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형수·무기수 없었다”… 영화 ‘실미도’ 23년 만의 자막 수정

등록 2026-10-02 08:21수정 2026-10-02 08:49
영화 ‘실미도’ 포스터.

영화 ‘실미도’ 포스터.


실미도 부대 북파공작원들을 사형수 또는 무기수 등 범죄자 출신인 것처럼 연출한 영화 ‘실미도’가 개봉 23년 만에 안내 자막을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기로 했다. 부대 공작원 상당수가 일반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데 따른 후속 조처다.

국방부는 실미도희생자유족회의 요청에 따라 영화 ‘실미도’ 배급사인 씨제이이엔엠(CJ ENM)에 안내 자막 수정을 요구했고, 관련 작업을 완료했다고 2026년 9월23일 밝혔다. 수정된 새 자막에는 “영화 ‘실미도’에서 부대 공작원들을 특수범죄자, 사형수, 무기수로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상황 설정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실미도 부대 공작원 중에 사형수, 무기수는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 민간인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다”고 적시했다.

기존 영화가 시작하기 전 송출됐던 안내 자막은 “영화 속 훈련병들의 상황 설정은 과거 혹은 현재의 다른 북파공작부대나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하다”였지만, 이들의 출신을 놓고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도 “수정된 안내 자막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방부가 이런 조처를 한 이유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공작원 대부분이 일반 민간인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공작원은 민간인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고 희생자 및 유가족의 명예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실미도’는 1971년 8월 가혹한 훈련과 부당한 처우에 반발해 기간병을 살해한 뒤,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로 진입해 군경과 교전한 공작원 24명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교전으로 20명이 사망했고, 생존자 4명은 군법회의를 거쳐 1972년 3월 사형됐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을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