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밈의 만남, 일베 천하를 열다

신혜식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에서 관찰되는 반다문화 담론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 경제중심성과 비정치성이다. 경제중심성은 전체 게시물 중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민족주의 혹은 인종주의적 담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게시물에서도 의식적으로 경제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2010년 1차 분석 때 이런 특징은 ‘국익주의’로 개념화됐다. 국익주의란 ‘국익’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관점을 가리킨다. 이는 담론 주체가 공론장에서 설득력을 얻기 위해 민족주의와 시장주의를 편의적으로 재구성한 합리화 전략이다.
비정치성은 탈정치성이라기보다는 현실정치 세력에 대한 양비론에 가깝다. 이는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거대 양당, 다시 말해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다문화 정책에서 실은 ‘한통속’이었다는 각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각성을 통해 반다문화 담론 주체는 ‘애국시민’ 대 ‘매국세력’으로 사회적 적대를 새로 설정하고, 다문화주의를 일소할 대안적 정치세력을 갈망하게 된다.1
2010년대부터 반다문화 담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반중 정서는 점차 혐중 담론으로 변환돼 반다문화 담론의 중심에 진입했고, 2020년대가 되면 ‘혐중’은 반다문화를 넘어 극우 담론 전체를 떠받치는 필수 요소로 자리 잡는다.
왜 하필 중국인가? 구조적 요인은 명확하다. 급속히 팽창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인접국이자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한국에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반중·혐중 정서를 강화한 직접적인 사건들 역시 이러한 구조적 요인의 산물이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은 우파의 공포를 극대화했고 중국 관광객과 유학생 등 일상적 접촉면이 늘어나면서 문화적 혐오도 확산됐다. 중국이라는 외부 타자의 존재감이 강해질수록,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타자를 배제하려는 욕망도 강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윤석열 등 극우 정치 엘리트들이 선거 음모론 등으로 이를 적극 조장했고, 내부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외부의 타자, 곧 중국과 연결하려는 시도 또한 줄기차게 이어졌다. 현실정치 세력에 대한 양비론보다 한쪽을 편드는 것이 힘을 키우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게 명백해지면서, 혐중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은 점점 더 ‘정치화’됐다.
중국이라는 기표는 이제 다문화·조선족·화교·선거·안보·경제·공산주의 등 서로 다른 요소를 등가사슬(chains of equivalence)로 연결하는, 일종의 ‘만능열쇠’가 됐다. 동시에 혐중의 등가사슬은 자본주의자인 ‘우리’와 공산주의자인 ‘그들’을 구분하는 적대적 경계를 형성했다. 정치철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에 따르면 “적대는 그것을 구성하는 등가사슬들에 의존”하는데, “적대의 접합은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으며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이다”.2
요컨대 사회적 적대는 전적으로 주체의 실천과 그 효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아니더라도, 즉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식의 연상작용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작동한다는 점에서, 중국은 놀랍도록 편리한 도구였다.

2013년 1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이용하고 있는 한 이용자의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담론은 다른 담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 반다문화 담론과 혐중 담론의 사회적 의미를 적확히 파악하려면 개별 분석만이 아니라, 2000년부터 2026년에 이르는 온라인 공론장, 그리고 극우 담론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들 담론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10년은 온라인 정치 담론이 백가쟁명하던 시기였다. ‘키보드 배틀’이라 부르던 온라인 정치토론이 활성화되고, ‘짤방’이란 단어로 상징되는 패러디 문화가 ‘디시인사이드’ 등 취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 특히 2000년은 기념비적인 해였다. 2000년 1월9일 ‘안티조선’을 표방한 커뮤니티 ‘우리모두’ 사이트가 개설됐다. 이곳은 한국의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던 일간지 ‘조선일보’의 사회적 폐해에 공감하는 시민과 지식인이 만든 자생적 사회운동이자 온라인 공론장이었다. 참여자들은 마르크스주의자, 사민주의자, 개혁 성향 우파에 이르는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띠었고 훗날 ‘진보누리’ 등 좌파 성향 커뮤니티로 분화한다. 또 2000년 6월6일에는 정치인 노무현 팬클럽을 표방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설립됐다. ‘노사모’는 2010년대 이후 한국 정치에서 흔히 보게 된 팬덤정치(정치팬덤) 현상의 효시였다.
2000년 11월에는 회사원 신혜식이 김대중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이트 ‘안티DJ’를 개설했다.3 이 사이트가 유명해진 계기는, 김대중 대통령을 궁예에 비유한 자극적인 패러디물에 대해 당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명예훼손·불법정보에 해당한다며 삭제를 요구하면서다.4 이에 대해 운영자 신혜식이 “표현의 자유”라며 격렬히 반발하면서 많은 언론에 소개됐고 사이트의 영향력도 급격히 커진다.
