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주변 사람들 삶을 기록하는 김순천씨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진보생활문예지 (삶창)이 기획한 르포작가교실의 첫 강좌가 나에게 맡겨졌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무거운 주제 ‘르포문학이란 무엇인가 - 사실이 갖는 힘에 대해’로 내가 감히 강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기대한 이유는 아마 몇년 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경력과 에 연재하고 있는 바로 이 원고 때문일 것이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청계천 르포를 위해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그렇게 들어맞을 수도 있을까? 그 강의 하루 전날에는 딱 한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이틀 전에는 고속도로에서 밤새도록 운전을 했다. 시간이 없어 점심을 걸렀더니 저녁 무렵에는 기어이 몸살감기가 온몸을 덮쳤다. 한 걸음 떼기도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누가 이기나 보자’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나섰는데, 강의 장소를 잘못 아는 바람에 마포역에서 애오개역까지 걸어야 했다. 애초 자신 없는 주제를 덥석 맡아버린데다 30분이나 지각해버린 강사가 그날 강의를 제대로 했을 리 없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피곤함 속에서 되는 대로 주워섬기는 수밖에….
그 강좌를 진행하는 김순천(39)씨가 다음날 내게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강의 참 좋았습니다. 배제당하고 무시당한 말들이 그렇게 생생하고 재미있고 건강하게 되살아나다니요. 선생님의 말들은 오랜 세월 사람들이 서로서로 말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로하고 생성했던 ‘전설이나 민담’과 닮았습니다. 선생님이 전하시는 노동자들의 말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말은 ‘현대판 전설이나 민담’입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취급당하고 숨겨지고 가리워지고 잘라지는 말들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배제당한 말들을 전하는 ‘전령사’였습니다. 그 자리가 많이 힘든 곳이겠지요. 선생님 힘내시고 잘 견뎌주세요.”
자신의 부끄러운 강의에 대해 이렇게 정갈한 표현으로 극찬을 해준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 때문에 내가 김순천씨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기란 정말 겁나는 일이어서 나는 이 쓴 잔이 내 앞을 비켜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김순천씨가 얼마 전부터 청계천 주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삶을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쓴 잔을 더 이상 마다할 수 없었다. 더욱이 김순천씨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잡지 - 삶이 보이는 창’에 ‘사람, 사람들’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2년 넘게 연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 방면에서 이미 나보다 훨씬 선배였던 거다. 내 강의에 대한 칭찬들은 고스란히 김순천씨에게 돌려져야 할 몫이었던 거다.
청계천 르포 작업에는 교사, 시인, 연극인, 사진작가, 영상기술자, ‘삶창’ 상근자 등 10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사를 위해 사진을 찍던 날도 세운상가에서 ‘퀵서비스’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모두 다섯명이 찾아갔다. 청계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일까?
“청계천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지만, 그렇게 한번 지나가고 끝이었어요. 일시적으로 호기심을 가졌다가 일단 욕망이 소비되니까 관심이 없어진 거지요. 일간지, 월간지들마다 청계천 기사가 많았지만 내용의 깊이가 적었어요. 내용의 깊이란 정서의 깊이예요. 정서적으로 교감해야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게 진짜 소중한 삶이거든요. 청계천 복원사업은 단순히 하천을 복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복원이라고 생각해요. 근대화의 일환으로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많이 소외됐어요. 생계를 위해 아득바득 살면서 국가의 도움이 전혀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문화적으로 뭘 누린다든지 이런 것 전혀 없이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복원사업을 통해 배제당하는 거죠. 노점상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예요. 청계천이 다시 흐르듯 그분들의 삶, 따뜻한 정서, 문화가 흐를 수 있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청계천의 복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렇게 진행되지 않고 있거든요.”
2천원짜리 야마하 기타의 추억
사람들을 만나기는 쉬웠을까? 낯선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어떻게 다가서는지 궁금했다.
