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과거로 돌아간다면 좀 더 전술적으로 할 것”
창간 14돌 기념 ‘제5회 인터뷰 특강-배신’이 지난 3월24일부터 서울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배신’이라는 도발적 주제의 특강에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이는 김용철(50)변호사. 삼성가 비리 폭로의 중심에 선 그를 보기 위해 500여 관중과 취재진이 몰렸고, 2년 만에 사회자로 돌아온 배우 오지혜씨는 강연 시작 전 “방송 카메라는 나가달라”는 요구를 해야했다. 15기 독자편집위원회의 이미지·김민씨가 번갈아가며 총 8차례의 인터뷰 특강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첫회는 김성환 기자도 함께 출동했다. 편집자
▣ 글 김성환 기자 한겨레 24시팀 hwany@hani.co.kr
▣ 이미지 15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5회 인터뷰 특강-배신 ①
까르르 웃음소리. 뜨거운 박수. 꽃다발과 사인 공세. 무대에 선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고해성사’를 한 내부고발자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그 어색한 조합이 3월24일 ‘ 창간 14돌 기념 인터뷰 특강’에서는 가능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 등과 ‘맞장’ 중인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김용철(50) 변호사가 풀어놓은 ‘배신자의 유쾌한 고백’ 덕분이었다.
“나는 배신의 DNA를 가졌다”
저녁 7시. 후다닥 저녁을 챙겨먹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취약한’ 시간대인데도 서울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강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뜨거운 감자’ 김 변호사를 보러 온 청중 500여 명의 구성도 다양했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부터 30대 직장인, 발랄한 새내기 여대생까지. 딱딱한 책상에 줄지어 앉아 강연 안내 책자를 뒤적거리며 강연을 기다리고 있는 청중의 모습에 초대형 브리핑실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뒤, 2년 만에 인터뷰 특강에 모습을 드러낸 ‘돌아온 사회자 언니’ 배우 오지혜씨가 마이크를 잡고 김 변호사를 소개했다.
김 변호사(이하 김): 삼성 쪽에 제가 먼저 전화를 했어요. 변호사 모집 광고도 안 냈는데.
그는 ‘인생 고백’으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검사로 지내며 ‘순응’을 강요하는 조직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아들 대학 등록금도 벌어야 했기에 삼성에 제 발로 찾아들어 갔다는 김 변호사. 궁지에 몰린 피고인을 상대로 ‘장사’해야 하는 변호사 노릇도 하기 싫었다고 한다. 삼성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 입사한 뒤 노사 문제를 담당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검사 때도 공안검사 시키면 사표 낸다고 버텼는데. 싫다고 하자 회사에서 법무팀장을 하라고 하기에, (피하고 싶었던 변호사 업무이기 때문에)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고 일을 시작했죠.
업무 중에 불법을 저지르면서 그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괴로워하는 그에게 한번은 아들이 편지를 썼다. “회사가 아버지 맘에 들지 않는 일 시키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직장이 맘에 들어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은 둘째가 “아빠가 가장 아빠다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격려한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배신의 DNA’를 가졌다고 말했다. 조직 분위기도 못 맞추고 심지어 멍청하기까지 하다며 ‘자학 개그’를 하기도 했다. 검찰에서도 부장검사 승진을 앞두고 사표를 던졌고, 삼성에서도 계열사 부사장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마다하고 퇴직한 유일한 사례라는 것이다.
김: 제 생각에는 사장단이 되면 진짜 공범이 되는 거 같아서 안 한 건데….
김 변호사의 ‘부실한’ 변명에 사회자의 비수 같은 질문이 꽂혔다.
삼성 특검이 아니라 ‘이씨 일가 특검’
오지혜: ‘저도 나쁜 놈입니다’ 하시는데, 그 안에서 못된 짓 하고 공범이신데, 이제는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우리 사회의 성숙을 걱정하셨나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김 변호사를 보며 청중은 한바탕 웃음바다에 빠졌다. 이에 김 변호사는 삼성 입사 초반에는 나름대로 발버둥쳐봤노라고 했다. “하지만 팀장이 되니까 저절로 그런 말 안 하게 되던데요.” 그의 항변도 솔직했다. 그리고 퇴사 뒤 몇년이 지나 양심선언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 “퇴사 이후 고개 숙이고 살면 되는데, 그쪽에서 직장도 못 갖게 하기에 참을 수 없었다.”
