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터뷰 특강-자존심] FTA가 가져올 악몽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태인과 함께한 ‘FTA와 자존심’- 자존심을 지키려면 ‘Free to All’인 무역협정 맺기를

제4회 인터뷰 특강- 자존심 ③

▣ 글 손은영 13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9평 삭막한 방에 봄기운을 들이기 위해 수선화 화분을 하나 샀다. 이리저리 견주다 막 꽃대가 올라오는 아이로 골랐는데, 벌써부터 물씬 향기를 내뿜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후배를 만났다. 지난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는 참 다이내믹(?)했노라고 이번엔 꼭 같이 가자고 말했다. “오냐, 그러마” 하고 돌아섰지만, 결국 약속은 지키지도 못하고 꽃 피우는 수선화와 조용한 주말을 보냈다.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맞이한 3월26일 월요일 인터뷰 특강. 바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강연이 시작됐다.

민영화, 자동차, 섬유의류… 빗나간 미래

서해성(이하 서): 정치계를 벗어나 ‘이상적 현실’로 돌아왔는데.

정태인(이하 정): 청와대 비서관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에서 백수로 돌아온 정도이고 지금도 비슷하게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리 큰 차이는 없다.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금단 증세는 없다.

서: 출세하지 못할 말씀만 한다. (웃음) ‘행담도 사건’으로 기소까지 됐으며, 그 때문에 몹시 힘들었다고 들었다. 지식인으로서는 굉장히 불명예스럽고 괴로웠을 것이다.

정: 1심은 이미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적절한 행동을 정당한 방법으로 했기 때문에 2심도 걱정하지 않는다.

서: FTA의 정확한 뜻은 ‘자유무역협정’이지만 그 뜻 그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정태인씨는 초식동물을 닮았다. 사슴 같지 않나. 본성은 초식동물인데 맹수로 살아야 하는 남자, 정태인씨의 강연을 들어보도록 하자.

박수로 시작된 정태인씨의 강연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로 포문을 열었다. 이제 막 반대 표명이 많아지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의 다국적기업 이익을 위해 한국의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한-미 FTA의 실질적 목적이며, 한국은 전례 없는 관대함으로 미국의 조건을 수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은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을 비롯해 공공사업 민영화, 자동차, 섬유의류 등 빗나간 미래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FTA의 F는 ‘Free’하지 않다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적으로 관세 없는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것을 반대할 필요가 있나 하고 반문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초점을 맞추는 것이 결코 관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농업, 투자로 이루어진 다국적 기업의 요구를 현실화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이다.
지적재산권 요구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인 ‘약값 적정화 방안’이다. 미국은 싸고 효능이 높은 카피 약품이 쉽게 나올 수 없는 제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신약 발명 뒤 20년 동안 유지되는 독점을 25년으로 늘리도록 한국에 요구했으며, 한국은 이 조건을 수용한 상태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다국적 기업을 위한 것이고, 당연히 약값에서의 빈부 격차를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음반, 서적 등의 저작권에도 다국적 기업의 요구가 짙게 깔려 있다. 현재 세계는 국제조약인 베른협약에 따라 저작권자 사후 50년 동안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미국이다. ‘미키마우스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2004년에 개정됐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2004년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소멸되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법이 개정된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민이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민간 보험이다. 지금도 미국 기업들이 보험상품을 팔고 있지만 FTA 체결 뒤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의 민간 보험은 어디까지나 부자를 위한 보험이다. 현재 미국에서 4700만 명이 보험 없이 살고 있다. 1년에 1천만원씩 하는데, 1년 병원 안 가면 1천만원을 버는 것 아니냐,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더 비싼 걸 들었으면 들었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 멕시코인이 손가락에 염증이 생겼는데 이것이 곯아들어가자 물에다 손가락을 넣고는 칼로 잘라버리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미국 민주당의 정책 기조는 공공보험의 도입이다. 클린턴도 이 정책을 내세웠고, 힐러리도 제1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보험 기업의 로비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민영화로 가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는 공공서비스, 또는 공공성이 있는 서비스의 민영화를 추구한다. 결국은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미국과의 FTA가 양극화를 해소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자동차 부문과 섬유의류, 반도체 등을 들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의 경우, 관세율은 현재 2.5%인데 관세 철폐 기간은 10년 정도다. 그러면 1년에 0.25% 떨어지는 건데 한 대당 5만원 수준이다. 이게 판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 정부는 이걸로 미국의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겠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현재 25% 정도로 관세가 높은 픽업트럭이나 스포츠레저(SUV) 차량은 한국에서 한 대도 생산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의 SUV가 많지 않냐고? 미국의 SUV와 한국의 SUV는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 기업은 대부분 현지 생산 위주라 오히려 수출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어떤 사형수도 자신은 괜찮다 생각한다

미국과의 FTA는 외교안보적으로도 대단히 위험한 체결이다. 미국이 FTA를 서두르는 것은 중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한쪽이 90, 한쪽이 85로 비슷할 때 10 정도의 세력을 가진 사람이 어느 쪽에 붙느냐는 중요한 일이지 않나. 한국은 이런 캐스팅보터의 위치를 포기하고 있다. 국민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바로 국가의 자존(自尊)을 찾는 길이 될 것이다.

광화문에서 진행되고 있던 FTA 반대집회에서의 비슷한 열기가 강의실 안에 가득 찼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청중1: FTA 체결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정:현재 국민은 두 가지 권리를 무시당하고 있다. 바로 알 권리와 의사를 표출할 권리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들은 사실이 우리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옆사람에게 이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

청중2: FTA 체결 반대 세력을 향해 ‘FTA는 세계적 대세’라는 말을 한다.

정: 미국식 시스템이 꼭 한국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며, 또 당연히 돌파구가 될 수 없다. 한국은 충분히 다른 발전 방법이 있음에도 미국형 이기적 제국주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FTA가 시대의 요구라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다. 호혜협력적인 교류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FTA’를 ‘Free to All’이 되게 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도 FTA의 한 형태다.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FTA 아닌가.

청중3: 재벌 기업 등도 FTA에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추진하는 것일까.

정: 아주 극소수 대기업, 고급 경제통상 관료, 더불어 보수 언론들에는 이득이다. 중소기업 등이 사업을 포기하게 되면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경쟁해서 기업을 인수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은 멕시코 관료들의 환상이기도 했다. 어떤 사형수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리에서 다시 보자”라는 사회자 서해성씨의 말을 마지막으로 강연은 정리됐다. 우리는 거리에서 또 얼마나 싸워야 민주주의적 자존심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 이제 막 꽃대가 솟아오르는 봄이지 않은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