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왼쪽)과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한겨레 자료
많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유저의 윤리적 책임감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고 표현 방식은 실정법의 한계선에 점차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가장 극단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열광하는 사람 이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가장 흔한 비난은 “대한민국 온라인의 막장이자 시궁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베 유저는 그런 시궁창에서 종일 뒹구는 “찌질이” “잉여” “루저”로 낙인찍혔다. 당시 온라인 극우 담론의 최대 생산지이던 ‘다문화반대카페’에서도 일베는 “같이 엮여 좋을 게 없는 찌질이”로 인식됐다.(제1627호 참조)
일베는 이런 비난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자신의 학력과 직업을 ‘인증’하는 사진을 올리는, 이른바 ‘일밍아웃’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일밍아웃이란 ‘커밍아웃’에 빗대어 자신이 일베 유저임을 밝히는 행위를 가리킨다. 다만 실명을 밝히고 위험을 감수하는 커밍아웃과 달리, 일밍아웃은 여전히 익명 뒤에 숨었다는 차이가 있다.
일베 최초의 ‘인증 대란’은 2012년 10월22일 새벽부터 사흘간 이어졌다. 이 기간에 일베 유저 수백 명이 자신의 신분증, 사원증, 학생증 등을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학력, 직업, 소속 등을 인증했다. ‘명문대생’, 의대생, 대기업 사원, 의사, 변호사, 사무관 이상 공무원 등 ‘스펙’ 공개는 마치 자신들이 “찌질이” “루저”가 아니라 승리자임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인증 대란’은 일종의 의례처럼 이어졌고 레거시 미디어들까지 기사화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일베의 영향력 확대에 ‘인증 대란’이 지대한 역할을 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인증 대란’이 흥행했음에도 세간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3년 5월,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은 일베에 대한 일종의 프로파일링을 시도한다. 그가 말하는 일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2.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이고 싶지만 경쟁에서 탈락, 인정 못 받는 현실에 좌절, 이를 약자 공격으로 분풀이.
3. 스스로가 꿈꾸는 ‘강자’와 동일시. 하지만 공격욕과 폭력 욕구를 충족해주는 ‘악한 강자’만 추종. 전두환이 대표적 예.
8. 겉으로는 진보나 민주화 세력에 대한 비판 및 반대 표방하나 속으론 그들이 받는 지지와 선망에 극단적 질투심.
9.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애정결핍 내지 학대, 폭력 피해. 학교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 다수 포함.
25. 일베 중 40·50대 연장자 및 의사, 공무원 등 고학력자들. 스스로는 책잡힐 범죄적 행동 잘 하지 않으면서 지역감정, 성차별, 인종차별, 색깔론, 역사 왜곡 부추기는 허위 사실 및 논리 제공. 이들 역시 그들 무리에서 루저.
26. 자기 집단이 싫어할 요소를 갖춘 사람을 찾아내 신상 털거나 약점 잡아내 집요하고 지나친 집단공격을 가하는 ‘가학성’(사디즘)과 스스로를 ‘벌레’로 비하하며 사회적 비난을 초래하고 존칭 거부, 욕설 일상화 등 ‘자기학대’(마조히즘) 함께 보임.
39. 일베의 사회경제적 구성(계급주의적 용어 차용): 다수의 ‘룸펜프롤레타리아’ + 소수의 ‘룸펜부르주아’ + 일탈적 테크노크라트. 이 중 다수 노동자층은 신분 이익에 반하는 극우 보수 지지. 히틀러유겐트, 일제 앞잡이, 유럽 극우와 유사.1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지만 요점은 단순하다. 널리 퍼져 있던 일베 ‘루저’설의 반복이다. 표창원의 글에 사회비평가 진중권도 “대체로 제 분석과 일치합니다”라고 공감을 표했다. 당시 진중권 역시 나름의 ‘일베 분석’을 트위터에 쓴 적이 있었다. “일베의 특징은 사회의 낙오자들이 권력에 대한 좌절된 욕망에서 권력과 자신을 환상적으로 일체화한 것이다. 그 환각에 빠져 권력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권력의 주구가 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한다.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주류 권력에 속한다는 허구적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이지만 권력이 쓰레기들을 인정해줄 리 없다. 그럼 그들은 자신들의 충성이 부족해 그런 거라 믿고 더욱더 악랄하게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게 된다.”2
당시까지 일베 유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실시된 적이 없었다. 알려진 사실은 일평균 방문자 수가 22만~25만 명이라는 것, 약 8 대 2의 압도적 남초 커뮤니티라는 것, 30대 남성이 주 이용자층이라는 것 정도였다.3 그런데 이 사실들을 더 상세히 알아내거나 설령 일베 유저가 루저임을 밝혀낸다 해서, 그것을 일베 현상의 충분한 해명이라 하긴 어렵다. 일베 유저가 루저면 그런 일탈이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부유층·엘리트면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강조해두건대 이미 한국인들은 일베보다 훨씬 유독하고 과격한 ‘극우 대통령’을 경험한 바 있다.