김: 제 배신은 강요된 측면이 강하고 개인적 측면도 강해요. 복수심도 작용하죠. 그래도 해코지하는 것보다 공익적 방향으로 승화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그는 앞으로 10년 안에 자신과 같은 내부자가 문제를 제기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폭로에 이어 또 다른 비리를 밝혀주는 ‘제2의 김용철’의 출현을 기대했다고 한다.
김: 삼성 임원이 2천여 명 있는데 (제가 고백하면) 한두 명은 (양심선언하러) 나올 줄 알았어요. 차명계좌 다 있으니 그중 한두 명은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안 나와요. 제가 틀린 거죠. 배신은 아니더라도 소극적으로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적으로 친분있는 이들의 비리 의혹까지 폭로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시련들이었다. 집까지 미행이 붙고, 친척 집에도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그럴수록 더 빨리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 그래도 이젠 언론과 시민들이 있어 ‘위해’는 안 당할 것 같다고 한다.
김: 특검 결과는 기대 안 해요. 이제 시작이죠.
그는 삼성 문제가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김: 저는 시스템적인 걸 지적하는 거예요. (이 회장 일가의) 영향력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비정상·정상이 판단 안 되는 게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삼성에서 일하고픈 사람 많을 줄로 아는데, 가세요. 아비가 범죄자라 해서 자식이 부끄러울 필요는 없어요. 삼성 문제도 상사가 나쁜 짓 한 것인데, 이게 이름이 잘못됐죠. 삼성 특검이 아니고 ‘이씨 일가 특검’이니까.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폭로가 삼성이라는 기업의 문제가 아닌 이건희 회장 일가, 그리고 일부 측근의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씨 일가의 비리라지만 사실 우리 수준의 반영이다. 그러니 여러분부터 힘들더라도 유혹에 버텨주시고, 잘못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주시고 그럼 된다.”
다음은 이날 가장 힘찬 박수와 큰 웃음을 몰고 온 김 변호사의 발언.
김: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좀더 치밀하게 전술적으로 (삼성 문제에) 접근하겠어요. 진짜로.
이제 더 이상의 배신은 없다
김: (배신 전후의 꿈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삼성에 있을 때는 꿈이 없었어요. 지금의 꿈은… 불법적 권력 체계는 궤멸돼야 하지 않나요.
강연 내내 진지한 웃음을 준 김 변호사. 서울 제기동 성당 기자회견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불법적 권력’을 향한 ‘무한도전’을 떠나는 가벼운 발걸음 같다.
김: 요즘 만나는 분들을 보면 너무 좋다. 보수 한 푼 없이 이렇게 좋은 일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남은 평생 할 일인 것 같다. 이제 더 이상의 배신은 없다.
강연 직후 한 남성이 꽃다발을 건네자 “남자에게 꽃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겸연쩍게 웃던 김 변호사는 우려했던 계란 투척도 인신공격도 당하지 않았다. 사회자 오씨의 말마따나 ‘꽃다발 같은 질문’과 따뜻한 응원이 쏟아진 두 시간. 김용철 변호사의 배신은 그렇게 훈훈한 환대를 받았다.
강연 중 그가 가장 많이 읊조린 말은 ‘나는 참 멍청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의인도 영웅도 투사도 아니라는 한 ‘멍청이’ 앞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 강연 후 ‘팬’들의 마음은 참 무겁고도 먹먹해졌다.
사족. 무한도전을 떠나는 그에게 부탁 하나 할 걸 그랬다. 김 변호사여, 제발 천천히 말씀하시면 안 될깝쇼. 속사포 같은 말을 받아 적느라 노트북 자판에서 춤춰야 하는 손에서 불이 날 지경이랍니다. 긴 싸움이라 그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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