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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 “원점 재검토? 배신감 느낀다”

등록 2008-07-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최초의 병역거부자 변호부터 8년간 대체복무제 준비해온 민주노동당 이정희 국회의원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 ⑫]

“대체복무제 오~래 끄네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의 말에는 실망감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아니 실망을 넘어서 그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원이기 이전에 이정희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변호인단의 핵심이었다. 2001년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최초의 병역거부자 오태양씨를 변호했고, 2004년 병역법 위헌소송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문건도 작성했다. 어느새 8년이 흘렀다. “오~래”란 말의 깊이가 더하는 이유다. 그는 2006년엔 국방부가 만든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연구위원회는 2005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오자 국방부가 만든 민관 공동기구였다.

원점 재검토 소식을 듣고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배신감을 느꼈다. 국방부가 다시 연구용역 운운하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6년 대체복무제 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이미 끝낸 이야기다. 당시에도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국내외의 압력이 높아지자 국방부가 상황을 모면하려고 연구위원회를 운영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해 10월에 유엔에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연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머잖아 결론을 내린다”고 답했지만 시간만 끌었다. 연구위원회가 지지부진하니까 위원들이 12월에 끝내자고 요구했지만 국방부 소속 위원이 활동 기한을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10월엔 정부가 위원들도 모르게 국제사회에 시한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국제사회에 내놓는 공식 답변이 다르고 국내 운영이 다르고, 면피용으로 운영하다 결국엔 최종 보고서도 내지 못하고 끝냈다. 당시에도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였지 연구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다.

국방부는 또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연구위원회 활동 중 국방부 여론조사를 통해 39.3%의 시민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찬성자 중에 46.2%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시민적 권리라는 것이다. 단순히 과반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 인권 기준에 맞춘다는 의미가 크고, 사회복무제 도입의 틀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방안이 마련된 상태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정책의 구체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국제사회에 허위 보고하는 과오가 있었지만, 지난해 9월에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한다는 발표가 나와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 뒤로 1년 사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론이 악화되거나 병역거부자가 갑자기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원점 재검토라니 말이 안 된다.

재검토 보도가 나온 이후에 국방부에 질의를 했다고 들었다.

역시나 연구용역 재발주를 해야 한다면서 절차적인 문제라고 대답한다. 사실은 원점 재검토 얘기가 솔직한 것인지 모른다. 중요한 국가정책에 대해 국방부가 공식 입장은 내지 않고 뒤로는 재검토 얘기를 흘린다. 사실상 원점 재검토로 돌아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기다리며 재판을 연기해온 젊은이들의 인생만 낭비한 셈이다. 책임 있는 정부기관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한 기간에 국제인권 기준에 어긋나는 재검토 얘기를 흘리는 국방부의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인권과가 있는 외교통상부와 법무부는 도대체 왜 국방부를 제어하지 않는가.

만약에 국방부가 정책을 원점으로 돌린다면?

다시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수밖에. 하지만 국방부도 알아야 한다. 입법부뿐만이 아니라 사법부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병역거부자에게 재징집을 피할 맞춤 형량을 주고, 보석을 허용하고, 구금도 안 하고. 지금 다시 고발하고 기소하는 식으로 간다면 사법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나올지도 모른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비록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입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지 않았나. 국방부가 시간을 끈다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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