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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전직 사내 의사 “월 80시간 이상 연장노동, 2025년 한 해에만 1361명”

TSMC 전직 사내 의사, ‘지속가능보고서’ 분석… “인력 늘리고 마감 늦추면 해결 가능”
등록 2026-10-08 20:56수정 2026-10-13 17:17
2026년 9월13일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에 티에스엠시(TSMC) 팹20(F20)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팹20은 2나노미터(㎚) 미세공정 양산의 핵심 기지다. 신주(대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9월13일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에 티에스엠시(TSMC) 팹20(F20)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팹20은 2나노미터(㎚) 미세공정 양산의 핵심 기지다. 신주(대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개선되고 있다는 말에 의심이 드네요.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대만 타이베이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의사 천위쉬안(가명)은 2026년 9월16일 한겨레21과 만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티에스엠시(TSMC)의 일부 노동자에게 들었던 ‘사내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있다’는 말을 전하자 나온 반응이었다. 직업의학과 전문의인 천위쉬안은 2020~2024년 TSMC에서 ‘사내 의사’로 근무하며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직접 살폈다. TSMC 사내 의사가 과로 문화를 주제로 외국 언론과 인터뷰한 경우는 처음이다. 천위쉬안은 “TSMC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금 재직 중인 병원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노동조건 개선 중’이란 말, 믿기 어려워

 

TSMC는 대만에서도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건강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는 반도체 대기업이다. 자국 내 만연한 과로 문화에 비판적인 대만전기전자정보산업노동조합은 “TSMC 현직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래도 (과로 문화가) 개선됐다’고 말한다”며 “이유는 이직률 때문인데, 지금 같은 노동조건으로는 좋은 엔지니어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진료실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천위쉬안은 “2026년의 TSMC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모니터를 돌려 TSMC의 2025년 ‘지속가능보고서’ 속 구체적인 수치를 거론했다. 그는 “이 자료 자체가 사내 과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수치는 지속가능보고서에서 밝힌 ‘노동시간 제한 또는 업무 조정’ 대상자의 수였다. 보고서는 2025년 한 해 동안 5899명이 업무 부담에 따른 중·고위험군 직원으로 분류됐고, 이 중 1361명에게 의사의 권고에 따라 ‘노동시간 제한 또는 업무 조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천위시안은 “TSMC의 ‘노동시간 제한 또는 업무 조정’ 기준은 월 연장노동 80시간이다. 결국 1361명이 한 달 동안 야근을 80시간 넘게 했다는 뜻”이라며 “1361명은 의사가 봤을 때 (과로로 인해) 심장병이나 뇌졸중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천위쉬안이 언급한 1361명의 노동시간은 대만 노동기준법상 연장노동시간 총량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대만은 하루 최대 연장노동시간이 ‘4시간’이고, 월 연장노동시간 총량은 원칙상 4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가 동의하더라도 월 최대 54시간을 넘을 수 없다. 천위쉬안은 “다른 회사라면 월 야근 시간이 46시간을 넘어서면 의사가 ‘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말했다.

 

상여금·성과 지표 관리가 과노동 유도

 

천위쉬안은 과노동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TSMC의 회사 문화를 꼽았다. 그는 “회사 고위직·관리직이나 엔지니어들은 업무 통제권이 있다. 자율적으로 업무 계획을 짜는 게 가능하다”며 “이들은 회사의 강요로 일한다기보단 스스로 맡은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회사에 남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프로젝트별로 마감 시한이 정해져 있다보니, ‘돈 받은 만큼 주도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천위쉬안은 ‘입사 뒤 TSMC 이미지는 어떠했나’라고 묻자 “회사와 직원 모두 강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그는 “상여금과 보너스, 개인 성과 지표 관리 등을 보니 TSMC에 입사하면 열심히 일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사명감 또는 명예를 느끼면서 회사에 다녔고 상사들은 보통 엄격했다”며 “처음 회사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노동자들도 점차 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동조하지 않더라도 높은 급여를 받으니 감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과로로 인해 사고가 난 적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회사에서 본 일은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있다, 없다 정도라도 말해달라’고 재차 물었지만 “이것 역시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잠시 다른 곳을 응시하다 이렇게 말했다. “TSMC를 퇴사한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일화는 있습니다. 제 친구는 한 달 이상 휴일도 없이 출근하다 샤워기를 틀자마자 기절했고,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친구의 동료는 며칠 뒤 자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큰 충격을 받은 친구는 ‘이곳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판단해 즉시 퇴사했습니다. 언제 일어난 일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TSMC 노동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채용됐지만, 사내 의사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 중 하나는 과로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적절한 대응을 권고하고, 이 사실을 인사 부서에 전달하는 일이었다. 대만은 직업안전위생법에 따라 상시 노동자 6천 명 이상인 대기업은 반드시 직업의학과 전문의 1명 이상을 상용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의학 처방 내려도 관철 권한은 없어

 

2026년 9월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진산거리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신주(대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9월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진산거리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신주(대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제는 과로를 호소하는 노동자에게 의학 처방을 내리더라도 이를 관철할 권한이 사내 의사에게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상 “컨설턴트” 역할에 그친 셈이다. 천위쉬안은 “‘야근을 하더라도 한 달에 20시간 이상 하지 마라’고 조언했지만, 강제력은 없었다. 인사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게 전부”라며 “인사부가 내 의견을 현업 부서에 알리는지, 회사 고위층에 어떻게 전달하는지 등은 알 수 없었다. 인사부가 의사인 내 의견에 따라 직원의 업무량을 줄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TSMC가 대기업이라 협조가 잘되는 편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법적 대비 차원일 수도 있겠지만,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은 과로 직원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넘길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 더 위험하다”며 “TSMC는 의사의 권고에 대한 수용도가 훨씬 높았다”고 말했다.

천위쉬안은 “과로를 해결하는 핵심 방안은 인력이다. 노동자 수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한 엔지니어가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과로는 반도체 종사자의 운명이라는 식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로젝트에 되도록 많은 인력을 투입하면 되고, 마감 기한을 늘리면 된다. 인력 안배의 문제”라고 말했다.

반도체 연구개발직에 대해 ‘주 52시간 노동시간 적용 예외’를 검토 중인 한국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주 55시간을 넘으면 과로라고 본다. 이는 연구 결과를 봐도 명백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시간 노동이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그런 가설은 한국 반도체 회사의 가설인가. 처음 들어본다”며 “TSMC를 관찰해본 결과 노동량이 많아서 경쟁력이 생겼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전닉스’ 보고서엔 그나마 수치도 없다

 

천위쉬안은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순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TSMC의 사업 구조 차이도 언급했다. TSMC는 엔비디아, 애플 같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서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한다. 독자 브랜드 상품을 배제하고 고객사와의 협업에 올인한 사업 구조가 핵심 경쟁력이었던 셈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자사 로고를 단 완성품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겸한다. 이 때문에 TSMC보다 수율(합격품 비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고객사 입장에서는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품게 된다. 그는 “한국 정부나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TSMC 사례를 참고하려면, 단순히 긴 노동시간이라는 단편적 사실에만 주목하며 규제를 풀 것이 아니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두루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위쉬안은 TSMC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다시 언급했다. 그는 “이 자료는 TSMC가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증거”라며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TSMC만큼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천위쉬안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2025년 지속가능보고서에는 노동자의 건강 및 질병 예방과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가 담겨 있지 않았다. 경영계는 ‘TSMC의 경쟁력이 장시간 노동’이라며 반도체 연구개발직의 ‘주 52시간 노동시간 적용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

 

신주·타이베이(대만)=글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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