“우리들이 다 돌아다녔어요. 가게에 들어가 물건 살 듯 이야기해보면 잘 설명해주시는 분이 있어요. 그러면 ‘저희가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삶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마구 화를 내면서 거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응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한번 가서 안 되면 몇번씩 찾아가기도 해요. 열번 이상 만난 사람도 있어요. 광장시장에서 30년 넘게 사탕 파는 일을 해오신 할머니한테는 몇번씩 가서 사탕만 잔뜩 사오기도 했어요.”
김씨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옆에 있는 청동 메뚜기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이거 내가 고물 파는 분한테서 사온 거예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메뚜기 뒷다리 하나가 부러지고 없다. “이런 물건은 값이 얼마나 돼요?” “그냥 공짜로 가져가라는데 제가 2천원 드리고 왔어요. 한번은 ‘야마하’ 기타라고 좋은 거라고 그냥 가져가래요. 공짜는 싫다고 하니까 ‘그러면 1천원만 달라’고 해서 제가 2천원 드리고 가져왔어요. 와서 보니까 한국에서 만든 ‘야마하’예요. 얇은 한지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문짝을 주셔서 그 큰 것을 전철에 싣고 집에 온 적도 있어요. 요즘 우리 집에 가면 고물이 많아요.”
김순천씨의 청계천 르포 팀은,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아파트에 갈 곳이 없어 계속 살아야 하는 상인, 황학동 시장의 ‘나까마’라고 불리는 고물상 중개인, 동대문상가 큰 이불가게의 직원, 방산지하상가 작은 가게 종업원과 그의 애인, ‘밀리오레’ 상가 관계자 등을 만났고, 앞으로는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는 건설회사 간부 등 청계천 주변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방을 하는 아주머니가 계시거든요. 연세가 회갑이 지난 분이셔요. 굉장히 오래된 건물에 다방을 하나 얻어 하시다가 손님이 별로 없으니까 밑으로 내려와 노점상들처럼 장사를 하시거든요. 그분 말씀을 듣고 제가 많이 배워요. 먹고 자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내가 게슈타포들에게 쫓기는 ‘안네의 일기’처럼 살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딸이 사위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그곳에 찾아왔을 때는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하세요. 내가 ‘아줌마는 마음이 참 순수하다’고 하니까 톨스토이의 ‘사람을 보는 일곱 가지 기준’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 시각을 갖고 자기를 바라보지 말라고 야단맞았어요.”
노점상 철거현장의 바리케이드, 그 기분!
청계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여기에 내가 함부로 정리하는 것은 월권이다. 대신 김씨의 청계천 취재 이야기 중 한 토막만 더 소개한다.
“노점상 철거한다고 해서 새벽에 가봤거든요. 바리케이드를 쳤더라고요. 재료만 바뀌었을 뿐 옛날 우리가 바리케이드 앞에 섰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거예요. 황학동 사람들을 만나러 두 번째 찾아갔는데, 그 거리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날 새벽에 들이닥쳤던 거예요. 길이 다 파헤쳐지고, 아스콘이 다 뒤집혀지고, 가로수 다 뽑혀 있고….”
그 기분은 나도 안다. 아침나절까지 번듯하게 집이 들어서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곳에 찾아갔다가, 마치 융단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건물 잔해들만 수북이 쌓인 광경과 맞닥뜨렸을 때 등골을 훑고 지나가던 그 스산함이라니….
작은 전기난로를 가운데에 놓고 김순천씨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가사문학의 고향 담양 태생답게 김씨의 입에서는 송순의 면앙정가(傘仰亭歌), 정철의 성산별곡(星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이야기가 술술 나왔고, 83년에 대학에 들어가 95년에 졸업하기까지 겪었던 숱한 곡절도 들었다. 그 긴 세월의 사연을 김씨는 한마디 말로 마감했다. “인간성도 하나의 세계관입니다”. 그 인간성과 세계관으로 김순천씨는 오늘도 청계천 사람들을 찾아간다.
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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