‘안티DJ’ 이후 ‘안티노무현’ 등 유사 사이트들이 급증했다. 진보 성향에 텍스트 중심이던 ‘우리모두’나 ‘노사모’와 달리, 이들 사이트에서는 합성된 이미지나 밈(유행 콘텐츠)화된 우익 성향 메시지가 주로 유통됐다. 2000년대 등장한 이런 사이트들은 소수자·약자 혐오를 놀이로 소비하며 ‘기득권 진보’에 반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를테면 ‘유희형 극우 커뮤니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현상은, ‘기득권 진보에 대한 안티’ 정서가 2000년대만이 아니라 오늘날 극우 담론에서도 명확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일관되게 관찰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분석돼야 하는 현상임을 시사한다. 이를 이른 시점에 포착한 연구자 중 한 명이 사회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였다.5 그는 2007년에 한·중·일 청년세대의 내셔널리즘 인식을 ‘사회·경제적 불안’의 산물로 분석한 책을 펴냈다. 그런데 다카하라는 한국의 이른바 ‘불안형 내셔널리즘’을 분석하는 도중에, “주류가 된 혁신파에 대한 반발”이 한국 청년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평가가 가장 어렵다”고 난감해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화운동을 통해 대항문화 진영이 이미 정권의 중추를 차지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반대편의 ‘국가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안티노무현’을 콘셉트로 하는 단체나 웹사이트도 늘어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통일 지향을 비판하거나 결국 예전의 반공·반북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마저 찾아볼 수 있다.6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 다카하라 모토아키 지음, 정호석 옮김, 삼인 펴냄, 2007년.
다카하라의 ‘난감함’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현재와 달리 2000년대에 조사된 어떤 데이터를 보더라도 한국 청년들은 기성세대 진보와 유사한 저항적 민족주의 및 진보좌파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카하라의 설명과 달리 “주류가 된 혁신파에 대한 반발”은 단순한 복고나 일탈적 반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지배 규범인 능력주의와 결부된 장기 추세적 특징이기 때문이다.(논의 흐름상 이에 대해 지금 논의하기는 어렵고, 극우의 사회적 요인을 분석할 때 상세히 설명하려 한다.)
2013년 6월4일, ‘다문화정책반대’ 카페 운영자 ‘임실사랑’이 올린 글 하나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운영자는 당시 뜨겁게 떠오르던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언급하면서, 반다문화주의 확산을 위해 “일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일베의 폭발력”에 주목하며 찬성하는 회원이 적지 않았는데, “일베 같은 찌질이와 엮여 좋을 게 없다”며 반대하는 회원도 많았다. 며칠 논쟁을 벌였지만 끝내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 ‘내홍’의 의미는 명확했다. 온라인 극우 담론이라 해서 동질적이지 않으며 나름 치열한 헤게모니 투쟁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헤게모니가 이미 일베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의 주장들은 비록 극우적이긴 해도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의사소통 합리성’, 즉 타당성의 근거를 요구하고 논변의 설득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반면 일베는 유사한 주장을 하면서도 그 양식(modality)이 전혀 달랐다. 장문의 텍스트로 일관하는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의 게시물과 달리, 일베 게시물은 조롱과 혐오, 코드화된 유머로 가득한 이미지와 밈이 극우적 텍스트에 결합한 형태였다. 그것은 논증, 근거 제시, 비판적 검토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일베”(추천)와 “민주화”(비추천)로 평가가 즉시 결정됐다.
논리적으로 작성된 장문의 텍스트는 온라인상에서 강점이 아니라 오히려 약점이 된다. 그에 비하면 유머러스한 밈이나 이미지가 결합한 텍스트는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다. 여러 연구가 이를 입증한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슈미트와 동료들은 독일 극우 텔레그램 채팅을 대상으로 한 2025년 연구에서 극우·극단주의적 주장이 밈·유머에 결합될 때 훨신 도달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였다.7
연구에 따르면 극우적 주장이 텍스트로만 있을 경우 도달률이 아주 낮았다. 밈만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가장 도달률이 높은 것은 텍스트+밈 형태였다. 이렇게 극우·극단적인 내용이 밈과 결합했을 때 파급력이 가장 커지는 현상을 연구는 ‘전략적 주류화’(strategic mainstreaming)라 명명한다. 요컨대 극우 밈의 목표는 정치적 설득이 아니라, 실없는 농담이나 장난처럼 여기게끔 하여 극단성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는 문화적 확산에 있다는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일베는 여기에 상당히 부합한다. 하지만 ‘다문화정책반대’는 그렇지 않다. 그것이 둘의 운명을 갈랐다. 일베는 온라인 극우의 주류적 스타일이 됐지만, ‘다문화정책반대’는 쇠락해 잊혔다. 다음회부터 일베를 분석한다.
1. 더 구체적인 설명은 ‘우파의 불만’(이택광·박권일 외, 글항아리, 2012) 212~215쪽을 참조하라.
2.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후마니타스, 283쪽, 290쪽, 2012
3. 신혜식은 ‘안티DJ’ 이후 ‘인터넷 독립신문’을 창간했고 2026년 현재 ‘신의한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 극우 인사다.
4. 최혁재, ‘정보통신윤리위, 안티사이트 일제 조사, DJ풍자물 삭제명령’, 문화방송, 2001년 4월23일
5. 다카하라 모토아키, 정호석 옮김,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 삼인, 2007
6. 같은 책, 202~203쪽
7. U. Schmid, H. Schulze, & A. Drexel, ‘Memes, humor, and the far right’s strategic mainstreaming’, ‘Information, Communication & Society’ 28(4). pp537~556, 2025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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