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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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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현실… ‘쓸모’가 간과하는 것

돌봄을 통해 직시한 한국 사회의 그림자… 조기현 작가를 만나야 하는 이유
등록 2026-10-22 20:10수정 2026-10-28 15:51


“(인지장애인) 아버지가 왜 자꾸 일하러 가야 한다고 말하실까를 생각해봤어요. 아버지가 가장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빠, 어디 전화가 왔다고 그래? 전화 온 것 없잖아’라고 대답하던 것을 ‘아빠, 아까 소장님한테 전화 왔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작업이 취소됐대. 오늘은 안 나가셔도 돼’로 바꿨습니다. 아버지에게 내가 있는 현실로 돌아오라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의 현실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청강문화산업대학 ‘돌봄과 서사’ 강의 중)

 

인지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하는 교육이 있다. 한국에선 인정요법으로 번역하는 유효화 혹은 타당화 요법이다. 인지장애를 겪는 사람의 왜곡된 기억이나 비합리적인 말과 행동을 현실의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교정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주관적 감정에 초점을 맞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의 ‘현실’로 들어가는 소통 기법이다. 이를 통해 불안을 완화하고 주의를 다른 데로 ‘전환’하라고 가르친다.

 

인지장애인과 소통하는 법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조기현 작가가 인지장애인 아버지에게 대답하는 방법을 바꿨다는 내용은 이 요법의 모범 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소통의 방법론을 넘어선다. 그는 그저 아버지와 소통하는 방법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었다. 존재에 대한 시각을 바꾼 것이다.

돌봄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인정요법에 근거한 소통을 반복적이고 지속해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이다. 그 사람의 현실을 인정하고 감정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그것을 그의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사실상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거짓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스스로 거짓이라 생각하는 것을 지치지 않고 지속해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환자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생기기가 더 쉽다. 그렇기에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 아버지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저 ‘소통 요법’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완전히 다른 전환이다.

그가 아버지의 현실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삶을 깊이 이해하며 마음에 다가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에서 가장 간절했던 것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환 이후 가장 상심한 것은 더는 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할 수 없기에 자신이 쓸모없어졌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인지장애는 아버지에게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아버지를 데려간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은 아버지가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검사받으러 갔을 때 잘 드러났다. 요양등급을 받으러 간 보호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평소엔 열의가 없던 분들도 검사받으러 가서 문제를 풀 때는 그리 열심일 수 없다고 한다. 눈을 반짝이며 한 문제라도 더 잘 풀려고 열의를 보인다. 이런 사례가 워낙 많다보니 검사받으러 갈 때 보호자가 신신당부한다. 열심히 풀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 역시 아버지가 그렇게 열의를 가진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아직 쓸모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그가 소통 ‘방법’이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조기현 작가는 인지장애인과 소통하려면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교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의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조기현 작가가 2025년 8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한 ‘노동 이후 노동’ 전시회에서 선보인 ‘가상의 행정동, 습조동(拾造洞)’ 프로젝트 현장 모습. 조기현 제공

조기현 작가는 인지장애인과 소통하려면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교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의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조기현 작가가 2025년 8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한 ‘노동 이후 노동’ 전시회에서 선보인 ‘가상의 행정동, 습조동(拾造洞)’ 프로젝트 현장 모습. 조기현 제공


인정요법 소통이 어려운 이유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다. 마음을 인정받아야 인간이 된다. 인지장애인을 바라보는 보편적 시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 바로 그들을 마음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설령 마음이 있더라도 ‘고장’ 난 존재로 여긴다. 그 마음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하고 싶어 그 말과 행동을 했는지, 그가 어떤 의도와 동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장 난 마음이기에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저 불안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행동만 교정하려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다정함이 멈추고 비인간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다른 사람을 내면의 마음이 없는 존재로 여길 때라고 말한다. 마음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 모두가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 마음을 추론하려 한다. 그런데 인지장애인은 마음이 없는(고장 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추론할 필요가 없다.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대신 다른 비인간화된 존재와 달리 인지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의 특이한 점은 ‘다정함’만 남는다는 것이다. 다정함만 남은 돌봄, 이 돌봄은 인간에 대한 돌봄이 아니다.