물론 ‘일베 유저 개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내는 일 자체가 아예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가난하면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일탈하기 마련’이라는 식의 납작한 경제 환원론적 프레임에 갇힐 우려도 있다. 게다가 표창원처럼 “루저의 질투심” 같은 말로 일베를 설명하는 것은 사회문제를 개인 심리의 차원으로 협소화해버린다.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풍부하게 파악하려면 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접근에서는 일베가 실제 루저인지 아닌지, 인증 대란에서 제시된 사진들이 사실인지, 그들이 일베의 대표성을 가지는지 등은 부차적이다. 문제의 급소는 오히려 일베 자신을 포함해 ‘왜 많은 사람이 일베가 루저인지 아닌지에 그토록 집착하는가’에 있다. 널리 수용되지만 잘 인지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증상’(symptom)이며, 이는 재차 다음 같은 질문들로 구체화할 수 있다. 왜 일베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필 그런 방식으로 드러냈는가? 일베의 ‘인증 대란’은 무시에 맞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투쟁, 곧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말한 인정투쟁으로 볼 수 있는가?
여기서 인정투쟁이란 그저 자신을 알아달라는 호소가 아니다. 호네트의 철학 속에서 인정투쟁은 “사회연대를 위한 대등한 가치 부여”를 향한 투쟁, 즉 ‘평등을 향한 투쟁’인 동시에, 무시당하고 배제되던 집단이 권리 주체로 인준되는 역사적 진보의 과정이다.4 만약 일베의 ‘인증 대란’이 이런 평등을 향한 투쟁이라면 일베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전복될 수 있다. 연재의 서두에서 설명한 것처럼,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불평등(평등)을 보는 관점에 있다.5 일베를 관통하는 “너도 병신, 나도 병신”이라는 인식이 어떤 급진적 평등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리고 ‘인증 대란’이 “찌질이” “루저”라는 집단적 무시와 배제에 맞서 평등을 요구하는 저항의 실천이라면, 일베는 극우는커녕 진보적 저항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결론부터 말하면 일베의 ‘인증 대란’은 인정투쟁일 수 없다. 호네트의 이론에서 ‘인정투쟁이 성공한다’는 의미는 개인의 사적 인정 욕구 충족이 아니라, 과거에 배제·폄하됐던 정체성 집단이 인정 체계 안으로 편입돼 인정 질서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최근 호네트는 ‘사회적 인정 기준을 개인의 탁월성이 아니라 노동의 민주적 조건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그동안 자본주의 시장의 ‘업적원리’(leistungsprinzip/Achievement Principle)로 인해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폄하된 돌봄노동 등의 가치가 재평가돼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6 즉, 인정투쟁이란 그동안 무시받던 이가 인정 질서를 넓히려는 포괄적 운동이다. 반면 ‘인증 대란’은 이미 학벌과 소득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자가 그 위치를 과시하며 기존 인정 질서를 고착시키는 배제적 행위다.
일베 유저들이 인정 욕구를 어느 정도 드러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별 주체의 사적 인정 욕구였다. ‘인증 대란’에서 노골적으로 전시된 학벌, 소득, 자산 등 기득권 위계의 서열 척도는 자신의 비교우위를 확인받고 그걸 갖지 못한 이들을 조롱하고 비하할 수 있는 근거로 기능할 뿐이다. ‘인증 대란’은 익명 게시판의 사적 평판 게임으로 완결되며 어떤 차별적 제도나 문화의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증 대란’은 ‘평등을 향한 투쟁’이 아니라 ‘불평등을 향한 투쟁’이다. 그것은 기존 지배 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지배 질서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다. 또한 그것은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우파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모욕, 혐오, 조롱, 민주정 체제에 대한 명시적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명확한 극우적이다.
‘인증 대란’은 논리적·윤리적으로 파탄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증 대란’은 일베 역사상 가장 흥행한 이벤트였고 커뮤니티를 급격히 팽창시킨 성장 동력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그로’(도발)가 성공하려면 대상의 관심사, 예민한 지점을 건드려야 한다. 대상이 아무 관심 없을 때 어그로는 실패한다. ‘인증 대란’이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일베를 한사코 ‘루저’로 낙인찍고 싶은 강렬한 집단적 욕망이 있었다. 일베를 ‘루저’로 보려는 욕망이 강할수록, 일베 유저가 명문대생이거나 전문직 엘리트임이 드러났을 때의 쾌락도 커진다. 일베 ‘루저’설과 ‘인증 대란’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요컨대 격렬히 반목하는 것처럼 보이는 양쪽의 관심사와 세계관은 사실 정확히 일치한다. 이 세계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는 무시하고 모욕해도 되는 존재(“루저”)가 있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능력·자격·업적 등에 따라 인간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흔히 ‘능력주의’라 부른다. 이렇게 비판을 타자화로 대체하고 그 타자들을 위계 서열화하는 순간, 일베의 반대자들은 일베와 똑같은 세계관의 소유자가 된다.
극우 분석과 비판은 분명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타당하고 정교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1. 표창원, ‘일베에 대한 분석 25가지’, ‘표창원의 범죄와 세상 이야기’, http://blog.daum.net/drpyo, 2013년 5월27일
2. 김민석, 진중권 ‘“일베, 수컷닷컴은 성욕의 문제… 거세된 남근들의 놀이터”’, 쿠키뉴스 2013년 12월30일
3. 구가인, ‘12개 주요 커뮤니티 성향 포지셔닝 맵’, 동아일보 2013년 5월10일
4.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 옮김, ‘인정투쟁’, 사월의책, 2011
5. N. Bobbio, Allan Cameron(trans), ‘Left and Right: The Significance of a Political Distinc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6.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지선·이행남 옮김, ‘노동하는 주권자’, 사월의책, 2026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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