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행정편의주의와 싸운 황정란씨… “왜 좋은 일 하러온 젊은 실무자들을 떠나게 하는가”
몇년 전 ‘생산적 복지’란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산’과 ‘복지’를 연결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형용모순이 아닐까?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고생하겠구나 싶었는데, 역시 그랬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2000년 10월 시행되면서 전국에 200여개의 ‘자활후견기관’이 세워졌다. 생활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모적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생산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자활후견기관이 일종의 ‘주민 일터’를 꾸리고 그 사업을 하나의 회사처럼 잘 경영해서 나중에는 그 일터 사람들이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똑같이 세팅된’ 200개 자활후견기관
문제는 그 대상자 대부분이 시장경쟁 체제에서 이미 도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지병이 있거나 근로의욕이 없거나 다른 불가피한 이유로 인력시장에서 도저히 ‘게임’이 안 돼 밀려나온 사람들을 모아, 치열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니 경영이 쉬울 리 없다. 다른 기업 몇배의 지원을 받아도 성공하면 기적일 텐데 복지에 대한 이해가 아직 ‘천박한 수준’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그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200여개 자활후견기관에 지원하는 금액과 인력 운용지침은 모두 똑같다. 불과 몇십명을 지원하는 기관이나 무려 몇백명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이나 실무자는 모두 6명이다. “똑같이 ‘세팅’(setting)했다”는 표현이 실감나는 행정편의주의다.
일률적인 재정과 인력 운용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온 보건복지부의 방침은 한수 위다. 사업성과를 평가해 점수를 많이 받은 기관에는 돈을 더 주고 낮은 점수를 받은 기관은 퇴출시킨다는 것이다. 그 평가에 반대하며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사무실에서 단식을 하다가 막 끝낸 ‘서대문 자활후견기관’ 실무자 황정란(38)씨를 만났다.
“보건복지부가 협상 테이블에서 했던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어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고 했다가 관리들이 바뀌면 다시 없던 일이 되고…. 평가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들이 확산되면서 의식 있는 학자, 전문가들이 평가단 참여를 거부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꾸려진 평가단원들에게 우리는 ‘자활후견기관이 무엇하는 곳인가’부터 설명해야 했어요. 준비한 자료들은 보지도 않고 한두 시간 간담회처럼 하고 가버린 곳도 많아요. 그 평가결과를 놓고 보건복지부가 다시 2차 실사 평가를 해서 인센티브도 주고 퇴출도 시키겠다는 거예요. 자활후견기관장들의 조직인 협회가 그 평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단식을 시작했지요. 협회가 우리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기로 해서 6일 만에 단식을 끝냈어요.”
이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나 나는 그 치열한 삶의 뿌리가 궁금하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굳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이유는 그 때문인데, 황씨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3 때, 학교 선생님이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황씨는 다른 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교장선생님 집으로 찾아갔다. 학생들에게 받은 서명용지를 내밀며 “월요일 애국조회 때 그 선생님이 학교에 보이면 중3 전체가 학교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너희들 뜻을 알았다. 노력해보마”고 하셨고, 그 선생님은 월요일에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추행 교사 축출에서 건국대 사건까지
같은 울타리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황정란 학생은 이미 몇몇 선생님들에게 ‘요주의’ 대상이었다. 또 일이 터졌다.
“모의고사가 끝난 날이었어요. 학생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에서 단체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여러 명이 가서 영화를 봤는데, 그게 문제가 됐어요. 교련 선생님과 장교 출신 교사들이 발벗고 나서더니 ‘주동자를 색출해야 한다’며 사건을 키웠어요. 단체할인 정보를 처음 알려준 학생과 돈 걷은 학생, 두명이 주동자로 몰려 중징계를 받게 됐어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아니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보호해주지 않는 것도 화났어요. 그땐 전교조가 없었거든요. 나는 극장에 가지 않았지만, 밤 12시가 다 될 때까지 아이들을 꿇어앉혀 놓고 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더라고요. 반장인 내가 선생님한테 가서 ‘지금 꼭 이래야 되느냐? 일단 집에 돌려보내고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되냐? 부모님들이 걱정한다. 돌려보내자’고 했더니 어린것이 반항한다고 주먹으로 때리려고 해서, 때리라고 했어요. 권위가 주는 상처를 짙게 받았던 첫 번째 경험이었을 거예요.”
어릴 적 황씨가 겪었던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대학교 2학년 때 직접 현장에서 겪었다는 ‘건국대 사태’ 못지않게 가슴에 짠하게 와닿는다. 아,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학생이었을까.
1985년, 대학에 갔을 때는 “같이 공부해보자”며 학생운동을 권유하러 온 선배가 내심 반가웠단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은 까맣게 모르고 계시다가 2학년 때 내가 건대 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처음 아셨어요.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다가 지난해 돌아가셨는데, 부모님 속을 많이 썩여드렸어요. 딸 때문에 불려가서 각서도 쓰고 시말서도 쓰셨을 아버지가 의정부교도소에서 나오는 저를 보고는 막 우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아빠의 눈물을 봤는데….”
다음 말은 잇지 못했다. 나는 짐짓 다른 볼일이라도 생긴 듯 딴청을 부렸고, 황씨는 슬쩍 휴지를 집어 콧등을 훔쳤다. 역시 공무원 출신인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거의 고문하듯 황씨에게 물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님은 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거의 포기하시고, 그냥 무난하게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셨을 거예요.” 어느덧 팔순을 훌쩍 넘기신 나의 아버지 역시 아들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 때문에 나는 잠시 마음이 아팠다.
황정란씨는 ‘서대문 자활후견기관’의 실무자가 된 뒤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어서 그 누구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이럴 때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옳은지, 나이 어린 실무자들이 인생을 다 겪은 나이든 분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집에 가서도 온통 사업단 일에 관한 걱정뿐이었다.
“그러한 고민들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무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도대체 가능하지 않은 일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절망감과 실무자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 때문에 젊은 일꾼들이 계속 떠나는 걸 보면서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실무자들의 대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기관장들 중에서도 노동운동·빈민운동 했던 사람들은 ‘우리들은 예전에 활동비 없이 일했다. 당신들도 지역활동가, 빈민운동가의 정체성을 갖고 일해야 된다’고 강조해요.”
“상황이 벌어지면 몸이 먼저 간다”
나는 평소 풀지 못한 문제의 해답을 얻고 싶은 심정으로 황씨에게 물었다. “80년대의 헌신성을 강조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당연한 듯 요구하는 선배들에게는 뭐라고 대꾸할 수 있을까요?” 황씨의 대답은 뜻밖에 쉬웠다.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더 많이 누리며 살고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에요.”
그동안 고생할 만큼 하고, 상처받을 만큼 받은 황씨가 계속 힘든 일에 뛰어드는 이유를 물었을 때 황씨는 수줍은 듯 웃으며 답했다. “상황이 벌어지면, 항상 몸이 먼저 앞에 가 있더라고요. 돌아서거나 구석에 피해 있는 것은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아버님, 당신은 훌륭한 딸을 두셨습니다. 편히 눈감으시기를 바랍니다.
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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