다정함만 남은 돌봄은 슬프게도 ‘애완’이다. 거기에는 함께 살아가며 공통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반려’가 없다. 서로에게 쓸모가 되는 상호성이 없는 것이다. 애완을 ‘당’하는 쪽은 받기만 하지 돌려줄 것이 없다. 무슨 소리냐, 그 사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돌려준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받는 사람의 입장이지 주는 사람의 입장은 아니다. 주는 사람은 준 것이 없는데 받는 사람이 자기는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주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가 준 것이 없다는 것, 존재하는 것 말고는 쓸모없음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게 ‘존재’만이 아니라 ‘쓸모’라면 이는 정말 슬픈 일이다.

쓸모를 향한 ‘투쟁’. 쓸모는 인지장애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존재감을 향한 공포이자 바람이자 투쟁이다. 대표적으로 노인들이 잃어버린 것도 역시 ‘쓸모’다. 한 지인은 자기가 어머니에게 한 말 중에 가장 속죄할 수 없는 말이 “제발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고 가만 계세요”였다고 한다. 그 말 이후 어머니의 말수가 급속도로 적어졌다고 한다. 일하다 조금만 잘못되면 어머니는 “내가 또 저지레를 했구나” 하며 위축됐다. 어머니는 혹 방해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눈치 보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그 말 이후 어머니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 늙어버렸다고 한다. 지인은 “쓸모없다”는 말이야말로 씻을 수 없는 불효라며 내내 후회했다. 이후 그는 되도록 어머니가 하는 일을 보조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인간에 대한 참된 돌봄이란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생존주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가치나 삶의 의미보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자체가 삶의 절대적 목적이다.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 가장 큰 공포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쓸모 있어 보이거나 쓸모 있다고 알려진 것이라면 일단은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쓸모가 존재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 행동의 동기이자 목적이다. 청년들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인지장애인의 ‘무너진’ 마음에도 그 흔적은 단단히 남아 각각의 ‘현실’을 만들고 ‘행동’하게 한다. 아버지는 오지도 않은 일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고 생각하며 장비를 챙기는 망상의 현실을, 어떤 청년은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하고 봐야 하니 날마다 남들이 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현실을.

물론 이런 말을 통해 인지장애의 ‘망상적 현실’과 다른 현실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병리적인 것과 아닌 것은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분명하게 구분돼야 한다. 다만 그 ‘병리적’인 것에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단단히 남기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조기현 작가가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의 행동을 망상적 행위로만 보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아버지가 살아내는 현실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바닥에서 쓸모와 무쓸모로 나눠 통치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망상적 현실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이 뿌리내린 현실이었다.

여기에서 조기현 작가의 돌봄에 대한 이야기는 돌봄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를 직시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는 아버지 돌봄을 통해 그 통치가 사람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한국 사회가 규정하는 쓸모에 맞설 때 무너져 고립된 사람들을 만나고 모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예로 그는 2025년 8월 ‘노동 이후 노동’ 전시회에서 ‘가상의 행정동, 습조동(拾造洞)’이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주울 습(拾), 지을 조(造)를 쓰는 이 가상의 동 주민들은 “비효율의 효용을, 오류에 대한 사랑을, 실패를 위해 최선을 다함”을 중요하게 여기며 “서로의 쓸모를 재구성”한다. 여기에 전시된 1990년 기능올림픽 금메달에는 이런 말을 붙여놓았다.

 

“1990년, 국가가 인정한 탁월한 손, 하지만 그 탁월함을 언젠가는 잃는다. 습조동은 그때가 될 때 탁월함과 삐걱거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삶에 메달을 수여한다.”

조기현 작가는 인지장애인과 소통하려면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교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의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조기현 작가가 2025년 8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한 ‘노동 이후 노동’ 전시회에서 선보인 ‘가상의 행정동, 습조동(拾造洞)’ 프로젝트 현장 모습. 조기현 제공

조기현 작가는 인지장애인과 소통하려면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교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의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조기현 작가가 2025년 8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한 ‘노동 이후 노동’ 전시회에서 선보인 ‘가상의 행정동, 습조동(拾造洞)’ 프로젝트 현장 모습. 조기현 제공


이 시대가 들어야 할 청년의 언어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기현 작가를 배웅하며 말했다. 당신이 동시대인으로서의 창작자이며 예술가라고. 작품을 하는 창작가이기도 하지만 동시대성의 암흑을 직시하며 그 너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이 시대가 들어야 할 청년의 언어가 있다면 당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 하나다. 나는 한국의 많은 사람이 조기현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를 통해 동시대를 직시하고 시대를 넘는 언어를 만나고 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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