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 노동조합에 ‘코 꿰인’ 서종성씨, 가압류 정국에 ‘추가 가압류’를 당한 사연
1999년 11월 어느 날, 성균관대학교 유림회관에서 펼쳐졌던 장관을 잊을 수 없다. 학습지회사 재능교육에 처음 교사노동조합을 설립한 사람들은 단 9명뿐이었다. 그 9명의 교사들이 전국에 흩어져있는 재능교육 교사들에게 노동조합 설립 사실과 함께 며칠 뒤 서울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유림회관에서 보고대회를 열기로 했으니 많이 참석해달라고 알렸다. 9명밖에 안 되는 조합원들은 정말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다. 사람 수가 얼마 안 되니 모두 노조간부요, 율동패요, 노래패였다. 율동패는 밤늦게까지 연습하다가 넘어져 무릎에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재능교육 노조 보고대회의 ‘기적’
드디어 보고대회가 열리는 날, 9명의 조합원들은 “오늘 몇명이나 모일까?” 초조해하면서 조합원들을 기다렸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성균관대학교 주변 도로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올라와 지하철 혜화역에서 삼삼오오 짝지어 내린 재능교육 교사들이 성균관대학교까지 이르는 길을 가득 메웠다. 그날 나에게는 그 행사에서 딱 25분 동안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임무가 주어졌는데 초조한 마음에 풀방구리처럼 들락거리던 내가 유림회관 입구를 지날 때마다, 입구에서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던 조합원이 말했다. “소장님, 100명 넘었어요.” “200명 넘었어요.” “500명 넘었어요.” 500명이 넘은 다음부터는 수를 헤아리지도 않았다. 9명이 설립한 노동조합에 단 며칠 만에 800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이런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서종성(42)씨는 그때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을 처음 설립한 9명 중 한 사람이다. 1997년에 처음 재능교육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오산 지역이라고 하지만 제부도 바로 앞 동네까지 버스 타고 다니면서 회원을 관리했거든요. 남양·서신·조암으로 아이들 만난다는 일념으로 돌아다녔습니다. 돈 몇푼 벌겠다는 생각이었으면 안 갔습니다. 시골 아이들에게도 우리 회사의 우수한 학습지를 전달한다는 사명감으로 다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노조 설립을 보도한 언론에도 나타나 있다. “학습지 교사들은 독립법인격으로 회사쪽과 계약을 맺는 독특한 근로관계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논란을 빚어왔다. 회사쪽과 도급계약을 맺어 관리예치금을 주고 회원을 인수, 독립적으로 사업을 해나가는 ‘소사장제’라는 것이 회사쪽의 주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출퇴근 시간, 징계, 업무의 지휘·감독 등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은 근로관계를 맺고 있다’며 ‘전국의 10만 학습지 교사들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했다.”(매일노동뉴스 11월9일치)
노동조합 전국 14개 지부에서 조합원이 가장 많았던 제7지부의 사무국장이던 서종성씨가 2기 집행부의 위원장을 맡았다.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회비(교육비) 인상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는 “회비 결정은 경영권의 일부”라고 주장했으며, 조합원들은 “회비가 인상되면 고객들이 외면할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학습지의 회비를 인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했다.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노동조합 지도부가 사퇴했다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임금협상과 맞물려 2001년 여름에 일주일 정도 파업했다.

같이 고생한 동지들이 남아있는데…
회사에서는 파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노동조합을 가장 열심히 따라줬던 조합원 340명에게 가압류를 준비했다. 회원 수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파업기간 동안 회비가 자동인출되지 않도록 휴회 처리를 한 것이 회사에 금전상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이유다.
