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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배신] “배신도 과학입니다”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옥시토신은 배신 촉진하고 배신은 지능발달 도와… 정재승 교수가 권하는 ‘배신’

▣ 글 김민 15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5회 인터뷰 특강-배신 ④

먼저 문제 하나. 다음 중 옳은 것은? ① 정재승은 과학자다. ② 정재승은 인문학자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글쎄…. 강연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① ②번 둘 다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재승 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인터뷰 특강에 나섰다. 정 교수는 과학자의 시각으로 지난해 특강 주제인 ‘자존심’을 절묘하게 해석한 전례가 있다. ‘배신’. 과학과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 주제지만, 적잖이 기대가 되는 것은 강연자가 ‘정재승’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혜(이하 오): 나는 아무래도 이과 쪽은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에 가장 자신없는 과목이 수학·과학이었다.

정재승(이하 정): 우리 모두가 똑같이 잠재력 있는 뇌를 가졌는데, 누군가로부터 이과 타입 혹은 문과 타입으로 분류되면서 한쪽 뇌만 사용하게 되는 거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슨 타입이다’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 과학과 배신은 좀 안 어울리는데.

정: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배신에 대해 연구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시종일관 서서 강연했다. 파워포인트로 중요한 내용을 짚어주고 청중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강연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정말 ‘교수’스러웠다.

배신을 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약속 파기, 계약 불이행, 명령 불복종, 무임 승차, 침묵의 카르텔, 폭로 등등 배신 행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배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배신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란 사실이다.

배신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남을 속이는 행동이다. 재밌는 것은 우리 뇌에 이런 행동을 촉진하는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있다. 여성이 임신을 할 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 호르몬 레벨이 높아지면 사람들 간의 신뢰가 실제로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대로 옥시토신 레벨이 낮아지면 배신을 더 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배신의 기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지능은 사람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과거사에 대한 기억력, 손해와 이득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 등을 키우며 발전돼왔다. 한번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또 배신을 당하지 않도록 배신한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한다. 동시에 배신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저장해 어떤 사람이 배신을 할 만한 사람인지를 행동이나 제스처로 알아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배신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지능 발달에 도움을 줬다.

세상의 모든 배신은 나쁜가? 분명히 존중받아야 할 배신도 있다. 배신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득이 배신한 자에게 돌아가는가, 다른 집단에 돌아가는가, 아니면 공공의 이익이 되는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 중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배신은 ‘아름다운 배신’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배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동물들끼리도 서로 배신을 하지만, 공공을 위한 배신은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발견된다. 왜 그런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내진 못했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배신임은 확실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배신, 자주 합시다!(박수)

같은 세상이 올 것 같다

청중1: 강연을 들던 중 영화 가 떠올랐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물학적 계급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런 세상이 정말 가능할까?

정: 그런 세상이 올 것 같다. 비극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기술이 나오기 전부터 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시대정신이 마련돼야 한다.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는 빠른데, 적절한 법·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못 따라가니까 부작용이 생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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