해 사형수와 사형수 아닌 자들을 구분짓는 균형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사형제는 감형과 같은 예외적 조치가 혀용되지 않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 어렵다.

다시 지난 1월의 강호순 사건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보수 신문은 ‘피의자만 인권이 있고 피해자는 인권이 없냐’는 발상으로 강력범의 얼굴을 일제히 공개했다. 인권이라는 고차원적 담론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 ‘용단’에는 문제가 있다. 법에는 원칙이 꼭 필요한데, 이 발상은 대중의 알 권리를 죄형법정주의나 무죄추정의 원칙보다 우선시하고 또 무너뜨렸다. 이번 인터뷰 특강의 주제가 ‘화’일 정도로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법조차도, 특히 사형제도에 관한 법까지도 원칙 없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와 사회가 모두 신중하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사형제를 생각해주면 좋겠다.

오판 가능성 배제한 얼굴 공개

오지혜: 영화 이 한국에서 상영될 당시 카피 문구가 ‘죽을 놈이 죽는데도 눈물이 난다’였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대안도 있는가.

금태섭: 감형 없는 무기징역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청중1: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다. 오판을 한 판사는 처벌받지 않나.

금태섭: 처벌받지 않는다. 미국에서 이런 경우로 소송까지 간 판례가 있지만, 판검사의 신중하고도 용기 있는 판단을 존중하고 위하기에 처벌하지는 않았다.

청중2: 질문이 많다. 첫째, 만약 사형제가 폐지된다면 범죄 억지력은 어디에서 구하나. 둘째, 피해자 유족에 대한 감정적 해결은 어떻게 처리돼야 하는가. 셋째, 감형 없는 무기징역의 경우 상당한 비용이 들 텐데 왜 내 세금으로 그들을 먹여살려야 하나. 넷째, 범죄자 얼굴 공개는 강호순 정도의 죄질이라면 ‘사실상 유죄’니 가능하지 않나. 다섯째, 15년의 공소시효는 너무 짧다. 개선해야 하지 않나.

금태섭: 첫째, 벌의 양형으로 억지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흉악범들의 경우 사형제를 통해 범죄 억지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 피해자 유족들의 감정은 사회에서 추스르고 보살펴줘야 한다. 극단적인 형벌을 통해서만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셋째, 세금이 아깝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돈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건 무모하다. 사형이 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도 있다. 넷째, 어떤 이가 ‘사실상’은 유죄일지 몰라도, 만약의 경우 무혐의가 밝혀진다면 그는 ‘얼굴이 알려진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흉악범이라고 형량이 내려지기도 전에 죄인으로 매도해버릴 수는 없다. 공소시효의 경우, 수사 환경이 달라졌으므로 기간을 늘리는 데 동의한다. 특히 흉악범죄의 공소시효는 꼭 길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이현정 17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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