“휴회 처리를 하지 않으면 수업은 하지 않고 회원들 통장에서 회비만 빠져나가 나중에 수습할 때 어려움이 많거든요. 교사들은 고객을 생각하면서 회사에 도움을 주겠다고 내린 결정이었는데, 회사는 ‘왜 니들 맘대로 우리 회원을 휴회 처리하느냐. 그만큼 회원이 줄었다’는 거죠. 조합원 340명에게 가압류할 계획을 세웠더군요. 노동조합을 가장 열심히 따라줬던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원에게 가압류하지 않는 조건으로 저를 포함한 노동조합 간부들 13명과 노동조합이 8억9천만원 가압류를 떠안았습니다.” 그 가압류 때문에 서종성씨는 2001년 9월부터 지금까지 회사에서 다달이 받는 수수료를 절반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재능교육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가압류 때문에 노동자들이 분신을 하는 이른바 ‘가압류 정국’이라고 불리는 마당에 회사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추가 가압류 조치를 한 것이다. 서종성 위원장의 뒤를 이은 3기 집행부가 단체교섭을 하면서 회사쪽에 가압류와 해고 노동자 문제 등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체협약을 오히려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것을 주장하면서 팽팽히 의견이 맞선 채 60여 차례나 교섭이 맴돌았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노동단체들과 연대해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이 담긴 스티커와 포스터를 전국 지하철역 등에 붙였는데, 회사가 그것으로 인한 영업손실과 포스터·스티커 제거에 따른 인건비 및 위자료 명목의 손해를 입었다고 노동조합과 간부 8명에게 각 3억원씩의 가압류 조치를 한 것이다.
“저와 같이 8억9천만원의 가압류를 당한 13명 간부 중에 현재까지 회사에 남은 사람이 모두 5명입니다. 그 중에 2명이 이번에 또 가압류를 당했습니다. 회사는 이렇게 나가면 아마 2년 안에 조합원들이 모두 탈퇴할 거라고 보는 것 같지만, 아직 우리 조합원들이 잘 버티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조직이 참 대단한 거죠.”
재능교육을 퇴사하고 다른 직장으로 가면 가압류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데 다른 직장을 구해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냐고 서씨에게 물어보았다.
“왜 안 해봤겠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내 사정 알고 ‘자리 만들어놓을 테니 오라’ 하고, 회사에서도 ‘이제 아이들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나이도 있는데 회사 관리직으로 들어와라’ 그런 얘기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누가 노동조합을 지키겠어요. 후배들이 추가로 가압류돼 있는 상태에서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나는 영원히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에 코 꿰인거예요. 하하! 이 고리를 절대 못 끊는 거죠. 같이 고생한 동지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 나만 살겠다고 갈 수는 없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맏아들 노릇, 맏사위 노릇, 애비 노릇, 남편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고 하는 것이 노동조합 활동인데 우리 노동조합 간부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는커녕 감옥 안 가면 다행이니. 차라리 감옥 가서 혼자 고통받으면 괜찮겠는데 가압류는 그보다 더한 인권유린이고 인간성 파괴, 가정 파괴 수단이에요. 범죄를 저질렀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일을 한 거라면, 만일 그런 거라면 저는 달게 받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별로 큰 것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작은 소망을 얻는 데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하면 억울하죠.”
“아이들 없었으면 못 견뎠을 것”
서종성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아이들이 희망 아니겠습니까? 아이들 만나는 동안은 다 잊어버리거든요. 아이들 없었으면 저는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오토바이 타고 들어가 세워놓으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우리 선생님 오셨다’고 집에 들어가 준비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데 춥겠다고 자동차 회사 다니는 아빠한테 ‘선생님 드리게 자동차 한대 갖고 오라’고 떼쓰는 아이들 보면서 사는 거지요. 그동안 언론이나 TV에서 회사의 노동조합 탄압이나 가압류 등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출연 요청이 와도 노조간부들은 회사에 누가 될까봐 나가지 않고 많이 자제했어요. 저는 솔직히 이 인터뷰도 부담스럽습니다. 교사가 회사를 사랑하는 것만큼 회사가 교사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학습지 교사들로 하여금 마음껏 아이들을 사랑하게 하라!
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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