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을 다물 수 없었어. 경외감이란 그런 것일까. 너희를 이끄는 힘이 무엇일까 한참 생각하다가, 그것이 사람일 수는 없을 거라 고개 젓다가, 너희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알 것 같았지. 놀랍고 부드러운 너희의 비행이, 굉장하고 딱딱한 우리의 비행과 충돌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2024년 겨울 군산.
2024년 12월은, 충격으로 열리고 닫혔다. 12·3 계엄령은 역사책에서나 보게 될 줄 알았던 쿠데타의 망령을 눈앞에 내밀었다. 국회에서 빠르게 해제됐지만, 지속되는 내란에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순 엉터리 계엄령인 줄 알았더니, 치밀하게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하마터면 성공할 뻔한’ 쿠데타였다. 가슴을 쓸어내릴 수도 없던 그달의 끄트머리, 179명이 목숨을 잃는 예견치 못한 참사가 벌어졌다. 뉴스를 듣는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불길한 예감이 이렇게 드러나는가’ 싶었던 사람이 나뿐일까. 계엄 수괴들로부터 사회교란 임무를 받고 사라졌다던 특수부대원들이 자꾸 떠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했으니 이 또한 ‘계엄 트라우마’의 한 증상이었으리라.
전남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12·29 제주항공 참사는 착륙 중 엔진으로 빨려 들어간 새떼 때문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모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안타까운 ‘만약에’가 이어졌다. 만약에 관제사의 경고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공항 인근에 출몰하는 새떼를 더 꼼꼼하게 쫓아냈더라면, 착륙유도시설 ‘로컬라이저’를 콘크리트 아닌 흙으로 만든 둔덕 위에 세웠더라면, 애당초 철새 도래지인 무안에 공항을 짓지 않았더라면.
시간을 되감아 죽은 이들을 살려내지 못하는 한, 수많은 ‘만약에’는 부질없는 바람이자 후회일 뿐이다. 최악의 ‘만약에’는 ‘이런 일을 겪고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이 아닐까. 그러므로 ‘만약에’를 ‘이제는’으로 고쳐 쓰는 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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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더라도 사람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항공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로컬라이저를 안전규정에 맞게 설치하고, 진실 규명의 열쇠가 될 수 있었던 ‘최후의 4분’이 더는 사라지지 않도록 모든 항공기에 보조전력장치를 추가하는 등의 노력은 비용이 들겠지만 손쉬운 일이다.
사람 노력으로는 답을 찾기 힘든 일도 있다. 말귀 못 알아먹는 새떼를 어찌할 것인가. 서해안은 오랜 세월 새들의 보금자리이자 이동 경로였다. 사람이 날기 전부터 새들은 그 하늘을 날아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았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건 발명의 결과지만, 새들에겐 생존과 본능의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시속 60㎞로 나는 가창오리가 370㎞로 나는 비행기와 부딪힐 때 4t 넘는 충격이 발생한다. 먹이와 잠자리를 찾아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창오리떼는 적으면 수천 마리, 많으면 수십만 마리에 달한다. 2024년 전국 14개 공항에서 발생한 (주목할) 조류충돌사고는 130여 건이었다. 집계되지 않은 작은 충돌은 헤아릴 수도 없다.
어찌할 것인가. 새들의 본능과 이동습성에 관한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어는 아직 안갯속이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확신한다. “새들의 이동에 분명 소통의 언어가 있다”고. 바꿔 말해보자. 새 말귀 못 알아먹는 사람떼를 어찌할 것인가. 대충 무시와 일방통행은 답이 아님을,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도 새를 알아야 함을, 이 참사가 아프게 증언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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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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